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중
의학전문기자

등록 : 2019.10.17 08:39

입원 어려운 정신질환자들…국공립병원은 빈 자리 없고, 민간병원은 수가 낮아 꺼려

등록 : 2019.10.17 08:39

[진주참사 6개월, 정신질환 응급현장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후 보호입원 절차 까다로워 환자 입원 못해

병원, 수가 낮고 보호입원 챙길 서류 많아 “자의·동의입원만 선호”

“보호의무자 조건이 맞지 않아 입원을 할 수 없다고요? 내가 이 사람 아내인데 뭘 더 바랍니까? 조현병에 알코올중독까지 있는 사람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수개월 전 새벽 1시쯤, 강원도 강릉시에 거주하는 A(59)씨는 술에 취해 귀가한 남편 B(60)씨의 주사와 폭행에 위험을 느끼고 119에 신고해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한 정신병원으로 남편을 데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환자의 동의 없이 가족의 동의만으로 입원시키는 ‘보호입원’을 신청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보호의무자 2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며 B씨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없는데다, 직계가족인 아들이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어 올 수 없다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 없이는 입원시킬 수 없다”며 거부했다.

16일 경기 화성시의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화성시는 인력이 다른 지역의 5배 수준에 이르는 대형센터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20, 30대 여성 직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전원이 계약직인 점은 동일하다. 정신질환자들을 방문해 치료를 지원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제공

◇입원병원 없어 전국 유랑… 입원 불만 보호자 폭행도

지난 4월 17일 진주에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당시 투약과 입원을 거부하는 안인득을 치료하기 위해 형 등 가족들이 여러 차례 비자의입원(환자 동의 없는 입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현재까지 비자의입원과 관련한 법ㆍ제도 개편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병원들이 강화된 정신건강복지법을 이유로 비자의입원을 기피하고, 입원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5월 말부터 시행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상 비자의입원은 가족의 동의로 입원하는 ‘보호입원’과 시군구 지자체장의 동의로 입원하는 ‘행정입원’ 및 ‘응급입원’ 등 세 가지다. 이중 보호입원 시에는 직계혈족 및 배우자 등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비자의입원 시 1개월 내 입원적합성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심사에서 탈락하는 사유의 약 70%가 ‘서류 미비’다. 서류ㆍ절차가 까다롭고 자칫 심사에서 탈락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민간병원은 비자의입원을 받아주기를 꺼리고, 국공립 병원에는 빈 자리가 없다. 보호자들은 입원시킬 병원을 찾아 전국을 헤매지만 끝내 찾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충북 청주시에서 아들 C(34)씨와 살고 있는 어머니 D(52)씨는 지난 6월 아들에게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20대 초반부터 조현병을 앓은 C씨는 입원했던 정신병원에서 5월에 퇴원한 후 처방 받은 약을 복용하지 않고 지내다가 증상이 악화됐다. D씨는 청주는 물론 충북 전역의 정신병원을 알아봤지만 입원을 받아준다는 병원은 없었다. 대구와 부산 병원까지 샅샅이 알아봤지만 병원들은 “보호입원은 받지 않습니다” “입원시킬 병실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간이 흐르자 C씨는 멀쩡한 자신을 입원시키려 한다며 D씨를 폭행했다. 아들에게 맞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1주일 입원했던 D씨는 “아들이 과거 알코올중독환자, 치매환자들과 섞여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면서 고통을 겪은 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나를 원망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혼자 살거나 노숙자 등 가족이 없는 경우, 자ㆍ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과 경찰 1명의 동의로 3일간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해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시내 정신질환자가 응급입원을 할 수 있는 정신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32곳이지만, 이 중에서 실제 응급상황 발생 시 병상을 내어주는 민간 병원은 거의 없다. 오히려 입원수가가 낮아 정신병동을 줄이거나 병동 자체를 폐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공립 병원 병상도 포화상태다. 환자를 경찰서 구치소에서 재운 후 다음 날 입원시킬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일마저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성동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관은 “근처에 한양대병원이 있지만 신고가 들어온 정신질환자 대부분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은평병원으로 간다”며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오후 내내 병원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병원에 보호입원 환자 없고, 자의ㆍ동의 환자만 가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과 정신질환자 보호자 단체들은 입원절차를 까다롭게 규정한 정신건강복지법이 현실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성용 경기 의왕시 계요병원 과장은 “안인득의 경우 형이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직계가족이 아니라고 거부당했는데, 이처럼 환자 직계가족이 아니면 보호입원을 할 수 없는 점이 긴급 상황에 가장 큰 걸림돌”라고 지적했다. 보호입원 시 의사가 환자에게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제2조의 내용을 서면으로 알리면서 환자의 권리 등을 구두로 설명한 후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긴급 상황에 쉽지 않은 절차다. 박 과장은 “입원을 거부하려는 환자들은 서명은 고사하고 오히려 권리고지서를 찢어버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입원적합성 심사 통과를 위한 서류 준비도 까다롭고 보호입원 환자 수가가 높은 것도 아니라 대부분 병원이 보호입원 환자를 꺼린다“며 “병원에는 자의ㆍ동의입원을 한 환자들만 가득하다”고 덧붙였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중앙회장은 “협회에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아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민간병원은 물론 시립, 국립병원 모두 병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대놓고 ’보호입원이면 받지 않는다‘고 말한 병원들도 다수”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정신질환이 악화돼 범죄를 저질러야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환자 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방치해 병을 키우는 것 역시 인권 존중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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