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인턴 4 기자

등록 : 2020.05.31 10:24

코로나19가 높인 언어 장벽…이주 여성의 고군분투 ‘한국어 배우기’

등록 : 2020.05.31 10:24

[인턴이 가봤다] ‘에듀 테크’ 활용해 원격으로 한국어 배우는 이주 여성들

 

[저작권 한국일보] 17일 오전 경기 이천시 건강가정ㆍ다문화지원센터에서 딘디 후옌 씨가 휴대폰으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러이 씨, 결혼 전 직업은 무엇이었나요? 대답해볼까요?”

“베트남에서 엄마랑 같이 가게를 했다.”

화면 안의 선생님이 자신을 지목하자 웅우옌티러이(27) 씨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사)+ㄴ/는다’ 를 활용한 문장을 잘 만들어낸 러이 씨에게 화면 속 친구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로도 러이 씨는 마이크를 끈 채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거나 혼자 문장을 만들어 연습했다. 수업에 열중한 나머지 옆에서 기척을 내도 한참을 모르는 듯 했다.

17일 오전 경기 이천시 건강가정ㆍ다문화지원센터(다문화센터)에서는 특별한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문화센터에서, 이주 여성 학생들은 각자의 집과 센터가 마련한 별도 공간에서 ‘온라인 교실’로 모인 것이다.

주말이면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오거나 생활 상담을 위해 찾아 오는 이주 여성들로 가득 찬다는 다문화센터였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랐다. 보통 20명의 결혼 이주 여성들이 공부하고 있을 한국어 교실에는 3명만 앉아 있었다. 넓은 강의실에서 옆자리와 앞자리를 ‘지그재그’로 비워둔 채 앉은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고등학생 때 방과 후 교실이 떠올랐다.

교실 밖에 마련된 별도 공간도 마찬가지. 이주 여성들이 책상 끝과 끝에 앉아 2m 정도 떨어진 채 각자 핸드폰을 보며 화면에 나타나는 문장을 따라 읽고 있었다. 다문화센터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교실에는 딱 3명만 올 수 있게 신청을 받고 있다”며 “집보다 센터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 교실 밖에 추가로 공부할 공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동사)+ㄴ/는다’ 이후 ‘(명사)+(이)다’ 문법을 끝으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순간, 한 학생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라고 서둘러 메시지를 보냈다. 한 번 더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조애자(58) 교사가 “마지막 부분이 급하게 넘어갔다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다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라며 다시 전 페이지로 돌아갔다.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는 계속됐다. 조씨는 “앞에서는 러이 씨가 발표했으니까 이번에는 두옌 씨가 ‘-할 것이다’를 이용해 이번 여름 휴가에 대해 말해볼까요?”라며 참여를 유도했다. 그러자 두옌 씨는 “올해 여름 휴가 때는 베트남에 갈 것이다. 그런데 못 갈 거 같아요”라며 답했다. 화면 너머 멋쩍은 웃음을 짓던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얘기했다.

샤핑 씨도 마찬가지였다. 샤핑 씨는 “코로나가 끝나면 미용사 자격증을 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니지 못한다”며 배운 문법을 활용해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다시 열린 한국어 교실… 이주 여성들도 온라인 교육

 

[저작권 한국일보]이천 다문화센터 한국어 교실 조애자 교사의 수업화면. 동영상을 이용해 이주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2월 초 코로나19로 중단된 한국어 수업이 다시 열린 건 이달 초였다. 다문화센터는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산에 여느 교육 시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11년째 이주 여성들을 가르치고 있는 조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반에 15명씩, 5개 반을 운영했다”며 “한 달 평균 75명이 수업을 듣기 위해 센터에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된 이후 더 이상 오프라인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학생들의 가정에 직접 찾을 수도 없는 노릇에 조씨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다문화센터는 이를 지켜보기만 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대안 찾기에 나섰다. 바로 ‘에듀테크(edu+tech)’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에듀테크를 활용한 언택트 교육은 기존 오프라인 교육의 대안으로 떠올라 최근 국내 대학을 시작으로 중·고교에서까지 활발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이주 여성의 한국어 교육에 적용한 지방자치단체는 이천시가 처음이다. 신순철 이천 다문화센터장은 “비상교육지오컴퍼니와 손을 잡고 이달 초부터 원격으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상교육지오컴퍼니는 ‘마스터 코리안과 마스터 토픽’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국내와 베트남, 몽골, 중국, 키르기스스탄, 리투아니아 등 해외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베트남에서는 현지인들과 한국 기업의 연결을 돕고 있다. 현재는 이천 다문화센터에 줌 프로그램을 통한 원격 교육에 적합한 한국어 교육 콘텐츠와 수업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기존 이러닝 프로그램 활용해 새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저작권 한국일보]17일 경기 이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강의실에 걸린 교육 홍보 현수막. 정준희 인턴기자

비상교육이 처음부터 ‘실시간’ 원격교육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노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외국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마스터 코리안과 마스터 토픽’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 형식의 이러닝(E-learning)과 교실에서 사용하는 스마트 러닝 프로그램인 클라스(KLaSS)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교육이 어려워 지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꼭 필요한 이들을 위해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노 대표는 “화상 테스트를 거쳐 지난달부터 줌(Zoom)과 웹엑스(WebEx) 등 화상통화 시스템과 클라스 프로그램을 결합해서 ‘온클라스’(On-KLaSS)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특히 개발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수강생들의 환경에 따라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노 대표는 “혼자서 공부하는 상황과 교사로부터 강의를 듣는 상황에 따라 다른 콘텐츠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해외에서 쓰는 기존 콘텐츠는 한국어를 잘 하는 현지인을 고용해 한국어 교육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에 비해 새롭게 만든 콘텐츠에는 국내 전문 성우들의 발음과 전문 배우들의 연기를 담았다. 좀 더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 확산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한 한국어 교육은 병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 참에 원격 교육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사들 “새로운 한국어 교육 자료와 교육 방식이 큰 도움”

