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

등록 : 2019.12.14 04:40

[이용재의 세심한 맛] 포슬포슬~ 바삭바삭~ 주방의 팔방미인 '감자'

등록 : 2019.12.14 04:40

감자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어떤 감자로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의 지평이 달라질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감자. 묵은 추억이 둘 있다. 첫 번째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해 전의 여름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 가장 더웠던, 그리고 김일성이 죽었다며 호외가 날아든 계절이었다. 그런 여름 어느 날 오후, 시원한 대나무 돗자리에 앉아 강판으로 감자를 갈았다. 찬합처럼 생겼는데 뚜껑이 강판인지라 감자를 갈면 고스란히 밑으로 빠져 내려가 몸통에 담겼다. 딱히 몇 개라는 기약도 없이, 그저 강판이 가득 찰 때까지 갈았다.

밀가루 첨가 없는 감자전

그렇게 갈아낸 감자는 즙에 가까울 정도로 수분이 많았지만 튀김에 가까운 한국의 전 조리법에는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자작자작’을 넘어 ‘찰랑찰랑’에 가까울 정도로 기름을 팬에 붓고 달군다. 갈아낸 감자를 잘 섞어 한두 숟가락 분량만 달궈진 기름에 살포시 올린다. 감자가 설사 묽더라도 기름 덕분에 금세 모양이 고정되니 이제 부치기가 좀 수월해진다. 모양이 잡히고 가장자리가 적당히 바삭해진 것 같으면 뒤집개로 조심스레 뒤집어 마저 익힌다. 원래 감자는 기름의 흡수가 제 역할이지만, 왠지 열량이 두렵다면 종이 행주를 깐 접시에 올리면 확실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소금간은 간장의 자리를 남기느라 살짝 하더라도 밀가루는 전혀 쓰지 않는 감자전이었다. 

감자전을 만들 때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면 밀가루를 넣지 않아도 형태가 잘 잡힌다. 게티이미지뱅크

‘밀가루 첨가 없이 바삭하고 쫄깃하게’라는 문구가 붙은 감자전 믹스를 마트에서 발견했을 때 바로 그 1994년의 감자전 기억이 났다. ‘그렇지, 감자전이라면 밀가루는 넣지 말아야지.’ 사실 엄청난 이유가 있다거나 엄수해야만 하는 전통이기 때문은 아니다. 일단 익히기 시작하면 감자의 전분만으로 충분히 모양이 잡히니, 맛을 흐릴 밀가루를 굳이 넣을 필요가 없을 뿐이다. ‘밀가루 첨가 없이’라는 한 줄에 이끌려 믹스를 사다가 부쳐보았는데 참으로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감자만 갈아내면 물기가 제법 많이 나와서 달군 기름에 올려 모양이 잡히는 단계까지가 매우 번거롭다. 믹스는 이 단계의 어려움을 미리 계산하고 감자가루와 전분이 물을 빨아들여 되직하다 못해 뻑뻑한 반죽이 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죽에 가깝도록 뻑뻑한지라 떠서 팬에 올리기가 크게 어렵지 않고, 갓 갈아낸 감자처럼 산화로 색이 불그스레하게 변하지도 않는다. 다만 웬만큼 얇게 부치지 않으면 가장자리의 바삭함은 끌어내기가 어렵고 전보다 떡에 가까운 질감이 되는데, 레시피를 따르면 반죽이 뻑뻑해지므로 두께 조절이 쉽지는 않다. 까슬까슬한 건조 즉석 감자죽(그리츠ㆍgrits)을 일부 섞어 까슬까슬한 질감을 준 점도 흥미로워서 전도 나쁘지는 않지만 송편 같은 떡이나 빵의 반죽에 일부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었다. 

국내에서는 잘 부스러지는 수미감자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러셋감자 등 외국 품종들도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분 함유량에 따라 분질ㆍ점질

대부분의 감자가 안데스나 칠레 중남부를 고향으로 삼는 가운데, 선발 육종을 통해 대략 1,000종이 식용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다지도 많은 감자를 전분의 함유량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워 분류한다. 늘 헷갈리는데 전분이 많은 감자를 분질(starchy), 적은 감자를 점질(waxy)로 분류한다.

