등록 : 2020.05.16 10:00

코로나로 끝난 1년간의 세계여행…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등록 : 2020.05.16 10:00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34)] 머나먼 귀국길 1편

산티아고 공항에서 파리행 특별기 탑승을 기다리는 유럽 승객들. 이렇게 경계심 없이 붙어 있어도 되나? 집으로 가는 길이 험하게 느껴졌다.

1년여 계획으로 떠난 세계 여행이 코로나19로 마무리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4월 29일 오전 6시, 산티아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예약했다.

하필이면 호스텔에서 아침 ‘용무’를 보고 있을 때 차가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늘 서둘러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 호스텔 매니저인 릴리암과 빠르게 인사하고 잽싸게 택시에 탑승했다. 도시는 벌써 깨어 있었다. 가판대도 문을 열었고 거리는 버스에 탑승하려는 승객들로 붐볐다.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공항에 들어섰다.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탑승 시각은 오전 11시 50분, 4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 대기하라는 메일을 받은 터였다. 우린 파리를 거쳐 인천으로 갈 예정이다. 갈아타는 건 맞지만 환승은 아니다. 인천행 항공권은 별도로 구입해야 했다. 이날 산티아고에서 파리로 가는 정기 항공편은 없었다.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임시로 편성된 특별기다.

탕탕이 주칠레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유럽행 비행기가 뜰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건 그 며칠 전이었다. 자국의 코로나 상황은 엉망이었지만 프랑스 외교부의 대처는 기민했다. 외국에 있는 프랑스인 수를 파악했다. 약 18만명으로 집계됐다. 5대양 6대주에 흩어진 유랑인 중 귀국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이들을 수송하기 위한 특별기가 편성됐다. 외교부와 대사관, 항공사가 합작한 결과다. 프랑스의 이런 움직임은 다른 EU 회원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돌이켜보니, 칠레 및 아르헨티나 여행길에 만난 이들이 대부분 유럽 국적자였다. 유럽행 임시 항공편이 편성된 배경이다.

처음엔 특별기가 뜬다는 것만 알았다. 유럽 어디로 가게 될지, 행선지도 날짜도 항공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약 역시 임시변통으로 진행된다. 출발 날짜와 목적지가 확정되면 그제야 자신의 조건과 맞춰보고 항공권을 구입하는 식이다. 일단 프랑스 대사관에 출국 희망 요청을 해놓으면, 대사관에서 인원을 파악해 항공사를 알선한다. 그리고 온라인 결제를 마치면 전자항공권을 메일로 보내온다. 프랑스 대사관은 이번이 아마 마지막 비행기일 거라 했다. ‘마지막’이란 단어에 두려워졌다.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애써 외면해왔던 불안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출국 요청을 한 날이 4월 24일 금요일이었으니, 월요일이면 답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휴일임에도 프랑스 대사관의 일 처리는 의외로 빨랐다.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 탑승이 확정됐다는 메일이 왔다. 29일에 비행기가 뜬다는 통보다. 대사관에선 “탈 거냐?”라고 재차 확인했고, 우린 “이걸 놓치면 언제 집에 갈지 몰라”로 이해했다. 행선지는 파리였다. 탕탕은 프랑스 입국허가서(코로나19로 인한 통행 제한 해제 용도)를 작성하고, 에어프랑스 항공권 구매를 위해 카드 번호를 입력했다. 첫 특별기는 500유로(약 66만원) 정도였다는데 우리가 결제할 땐 750유로(약 99만원)로 치솟아 있었다. 상황이 점점 긴박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 상사에게 보고하듯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구 반 바퀴 너머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듬뿍 묻어났다. 아직 한국행 항공권을 구입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나로선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떨떠름했다. 진짜 가는 것인가, 이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얄궂은 미련이 남았다.

3월 18일부터 프랑스에 입국하려면 통행 허가서를 내야 했다. 여권과 함께 필수 서류다. 우린 환승을 위해 들른다는 문구에 표시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꼭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비야리카의 숙소 주인 마리나와의 기념 사진 찰칵!

칠레에서 구입한 중고차 트렁크에는 안전 금고까지 장착돼 있었다. 추후 매매에 필요할지 몰라 꼼꼼히 촬영을 했다.

