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9.11.12 04:40

‘상암 벨트’ 뜨고 ‘청담 벨트’ 붕괴… 달라진 대중문화 산업 지도

등록 : 2019.11.12 04:40

[저작권 한국일보] 강준구 기자

SM C&C(tvN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 등)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SBS 드라마 ‘배가본드’ 등), 미스틱스토리(넷플릭스 ‘페르소나’ 등)는 방송가 주요 콘텐츠 제작사다. 세 경쟁사는 공교롭게 같은 건물에 둥지를 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 인근 한 건물에서다. 전자 산업에 비유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계열사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적과의 동침’이 따로 없다. SM C&C는 K팝 시장을 주도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영상 콘텐츠 제작 관련 계열사이고, 미스틱스토리는 가수 윤종신이 대표 프로듀서로 몸담고 있는 회사다.

‘상품’ 개발 보안에 신경 써야 할 여러 콘텐츠 제작사가 상암동 같은 건물에 몰린 사정은 이렇다. 이 건물에 입주한 한 제작사 관계자는 “사무실 임대와 동시에 콘텐츠 아카이빙(저장) 서버 임대도 가능해 강남 쪽에서 지난 4월에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귀띔했다. 콘텐츠 제작사엔 촬영 파일 관리가 큰 숙제다. 정보통신(IT) 설비가 잘돼 있으면서 방송사와 가까운 지역을 찾다 보니 주요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이 상암동 한 건물에 몰리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쓰레기 매립지가 지척이었던 상암동이 2000년대 들어 ‘미디어ㆍ디지털 단지’(DMC)로 거듭나 생긴 변화다. 상암동엔 MBC, JTBC 등 대형 방송사와 CJ ENM(tvN과 OCN, Mnet 등 보유) 등 미디어 관련 기업이 몰려있다. 요즘 상암동은 방송가의 요지다. KBS2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만든 드라마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도 상암동에 사옥이 있다.

대중문화계 산업 지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여의도에 집중됐던 드라마ㆍ예능프로그램 외주 제작사는 상암동으로 거점을 옮겼다. ‘K팝 청담 벨트’는 이미 무너졌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강동구 성내동으로, 큐브엔터테인먼트는 3년 전 성동구 성수동에 각각 신사옥을 지으면서 청담동 일대를 떠났다.

강남 일대에 집중됐던 ‘영화 권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강남구 논현동에 오래 둥지를 틀었던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는 최근 성수동에 사옥을 짓고 터전을 옮겼다. 방송,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걸쳐 강남권 이탈 바람이 거세고 일고 있는 모양새다.

K팝은 지역 구심점이 아예 사라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무실을 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내년 5월 용산구 한강로동에 신사옥을 연다. 빅히트가 새로 터를 잡은 용산구와 JYP의 새 둥지 성내동은 K팝 기획사의 불모지였다. YG엔터테인먼트는 일찌감치 ‘청담 벨트’와 동떨어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리를 잡았다. 5대 K팝 기획사로 꼽히는 SMㆍYGㆍJYPㆍ큐브ㆍ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모두 각기 다른 지역에 깃발을 꽂으며 분산된 형국이다. 지역 구심점의 소멸은 한때 3대 기획사(SMㆍYGㆍJYP)에 집중됐던 K팝 권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예전엔 ‘좋은 장소(강남 일대)에 있어야 인정 받는다’는 게 K팝 기획사들의 심리였다면 이젠 달라졌다”며 “K팝 기획사가 브랜드로 인정받고 독자적으로 우뚝 섰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K팝 불모지로 터를 옮겨 세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권과 홍익대 인근에 집중됐던 대중문화 권력은 성수동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메가박스를 비롯해 큐브, 드림티엔터테인먼트(걸스데이 소속) 등이 성수동으로 몰리며 이 지역은 새로운 대중문화 중심으로 떠올랐다. 김진선 메가박스 대표는 “도심 속 공장 지대였던 성수동이 혁신의 힘을 빌려 문화예술 지구로 변모한 것처럼 메가박스도 성수동 사옥 이전으로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가며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고 사옥 이전 이유를 밝혔다. 새 문화 거점에서 틀을 깬 실험을 하겠다는 얘기다.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영화 하면 충무로였는데 이젠 유명무실해졌다”며 “문화 거점의 다변화는 지역 성장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의견을 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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