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20.05.21 19:24

[단독] 지리산 고유종 철쭉 위협… 일본 철쭉 걷어낸다

등록 : 2020.05.21 19:24

다홍ᆞ하양 왜철쭉, 국립공원 군락지 6만여㎡ 생태계 교란… 20일 첫 조사

90년대 상춘객 몰리자 왜철쭉 심어… ‘철쭉 제거 거부감’ 주민 설득해야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지리산국립공원 철쭉 군락지 안에 일본 철쭉이 확산하면서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20일 첫 공식 조사에 들어간 데 이어 전문가,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일본 철쭉을 걷어내기로 했다.

21일 국립공원공단 등에 따르면 지역 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공단 관계자 등으로 구성한 바래봉 훼손지복원 상생협력 조사단은 생물다양성의 날(22일)을 이틀 앞둔 20일 전북 남원 운봉읍 지리산 국립공원 바래봉과 팔랑치 구간에서 철쭉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상당 구역이 한반도 자생종인 산철쭉 이외에 일본 철쭉인 자산홍, 영산홍, 흰철쭉으로 뒤덮인 것을 확인했다.

◇해마다 수십만 상춘객 끌어들이는 지리산 철쭉

전북 남원 운봉읍 지리산 국립공원 내 바래봉 근처 자생종인 산철쭉과 외래종인 다홍색의 영산홍(가운데)이 뒤섞여 피어 있다. 지리산사람들 제공

국립공원공단과 환경단체 지리산사람들 등에 따르면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철쭉 군락지가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농가 소득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바래봉 일대에 호주에서 들여 온 면양을 방목해 키우도록 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면양을 관리했던 운봉읍 주민 한종식(68)씨는 “면양은 다른 풀과 나무를 모조리 먹어 치웠지만 신기하게도 독성이 있는 산철쭉만은 먹지 않아 살아 남았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초 지리산 바래봉 정상의 양떼 모습. 주민 한종식씨 제공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면양 사업은 사실상 멈췄고, 바래봉 일대는 대신 철쭉 군락지로 이름을 떨쳤다. 산철쭉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왔고 당시 남원시와 주민들은 산철쭉이 없는 곳에 일본에서 유래한 원예종인 자산홍, 영산홍, 백철쭉을 심었다. 연한 자주색 빛을 띠는 산철쭉 외에 붉은 색을 띠는 영산홍과 색이 진한 자산홍, 흰철쭉이 어우러지면서 상춘객을 끌어 들였다.

1995년부터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는 한때 연간 50만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2018년까지도 연간 방문객은 30만명에 달한다.

◇알록달록해졌지만 일본 철쭉으로 고유종 식물은 큰 피해

20일 전북 남원 운봉읍 지리산국립공원 내 팔랑치 근처에서 바래봉 훼손지복원 상생협력 조사단에 참여한 운봉읍 주민 한종식씨가 철쭉을 살펴보고 있다. 지리산사람들 제공

드론으로 촬영한 지리산 국립공원 철쭉 군락지. 지리산사람들 제공

이날 바래봉 훼손지복원 상생협력 조사단의 조사 결과 왜철쭉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조사단은 처음에 끈을 묶는 방식으로 왜철쭉을 표시하려 했지만 개체 수가 예상보다 많아 무인 정찰기(드론)를 띄우고 도면을 활용해 산철쭉과 왜철쭉 구역을 나눠야 했다. 공단 측이 훼손 범위로 추정한 면적은 약 6만6,000㎡(약 2만평)이다.

주민들은 보기에도 좋고 관광에도 도움이 되니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야생 동식물의 터전인 국립공원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생물다양성을 복원하기 위해 왜철쭉을 없애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석곤 순천대 조경학과 교수는 “생물다양성 복원이란 사라지는 생물을 보존,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특히 고유의 자생종이 어울려서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보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왜철쭉이 이미 자리잡고 있어 산철쭉이나 신갈나무 등 고유 자생종은 이곳에 들어오기 어렵다”며 “국립공원을 마치 도시공원처럼 꾸민 인간의 실수를 국립공원 이념에 맞게 원래 생태계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년까지 토종 나무와 철쭉으로 대체하는 게 목표

바래봉 훼손지복원 상생협력 조사단은 20일 전북 남원 지리산국립공원 내 바래봉과 팔랑치 사이에 핀 흰철쭉 제거를 위해 천을 묶었다. 지리산사람들 제공

공단 측은 훼손된 지역의 생태계 회복을 돕기 위해 풀밭으로 변한 지역에는 2023년까지 지리산 동일한 고도에 서식하고 있는 신갈나무, 버드나무 등을 심고 철쭉 군락지 안에서는 일본 철쭉을 걷어낼 예정이다. 공단 측은 자연 스스로 생태계를 회복하는 ‘자연천이’를 돕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일부 지역 주민들은 철쭉 제거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한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남원시와 주민들이 예산을 들여 (철쭉) 심는 작업을 해놨는데 제거해야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다 같은 철쭉인줄 알았는데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자생종과 외래종을 구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어 “자연 환경을 위해 왜철쭉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주민들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며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일 전북 남원 지리산국립공원 내 팔랑치 부근에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전문가, 주민들로 구성된 바래봉 훼손지복원 상생협력 조사단이 철쭉을 살펴보고 있다. 지리산사람들 제공

공단도 지리산 국립공원의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소민석 지리산 국립공원 전북사무소 자원보전과 팀장은 “국립공원 보호지구를 관리하는 데 있어 지역 주민과 함께 손잡고 가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 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대체 관광지를 만드는 등 대안을 찾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윤주옥 지리산사람들 대표는 “앞으로도 생태계 복원 사업에 있어 주민들과 갈등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원칙만 밀고 나갈 게 아니라 주민들과 협업하는 방식의 복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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