영어를 한자로 옮겨 놓으니 더 헷갈리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썰면 연하고 가루(분)가 묻어날 정도로 전분이 많아서 분질, 표면이 미끌거리고 무 같은 채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칼날이 들어가면 아주 살짝 저항하는 느낌이 든다면 점질이다. 후자가 영어 표현이 미끌거리는 밀납(wax)에서 따왔음을 안다면 잘 잊히지 않는다. 

감자의 전분 함유량이 높으면 분질, 낮아서 미끌거리면 점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무래도 식재료이므로 조리를 해보면 분질과 점질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분질의 감자는 국이나 찌개 등에서 넣고 끓이면 금세 부서진다. 채소 감자가 아니라 등뼈를 의미하는 ‘감저’에서 이름이 붙었다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의 감자탕집에서 미리 삶은 감자를 더해 내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 추측한다. 국물과 함께 끓이다 보면 날 것이 뭉개져 보잘것없어질 수 있고, 그러면 감자탕인데 감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항의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감자의 대세인 ‘수미감자’는 점질과 분질의 중간이지만 무르고 익히면 잘 부스러지는 편이다. 따라서 튀기거나 매시드 포테이토처럼 가는 수준으로 으깨지만 않는다면(살짝 으깨면 거칠거칠한 죽이, 계속 치대면 끈적한 풀이 되어 버린다), 국물 음식과 샐러드 등에 그럭저럭 쓸 수 있다. 물론 어떤 요리든 만들어 먹을 수는 있지만, 결과물이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감자를 쓴 것만큼은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감자의 조리는 대체로 더 이상 간단할 수 없는데, 잘못 으깨면 죽이나 풀이 되어 버린다고 했듯 약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데 초점을 맞춘다. 일단 그냥 먹는다면 삶기보다 수분과 접촉하지 않는 찜을 권한다. 찜기에 담아 끓을락말락 하며 수증기를 올리는 냄비 위에 올려 놓으면 끝이다.

불맛을 선호한다면 장작불 같은 직화나 오븐구이도 가능한데, 다만 감자의 크기와 수분 함유량(75% 수준)을 감안하면 맛을 얻는 대신 부피를 잃을 수 있다는 점만 염두에 두자. 한편 완전히 으깨지 않는 보통의 샐러드를 만든다면 2㎝쯤의 크기로 썰어 반드시 찬물에서 삶는다. 전기 주전자가 흔해진 세상이라 라면처럼 미리 끓여 뜨거운 물에 익히면 겉과 속이 고르게 익지 않아 설컹거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삶을 때에는 반드시 물에 소금간을 한다. 

차가운 삶은 감자와 야채, 햄 등을 곁들인 ‘독일식 감자 샐러드’. 게티이미지뱅크

대체로 샐러드는 차가운 채소 음식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감자는 마요네즈와 워낙 잘 어울리는지라 ‘찬 삶은 감자+마요네즈=감자 샐러드’로 통한다. 하지만 나름 감자 음식으로 ‘순위권’에 드는 독일의 감자 샐러드처럼 품은 안 들이면서도 색다른 맛을 얻을 수 있는 요리도 있다. 마요네즈 대신 겨자 알갱이가 드문드문 씹히는 머스터드와 식초로 드레싱을 만들어 삶은 감자가 따뜻할 때 더해 버무린다. 그대로 10분쯤 두면 따뜻한 감자가 드레싱을 더 잘 흡수해 더 깊은 맛을 내는 샐러드가 된다. 다진 양파나 파슬리 등을 더해 향을 북돋아 주면 한결 더 맛있다. 

튀긴 감자 요리인 프렌치프라이는 길쭉하고 단단한 러셋 감자를 쓰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프렌치프라이는 러셋감자로

두 번째 감자의 추억은 1998년의 일이다. 그 해 6월, 나는 제대하자마자 동사무소에 전역 신고를 하고 바로 여권을 만들어 친구가 있는 미국 동부로 떠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9ㆍ11 테러 전이라 친구가 비행기 출입구까지 마중을 나왔었다. 친구의 집은 이민자들의 전형적인 사업(세탁소 등)을 거쳐 동네 쇼핑몰에서 햄버거와 핫도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이 없이 떠난 여행이다 보니 어찌저찌해서 가게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조금씩 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감자 썰기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감자튀김, 즉 프렌치프라이를 칼로 썰어 준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크면서도 길쭉해서 낯설었던 감자(러셋 혹은 러셋 버뱅크 품종)를 씻어 길이 방향으로 틀에 올린다. 손잡이를 힘차게 아래로 내리누르면 감자가 격자무늬의 칼날 틀을 빠져나가면서 길쭉하고도 가지런히 썰린다. 이를 플라스틱 용기에 물과 함께 하룻밤 두어 전분을 적당히 뽑아낸 뒤 건져 주문에 맞춰 튀긴다.