산티아고를 출발한 비행기는 다음날인 30일 오전 8시경 파리에 도착한다. 인천행 항공편이 있는지 확인했다. 장기 배낭여행자로서 늘 몸에 익혀온 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환승 항공편부터 살폈다. 다음날인 5월 1일 파리에서 인천으로 가는 환승 노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가격이 비싼 직항편이 눈에 훅 들어왔다. 내 생애 파리~인천 직항편을 탈 생각을 다 하다니, 팬데믹이 낳은 효과였다. 되도록 비행 시간과 공항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게 (나를 포함한)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연결 항공편이 예고 없이 취소될 위험도 신경 쓰였다. 마침 파리에 도착하는 날 오후 9시, 인천으로 가는 대한항공이 있었다. 예상한 대로 운임은 비쌌지만 행운이라 여겼고, 기적이라 부풀렸다.

앞서 칠레의 이웃 나라 아르헨티나는 5월 1일부터 4개월간 공항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아르헨티나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칠레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으로 사망률(4.9%)이 높은 편이었다. 페루와 콜롬비아 역시 국제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감염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칠레의 하늘길도 언제 막힐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공편이 확정되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우린 수도 산티아고에서 약 760km 떨어진 비야리카에 칩거 중이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칠레 보건부로부터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바이러스 전파 방지를 위한 일종의 확인서다. 입국 날짜 및 최근 30일 이내 머문 나라, 체류할 장소와 연락처 등을 상세히 적어야 한다. 현재 칠레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에겐 여권이나 다름 없는 필수 서류다. 휴대폰으로 찍어서 저장한 뒤 누군가(?)가 잡으면 보여주면 된다.

이동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가장 어려운 마음의 숙제가 남았다. 한 달 넘게 체류한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마리나와의 작별 인사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와 마지막 만찬을 나누며 웃었다. 이상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슬픔의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혹 경찰에게 붙들릴 경우, 숙소 주인인 마리나는 이 메시지를 보여주라 했다. 친절하게도 자신의 연락처와 우리의 귀국 행로를 상세히 적었다.

칠레 보건부 사이트에 접속해 발급받은 또 하나의 특수 여권. 현재 이동하는 여행자에게 필수품이다.

집 같던 숙소를 뒤로 하고 산티아고로 먼 길을 달렸다. 고속도로에서도 세 번의 발열 검사가 있었다. 두 번은 필수였고, 한 번은 무작위 검사였다. 산티아고 시내에 도착하니 벌써 어둑해져 있었다. 거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지난해 10월 19일, 산티아고엔 계엄령이 선포된 바 있다. 임금과 연금은 제자리인데 세금과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 항의하는 시위 때문이었다. 우리가 칠레에 입국한 12월 말에도 오후 7시 즈음이면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벌어지곤 했다. 팬데믹 이후 반정부 투쟁은 잠잠해졌다. 코로나가 경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고 말았다.

산티아고에서 우리를 받아준 ‘아는 호스텔’은 격리 조치가 내려진 지역에 있었다. 도미토리(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와 개인실을 갖춘 숙소였지만, 현재는 모두 개인실로 운영 중이라 했다. 호스텔 역시 조용했다. 매일 여행자끼리 어울려 파티를 하던 곳이었는데, 텅 빈 집 같았다. 호스텔의 조치대로 신발에 소독제부터 뿌렸다. 손을 박박 닦은 뒤에야 매니저 릴리암과 인사를 나눴다. 니카라과 출신인 그녀 역시 바이러스가 막 전파되는 시점에 끊은 고국행 티켓이 취소됐다고 했다. 일주일간 단단히 속앓이를 한 모양이었다. 집 걱정에 손님이 싹 사라진 호스텔 걱정까지,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고 했다.

산티아고에도 배달업이 성업 중인 듯했다. 일전엔 드문드문 보이던 배달 노동자가 거리를 활주하고 다녔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오랜만에 사람 구경을 했다. 1~2m 거리 두기를 권장하는 안내판은 이 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여행용으로 구입한 차는 에이전시를 통해 당분간 안전한 주차장에 보관하기로 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판단을 보류했다. 칠레로 다시 돌아오거나 다른 여행자에게 팔 수도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 아래 내린 결정이었다.

숙소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한산해 보이던 대합실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양인은 나 하나뿐, 모두 유럽인이었다. 마스크 전시장이라 해도 될 만큼 기상천외한 마스크를 쓴 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저렇게 꼭 붙어 줄을 서야 할까. 조금은 두렵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먼 여정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시간도 때울 겸 일단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책장을 펼쳤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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