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기자

등록 : 2020.05.10 14:36

[똑똑, 뉴구세요?]대기업 박차고 나와 ‘셀프 출판’ 사업 뛰어든 ‘책 덕후’

등록 : 2020.05.10 14:36

황상철 대표, 네이버 SK거쳐 출판 플랫폼 ‘에스프레소북’ 창업

일상 기록 후 출판까지 ‘나만의 책 만들기’ 앱 개발…가입 회원 6만명

“소아 환우들이 쓴 감사 책,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여행기 기억에 남아”

출판 플랫폼 전문 스타트업 에스프레소북을 운영하는 황상철 대표. 박민정 기자

최근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이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요. 이런 일상을 한 권의 책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책을 출판한다고 하면 돈도 많이 들고 과정도 복잡할 것 같은데요.

삼성SDS, 네이버, SK 플래닛 등 대기업에서 16년 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던 한 회사원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리 없이 책을 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습니다. 출판 플랫폼 전문 스타트업 ‘에스프레소북’을 운영하는 황상철 대표 이야기입니다. 황 대표가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출판 서비스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을까요?

◇“에스프레소 한 잔 하며…” 일상 기록 후 책 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을 마친 뒤,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놓고 본인이 쓰고 싶은 시나 수필, 일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거죠. 그게 나중에 모여서 책으로도 나오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황 대표는 이 같은 서비스를 꿈꿨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셀프 출판을 위한 서비스 앱 ‘하루북’입니다. 하루북은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글쓰기부터 디자인ㆍ편집ㆍ인쇄 등 책 출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 앱을 통해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전국 70여개 초ㆍ중ㆍ고 학교 및 도서관, 공공기관에서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을 사용하고 있다. 에스프레소북 홈페이지

하루북은 현재 모바일로 이용 가능한데요. 앱을 다운받아 설치한 뒤 먼저 본인의 일상이나 쓰고 싶은 글을 기록합니다. 글은 비공개 설정이 기본으로 ‘남이 내 글을 보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글을 앱 사용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면 ‘공개’ 설정을 적용하면 됩니다.

본격적으로 글 작성! 글자로만 한 페이지를 채워도 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이지에 직접 찍은 사진을 넣는 건 물론, 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이미지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들입니다.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을 이용해 글쓰기와 디자인 등 편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루북 홈페이지

또 글자 크기, 위치, 색상, 폰트 등 모두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데요. ‘나만의 책 만들기’가 앱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 글이 책으로 나왔을 때를 생각하며 디자인하면 좋겠죠. ‘나는 디자인하기 귀찮은데’ 싶으면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 선택한 뒤 글만 작성해도 됩니다. 앱은 200여종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어 이용자는 자신의 글 성격에 맞는 이미지를 선택해 사용하면 되는 것이죠.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이제 어느 정도 콘텐츠가 완성됐다면 책 만들기를 할 수 있는데요. 이때 책 만들기 비용은 이용자가 지불합니다. 먼저 만들 책의 제목과 페이지 수 등을 정합니다. 최소 20페이지부터 365페이지까지 가능한데요. 지난해 기준 책 만들기 가격은 20페이지 4,900원, 36페이지 6,500원, 108페이지 1만5,200원, 365페이지 3만4,000원 등 페이지 수에 따라 내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책 한 권 사는 가격으로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을 통해 자신이 만들 책의 제목과 페이지 수 등을 정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북 홈페이지

책 만들기를 결심했다면 자신이 그 동안 기록한 글 가운데 실제 출간될 책 페이지에 들어갈 내용을 지정합니다. 페이지를 모두 채운 뒤 결제를 하고 주문자 정보를 입력하면 끝인데요.

하루북에서 출간되는 모든 책은 전 페이지가 컬러지만 흑백으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책 주문 가격이 할인됩니다. 책을 주문한 뒤 검수를 거쳐 인쇄 완료까지는 딱 하루가 걸립니다. 배송 거리에 따라 이용자에게 책이 배달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책 편집 후 주문하기 버튼을 누른 뒤 책이 인쇄소에서 나오기까지는 하루면 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기준 하루북에서는 한 달 평균 70~100종의 책이 출간됐습니다. 올해 4월 기준 앱 가입자는 약 6만명이고요. 특히 전국 70여개 초ㆍ중ㆍ고 학교 및 도서관, 공공기관에서 하루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앱 사용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 요청으로 이번 달 안으로 데스크톱에서도 사용 가능한 웹 버전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중학생들이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을 통해 직접 만든 책. 에스프레소북 홈페이지

창업 전, 회사 생활을 할 때부터 책을 곁에 뒀다는 황 대표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현재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출판 플랫폼 업체를 창업한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황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황상철 에스프레소북 대표. 박민정 기자

-원래 책과 친했나요

“창업 전 엔지니어로 15년 넘게 일하면서 정보통신(IT) 분야 책을 쓰고 번역하는 걸 좋아했어요. 블로그, 커뮤니티 활동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이미 이 사업을 하기 전에 출판업계 사람들도 많이 알았고 책이랑 친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프로그래머로 산다는 것’ 등 IT 관련 책을 6권 정도 내기도 했죠”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녔는데, 왜 갑자기 창업에 나섰나요

