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희 기자

등록 : 2019.10.17 04:40

[36.5˚C] 스타 감독이 보고 싶다

등록 : 2019.10.17 04:40

※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장정석 키움 감독이 지난 1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허삼영이 누구지?” 성적 부진으로 재계약에 실패한 프로야구 삼성 김한수 감독 후임으로 낙점된 이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1993년 삼성에 입단한 그의 선수 경력은 2년 동안 단 4경기 출전이 전부. 은퇴 후 프런트에서 전력분석 파트 전문가로 일하다가 감독으로 발탁됐다.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이 포진한 야구 명가 삼성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다.

‘무명 리더’의 시작은 따지고 보면 김경문 감독이다. OB 베어스 팬이었다면 김경문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테지만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박철순, 윤동균, 김우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두산과 NC를 강팀 반열에 올려 놓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까지 일군 김경문은 성공한 1세대 ‘흙수저 감독’이다. 그는 지금도 “그 때 파격적으로 써준 경창호(당시 두산)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염경엽 감독이 등장했을 때 야구계에 던진 충격도 컸다. 통산 타율 1할대 백업 선수였던 그는 프런트 요직을 두루 거쳐 야구 행정에 매진해 훗날을 도모했다. 그러더니 지휘봉을 잡자마자 팀을 창단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려 놓았다. 선수로 별 볼일 없던 염경엽이 그렇게 ‘염갈량’이 되자 무명 선수 출신을 바라보는 구단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염 감독을 비롯해 10개 구단 감독 중 올해 포스트시즌에 오른 김태형(두산), 장정석(키움), 이동욱(NC) 감독의 선수로서 경력만을 보건대 백업,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이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 가는 사이 스타 출신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새 감독 인선 때마다1990년대 한국 야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각 구단 중견급 코치나 해설위원이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실속은 없었다. 어쩌면 언론이나 팬들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구단들이 스타 출신을 기피하게 된 풍토는 비단 성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KIA 타이거즈에선 비록 불명예 퇴진했지만 선동열 전 감독은 그 전에 ‘삼성 왕조’를 구축한 일등공신이며 김기태 전 감독은 LG를 11년 만에 가을 무대로, KIA를 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영웅이었다. 반대로 성공 사례만 집중 조명됐을 뿐, ‘그저 그런’ 무명 감독도 있었다.

그래서 ‘야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란 대전제에 토를 다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다.

지방 A팀의 레전드급 스타코치 B는 과거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야구계에서 떠나 있다. 스타 출신 감독의 장점은 분명하다. 선수들이 우러러보는 강력한 장악력이다. 절대 권위로 인해 부작용을 낳거나 정치적인 행보로 고위층에 ‘미운 털’이 박힌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스타라는 이유로 받는 오해와 편견이 낳은 선의의 피해자다. 거대 팬덤을 등에 업고 있는 스타플레이어들은 구단도 어렵다. ‘다루기 쉬운’ 감독을 앉혀 좌지우지하려 함이 무명 감독의 성공 스토리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라면 씁쓸하다. 무명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 스타 출신은 감독 후보에서 밀려난 것도 모자라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팀을 떠나야 하는 2차 피해를 겪는다. 잠재적인 감독 후보인 스타 출신들은 눈엣가시다.

미국에서 프로야구 감독은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남자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도 10명뿐인 이 자리를 두고 매년 시즌이 끝나가는 가을부터 이런 저런 소문이 나돈다.

인동초에 비유되는 비주류 선수들의 인생 역전에 얼마든지 박수를 보낸다. 제2의 김경문, 염경엽도 나오길 바란다. 다만 공정이 강조되는 시대에 프랜차이즈 스타들에 대한 역차별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무명의 반란도 아름답지만 이종범과 이승엽이 감독으로 겨루는 모습도 보고 싶다.

스포츠부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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