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구 기자

등록 : 2018.12.22 19:00
수정 : 2018.12.23 10:18

[뒤끝뉴스] 유대인들이 베들레헴에 못가는 이유

등록 : 2018.12.22 19:00
수정 : 2018.12.23 10:18

트럼프의 친 이스라엘 행보로 ‘유대인 출입금지’ 현수막 걸려

예수탄생교회 방향을 알리는 베드레헴 시내의 표지판. 아랍어와 영어로 쓰여져 있다.

전세계인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기독교의 성지(聖地), 특히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성지들이 많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요 도시들은 이맘 때면 수많은 순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지난달 11~23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중후원으로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요르단에서는 시리아난민캠프를 찾았고, 이스라엘에서는 민관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문제를 취재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자지구 장벽, 이스라엘 정착촌 등 여러 곳이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10㎞가량 떨어진 베들레헴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에 속합니다(유엔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베를레헴의 랜드마크는 예수가 탄생했다고 알려진 동굴 위에 세워진 예수탄생교회입니다.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업이 베들레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장 베들레헴 시내에 들어서자 다른 팔레스타인(무슬림 지역)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타클로스, 순록 등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상점이 눈에 띄었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기독교 성화(聖畵)를 모티프로 한 상품들을 파는 팔레스타인 상인들의 호객소리로 왁자지껄했습니다.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기독교 성지라는 기묘한 현실이 겹쳐졌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기독교 관련 기념품을 팔던 한 상인은 무슬림의 예배시간이 되자 일을 멈추고 메카 방향을 향해 몸을 던지듯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탄생교회 앞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베들레헴에서 마냥‘사랑과 평화’라는 예수의 메시지만을 되새길 수 없도록 하는, 어두운 현실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가 베들레헴에서 일부 자치권(보건ㆍ교육ㆍ복지ㆍ조세 등)을 행사하고 있지만, 시내에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가 세운 학교가 보였습니다. UNRWA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향을 떠나야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원조하는 유엔기구입니다. 하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것과 함께 이 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으로 친(親)이스라엘 노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시내 입구에는 ‘유대인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물론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지만) 정작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인 선조인 예수의 성지를 찾을 수 없는 아이러니인 셈이지요. PA는 지난해 예수탄생교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훗날 팔레스타인국가가 세워질 때 베들레헴을 자신의 영토로 포함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팔 분쟁의 핵심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1992년 오슬로협정에 따라 베들레헴, 라말라 등 일부 팔레스타인 전통 도시에만(약 26%) PA에 치안권이 부여돼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스라엘군(IDF)이 진주하고 있으며, PA 자치도시 일부에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유지되고 있는 등 불안한 동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정착촌 건설을 확대하면서 서안지역에 대해 사실상 점령상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팔 문제의 중재자를 자임하는 미국의 선택, 예측불가능한 행보를 시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이-팔 분쟁 해법, 이른바 세기의 딜이 양 측의 오랜 분쟁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베들레헴의 불안한 지위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글ㆍ사진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크리스마스 장식을 파는 베들레헴의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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