[저작권 한국일보] 노중일 비상교육지오컴퍼니 대표가 새로운 원격 한국어 교육 콘텐츠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그 동안 수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다문화센터를 통해 받아 온 한국어 교육은 시설이나 콘텐츠 내용 모두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 강사의 준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교육 콘텐츠가 제대로 활용되려면 무엇보다 강사의 역량을 끌어 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신순철 이천 다문화센터장은 “3월부터 한국어 교실을 다시 열고자 했지만 선생님들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새로운 교육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생님들에 대한 교육을 먼저 진행했다. 지난달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차례에 걸쳐 강사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을 진행했던 비상교육 관계자는“선생님들도 처음 접하는 원격 교육이다 보니 처음에는 얼떨떨해 했다”고 전했다. 그 동안은 교사 각자의 재량으로 강의 자료를 만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비상교육이 만든 콘텐츠를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나아졌다는 게 교사들의 평가다.

조씨는“처음에는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새로운 교육 흐름에 어울리는 교육 방법을 배울 수 있어 힘이 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속 한국어 교육은 이주 여성에게 가뭄의 단비

 

[저작권 한국일보] 후옌 씨가 이주 여성에게 한국어 교육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이주 여성들에게 언어는 곧 ‘생존 수단’이다. 한국에 오기 전 베트남에 있는 결혼 정보 회사에서 한 달 가량 한국어를 배우긴 하지만, 바로 한국 생활을 시작하기에는 턱 없이 모자라는 실력이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체계적 교육이 꼭 필요하다.

한국에 온 지 8년 째인 러이 씨는 “수업을 듣지 못한 3개월 동안 (한국어를) 많이 까먹었다”고 토로했다. 한국 생활 12년 차인 뜨응티디엠친(34)씨도 “말하기뿐만 아니라 쓰기와 읽기를 알아야 집에서 아이들 한글 공부를 봐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라며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부모로서 이겨내야 하는 언어 장벽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그들에게 오랜만에 열린 수업은 ‘가뭄의 단비’였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 “오늘 수업 내용을 집에서 다시 보고 싶어요”라며 녹화 방법을 묻는가 하면 “한국어를 다시 배우게 돼서 기쁘다”라며 올해 정말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조 선생님는 “오랫동안 수업을 접하지 못한 이주 여성들이 흥미를 잃어버릴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참여도가 높아 기뻤다”며 “앞으로 한국어 교육도 원격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에 나도 수강생들도 모두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며느리의 한국어 공부 위해 도우미로 나선 시어머니

 

[저작권 한국일보] 이천 다문화센터에서 이주 여성들이 원격으로 이뤄지는 한국어 교육을 들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팜티반안(37), 웅우옌티러이(27), 뜨응티디엠친(34), 딘티후옌(30)씨. 정준희 인턴기자

다행히 원격 교육을 통해 한국어를 다시 배울 수 있게 됐지만 이주 여성들의 마음 속 한 켠은 여전히 걱정이 있었다.

그들은 학생인 동시에, 어머니이자 직원이기 때문이다. 후옌 씨는 2012년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가정을 꾸렸다. 평일에는 카페에 출근 해야 하고, 야근을 하면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10살, 8살 자녀들을 돌봐야 한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다문화센터에서 돌봄 교실이 동시에 열려 수업을 듣는 동안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돌봄 교실 운영이 중단된 후 이주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수업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뜨응티디엠친씨 또한 “집에서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가 없었다”며 “아이가 ‘엄마 뭐해, 나랑 놀아줘’라고 해 계속 붙어있어야 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가족들이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문화센터에 아이들을 맡길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은 시간을 쪼개 육아를 분담하기 시작했다. 화상으로 실시간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다 보니 교사나 다른 수강생들에게 방해가 되고 본인 또한 집중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털어놓자 시부모님과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것.

신순철 센터장은 “평소 손자들 육아에 신경 쓰지 않던 시부모님들이 최근 한국어 수업을 계기로 배려를 해주기 시작했다”고 다문화센터장은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뜻 밖에도 가족들끼리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

다문화센터도 이주 여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어 교육 말고도 다양한 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집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줌 프로그램을 통해 손세정제 만들기, 마스크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신 센터장은 “코로나19가 금방 끝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생활 교육에 대한 대책도 강구했다”며 “집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시민들과 이주민들에게 안내하고 집콕 놀이 키트를 각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어 교육의 … 아직 갈 길이 멀다

 

[저작권 한국일보] 경기 이천시 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 모습. 정준희 인턴기자

한국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각종 교육 현장에서 언택트 교육의 가능성을 엿봤다. 지금의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제2, 제3의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다시 퍼질 것을 대비해 방역뿐만이 아니라 교육도 체계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6년 12월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펴낸 정책보고서 ‘경기도 다문화가족 정책수요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내 여성결혼이민자 541명 중 33%가 한국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언어문제’를 뽑았다. 여전히 세 명 중 한 명은 한글을 배우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 결혼 이민자들은 한국어교육 정책에 대해 ‘한국어교육은 방문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22.4%로 가장 많이 응답했다. 그 뒤를 이어 ‘강의시간이 더 다양해 졌으면 한다’(22.2%), ‘상위단계의 수업이 많아져야 한다’(19.0%)고 답했다.

이렇게 한국어교육에 대한 요구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노중일 대표는 “기존 교육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대화할 때, 회사에 입사해서 서류를 낼 때, 병원에 가서 쓰는 말처럼 한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교육을 더 고민 해야 한다”며 “정부도 코로나19 이후에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천= 이태웅∙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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