“처음에는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전자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하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진짜 그만두고 3~4개월 뒤에 바로 서비스 오픈을 했죠. 에스프레소닷컴이라는 서비스로 2017년 6월쯤 시작했어요. 하루북 서비스는 2018년 말에 오픈했고요”

-사업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주변에 사업하는 친구들이 좀 있는데 그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하지 마라. 그냥 주말에 취미로 해라’였어요. ‘너 월급도 많이 받고 개발도 잘하는데 왜 돈 안 되는 거 하려고 하냐’고 하더라고요. 이미 사표 냈다고 하니까 ‘사표 물러라’라며 다들 말렸고 찬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사업이 자리를 잡은 건 언제부터였나요

“처음에 하루북을 바로 서비스한 건 아니에요. 2017년 6월쯤 에스프레소닷컴이라고 ‘블로그 쓰듯이 책 쓰세요’라는 모토의 온라인 기반 전자책 만들기 서비스가 첫 아이템이었어요. 첫 사업이니 잘 될 리가 없었죠. 2018년에는 이용자가 꾸준히 올라갔지만 문제는 제대로 돈을 못 벌었어요”

-왜 돈을 못 번 건가요. 에스프레소닷컴이 어떤 서비스이기에

“에스프레소닷컴은 이용자가 책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직접 지불하는 하루북과는 반대로 책 만들기 비용을 회사 측에서 부담하는 방식이었어요. 좋은 글을 봐뒀다가 1년에 20권을 냈죠. 출판사에서 1년에 1종 내는 곳도 있는 걸 고려하면 엄청나게 많이 낸 거죠. 저자들은 좋아했지만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했어요. 책이 팔려야 수익을 내는데 당시에는 책도 잘 팔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하루북 서비스를 오픈한 건가요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2018년 도쿄 도서전을 갔는데 우연히 본 책이 누군가의 하루하루 일상이 모여 1년이 되는 책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이 12월 마지막 날로 완결되는 책인데 이때 일상이 모여 곧 책이 된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2018년 말에 하루북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초기 가입자는 1,000명 정도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6만명으로 늘었죠”

-일상, 하루가 모여 책이 된다는 뜻은 알겠지만, 하루북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하루를 쓰다’로 하려고 했는데 이미 상표 등록이 돼 있더라고요. 고민하다 책의 가장 좋은 소재는 사람들의 일상이라 생각했고 그게 쌓이는 게 책이라 하루북으로 정했는데 지금은 그게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저희 주문 제작 시스템이 주문부터 배송까지 하루 만에 끝나기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 이름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 이용자들이 출간한 책. 에스프레소북 홈페이지

-단 한 권도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인쇄소에서 흔쾌히 작업을 해주나요

“처음에는 인쇄소에서 면박을 많이 당했죠. 소량 인쇄는 단가가 안 맞으니까 같이 일을 안 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직접 뛰어다니면서 저와 코드가 잘 맞는, 제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인쇄소를 찾았죠.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인쇄 맡기는 물량도 늘어나니까 이제는 반대로 인쇄소 측에서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어요. 앞으로 인쇄소도 늘려갈 생각입니다”

-해외 진출이 거의 성사됐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면 취소됐다고 들었는데요

“대만 진출 계획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전면 취소됐어요. 2020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이 2월 4일부터 열리기로 돼 있었거든요. 그 행사에 하루북이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 출판 플랫폼으로 참가하고, 도서전 방문객 중 신청한 분들을 대상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도서전이 취소되면서 해외 진출 계획도 무산됐죠. 그래서 올해 목표를 해외가 아닌 국내 시장 확장에 주력하는 것으로 바꿨어요. 이번 달 공개될 웹 버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책 만들기 가격이 저렴한데 수익이 남나요

“책을 제작할 때 이용자들이 내는 금액 가운데 10~15%가 수익금으로 떨어지는 구조예요. 책을 소량으로 만들어주면서도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건 자동화 때문이죠. 제작 과정 대부분이 자동화인데 앞으로는 현재 사람이 하고 있는 검수도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시키려고 해요. 이런 방식은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지금 시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해요”

셀프 출판 서비스 앱 하루북을 이용해 만들어진 여행기. 박민정 기자

-여러 사람들 책을 봤을 텐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지방에 있는 소아 환우들을 돌보는 병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근속한 선생님이 병원을 떠나게 되셨대요. 그래서 병원에 있는 동료들이 하루북 함께 쓰기 기능을 이용해서 선생님을 위한 책을 만들었어요. 이 책을 선생님 떠나기 전에 주고 싶다고 기한에 맞춰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또 며느리가 시어머니하고 친정엄마와 함께한 여행기를 쓴 책도 기억이 나고요”

-하루북을 이용해 책으로 만들면 좋을 콘텐츠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가장 좋은 건 여행기인 것 같아요. 여행 당시 느낀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남겨두면 나중에 더 기억에 많이 남잖아요. 사진과 글을 마음대로 배치해서 넣을 수 있으니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여행 후기 콘텐츠로 책을 많이 만드세요. 또 친구나 애인, 가족들에게 책을 만들어 주면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되죠”

-책 쓰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사람들은 책을 쓴다고 하면 꼭 대단해야 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죠. 그 일상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고요. 저희 모토가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거든요. 책을 만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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