갓 군복무를 마친 20대 청년이 26개월 해왔었던 일과 너무 결이 맞는 한편 크기 때문에라도 나름 단단한 감자가 막 누르기 시작하면 저항하다가 결국 갈래갈래 가지런히 잘리면서 틀을 쑥, 빠져나가는 과정 자체에 시원한 리듬감이 있어 때로 나는 쉬지도 않고 감자를 눌러댔다. 

마침 러셋 감자를 국내에서도 살 수 있으니 길고 가지런하게 썰 수만 있다면 직접 튀겨 먹는 게 좋지 않을까. 패스트푸드의 세계에서는 배달이라는 고난에서도 바삭함을 잃지 않도록 연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종이 포장지에 담겨 오는 동안 수증기로 예외 없이 눅눅해져 버린다.

이런 현실에 염증을 느껴 버거는 시키더라도 감자는 튀겨보고자 시도는 할 수 있지만 그러면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다. 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면? 일단 최대한 번거롭지 않은 생감자 튀김 레시피가 있다. 햄버거에 빠지면 큰일이라도 날 곁들이 음식으로 패스트푸드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되어 버렸지만, 사실 고급 양식에도 프렌치프라이의 지분은 확고하니, 레스토랑의 고급스러움과 궤를 같이 하는 감자 튀김을 내놓고자 과학 실험 수준의 시도가 조리의 역사를 수놓았다. 감자를 진공 포장해 저온에서 익힌 다음 튀기는 것처럼 조리 방식을 놓고 고민하거나 오리, 더 나아가 말의 기름으로 튀기는 등 새로운 열 매개체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프렌츠프라이를 집에서 할 때는 차가운 기름과 감자를 함께 담아 15분씩 두 번에 걸쳐 튀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가운데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가정에서 활용 가능한 프렌치프라이 레시피를 소개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거장 셰프 조엘 로부숑이 고안한 방식인데, 초벌(낮은 온도)과 재벌(높은 온도)로 두 번 나눠서 튀기는 전통 방식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감자와 기름을 채워도 절반에서 1/3은 남을 만큼 크고 넉넉한 냄비에 씻어 단면의 가로세로가 0.5㎝로 길게 썬 감자와 기름 1.5L를 함께 담아 센 불에 올린다.

맞다. 차가운 기름과 감자를 함께 담아 조리를 시작한다. 5분쯤 뒤 기름이 끓기 시작하면 뒤적이지 않고 15분 튀긴다. 마지막으로 뒤적이며 노릇하고 바삭해질 때까지 15분 더 튀긴다. 건져 종이 행주에 올려 기름기를 걷어내는 동시에 소금을 넉넉히 뿌려 간하고 바로 먹는다. 

프렌치프라이, 더 나아가 튀김이라는 조리의 번거로움을 대폭 줄여주는 레시피이지만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직접 조리’에서 ‘직접’을 절반으로 쪼개 한쪽만 쓰는 요령도 있다. 바로 냉동 감자의 활용이다. 튀김에 잘 맞는 감자를 썰어 약간의 보호막(밀가루 등)은 물론 간과 양념까지 마쳐 놓은 제품이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을 정도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으니 손질은 번거롭되 튀김의 모험만큼은 경험해보고 싶은 경우에 이보다 더 훌륭한 선택이 없다. 외식에서 감자튀김을 유난히 맛있게 먹었다면 이런 제품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으깬 감자를 맛있게 먹으려면 감자와 버터를 최대 2대1의 비율로 섞으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으깬 감자의 비밀

품종이 어울리지 않아 으깬 감자는 권하지 않는다고 그랬지만 사실 맛있는 으깬 감자에게는 품종을 초월하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버터이다. 프랑스의 요리 세계에서는 예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버터’라는 표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전해 내려 왔으니, 으깬 감자도 예외일 수가 없다. 앞서 언급했던 조엘 로부숑 셰프의 으깬 감자가 좋은 예이자 전설로 남았는데, 감자와 버터를 최대 2:1의 비율로 섞어 이름을 날렸다. 맞다, 으깬 감자 두 숟가락을 먹었다면 한 숟가락이 버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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