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 : 2020.06.09 13:33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인류를 시험대에 세운 코로나... 앞으로는 ‘새로운 공존’이 시대정신

등록 : 2020.06.09 13:33

<25> 코로나19 이후

코로나19가 격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는 분야 중 하나가 노동이다. 지난 4월 청와대 앞에서 노동자들이 항공ㆍ공항 노동자 한시적 해고 금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굿모닝 2020s’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24일이었다. 이 기획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코로나19 사태’였다.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것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다. 중국 우한에서였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사회를 뒤흔들었다. 코로나19 충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인류는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코로나19 팬데믹의 세 가지 독법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현재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 동아시아를 휩쓴 코로나19가 유럽과 미국을 거쳐 최근 남반구 라틴 아메리카를 강타하고 있다. 오는 가을 다시 북반구에 제2차 파고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이러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나는 세 가지 코드로 판독하고 싶다. 첫째, ‘글로벌 위험사회로서의 팬데믹’이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위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안과 공포의 세계화가 강화된다. 특히 전염병의 세계화는 건강과 생명에 직결돼 있는 만큼, 일단 위험이 발생하면 지구 전체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사실은 ‘위험의 불평등’ 현상이다. 새로운 위험의 영향은 국가ㆍ계급ㆍ세대에 따라 다르다. 특히, 빈곤한 나라의 국민, 사회적 접촉이 빈번한 서비스부문 노동자, 독거노인이나 미취학 아동 등과 같은 특정 세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국면사로서의 팬데믹’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말한 사건사를 넘어선 국면사의 시작을 알린다. 국면사의 프레임은 나날의 사건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사유 및 행위를 결정하는 데 기본틀을 제공한다.

‘코로나19 국면’은 전염병의 위험과 이로부터의 안전이 프레임의 핵심을 이룬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백신 개발에는 1~2년 정도의 시간이 예상되지만, 코로나19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이 팬데믹이 현재 사회 전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볼 때, 코로나19 국면은 21세기 전반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중적 뉴노멀 시대로서의 팬데믹’이다. 기존의 뉴노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여기에 전염병이라는 지구화된 위험의 불확실성이 새로운 뉴노멀로 더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 인류는 경제의 뉴노멀과 위험의 뉴노멀이 공존하는 이중적 뉴노멀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두 뉴노멀이 긴밀히 결합돼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뉴노멀이 실물경제의 침체를 낳고, 이는 다시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뉴노멀에 대처하기 위해선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이 동시에 요구된다. 경제 위기의 원인이 전염병의 세계화에 있는 만큼, 이 복합 뉴노멀이 앞으로 미칠 영향을 제대로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로 학교 수업도 파행이다.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3, 4학년 대상 3차 등교 개학일인 3일 경북 포항의 영일고에서 등교하는 1학년생들이 교사들의 환영 속에 학교 운동장을 건너가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돌아보면, 2008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변곡점이었다. 이후 가장 먼저 불평등의 ‘역습’이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했다. 이어 지난 10년 동안 인공지능의 ‘공습’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그리고 올해 예기찮게 코로나19의 ‘기습’이 지구 전체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고 있다. 불평등의 역습, 인공지능의 공습, 바이러스의 기습은 우리 인류를 새로운 시험대에 세워두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일곱 가지 전망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인류의 선 자리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갈 길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에 대해 나는 일곱 가지 전망을 하고 싶다.

①생태학적 전망. 생태학의 시각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문명의 반성’을 요청한다. 이 팬데믹은 예견된 비극이다. 코로나19는 자연 파괴의 진행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증가해 발생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는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살인자 바이러스들이 비규칙적 폭풍으로 몰아쳐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임을 경고한 바 있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생태학’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②경제학적 전망. 코로나19 팬데믹은 미증유의 ‘경제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적 차원에서 수억 명이 실업과 빈곤의 공포를 체험하고 있고,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에 각국 정부는 재정 확대로 경제 살리기에 분투하는 전방위적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DT)이 가속화하는 제4차 산업혁명과 사회 양극화를 고려할 때, ‘국가와 시장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③정치학적 전망. 팬데믹 이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국가의 귀환’을 알렸다. 지구화된 위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할 주체는 역시 일사불란한 관료제에 기반한 국가였다. 이제 신자유주의가 내건 작은 정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규칙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전염병 대책은 물론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강하고 유능한 정부’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비대면(언택트) 사회’의 도래를 알린다. 지난달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산업 전략 지원’ 토론회에 참석, 축사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④정보학적 전망. 코로나19 팬데믹은 ‘언택트사회의 도래’를 열었다. 온라인 학습ㆍ쇼핑ㆍ문화생활 등 정보사회의 새로운 만개가 인류의 오랜 걱정인 전염병의 폭풍을 통해 예기치 않게 이뤄진 것은 역설적이다. 이 팬데믹이 낳고 있는 대면과 비대면의 결합 방식은 이제 과거로 돌아가질 않을 것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들어 조직되는 ‘네트워크화된 대면ㆍ비대면 문화’가 그 새로운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⑤사회학적 전망. 사회적 차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ㆍ가족ㆍ국가의 성찰’을 가져오고 있다. 서구의 경우 방역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를 우선시했다면, 한국의 경우 확진자 동선 공개를 통해 감염병의 확산을 막았다. 그리고 이 방역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가 재발견되어 왔다. 나의 자유 못지않게 우리의 안전을 중시하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조화시키는 ‘협력주의적 상상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⑥국제정치학적 전망. 지구적 차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탈세계화의 촉진’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경제적 세계화에 제동을 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각국도생(各國圖生)은 기존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글로벌화된 바이러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훼손된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구축’이라는 역설적 과제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⑦미래학적 전망.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코로나19 이후의 미래 전망은 낙관보다 불확실성에 무게 중심이 놓인다. 앞서 말했듯, 우리 인류에겐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앞으로 바이러스는 더욱 진화하고 팬데믹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 불확실성의 미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공공의료 등 공공성의 강화, 국가ㆍ시장ㆍ시민사회의 생산적 공존,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더욱 깊은 신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19는 1929년 대공황 당시의 뉴딜 정책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가경정예산안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한국사회와 코로나19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가지 점이 특기할 만하다. 첫째, 우리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이른바 ‘K방역’을 추진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둘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생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뉴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기본소득으로 명명하긴 어렵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은 우리가 코로나19 이후 사회를 살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가장 주목할 현상은 세 가지다. 첫째, 국가의 역할이 더욱 증대할 것이다. 둘째, 소비ㆍ교육ㆍ문화 등에서 온라인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 점증할 것으로 보이는 미중 갈등에서 지혜로운 외교적 대응이 요구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지구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가 처음 가보는 길이다. 변화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무엇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국가ㆍ시장ㆍ시민사회의 새로운 공존이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더욱 활발한 탐색과 토론이 이뤄지길 나는 소망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대학’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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