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기자

등록 : 2020.06.08 08:00

기적 꿈꾸며 바다 건넌 조기축구팀의 잊지 못할 ‘짠내투어’

등록 : 2020.06.08 08:00

인천송월FC, FA컵 2라운드 제주 원정서 0-4 패배… 무한도전은 계속

K5리그 인천송월FC 선수들이 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 FA컵 2라운드 경기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천송월FC 제공

대한축구협회 주최 FA컵 2라운드가 열린 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선 0-4 완패를 당하고도 “잘했다”며 승자처럼 서로를 격려한 팀이 있었다. 동호인 축구클럽이 참가하는 K5리그(5부리그)에서 인천 중구를 연고로 하는 인천송월FC다.

이들은 흔히 ‘조기축구회’로 불리는 동호인 축구클럽이다. 그간 제도권에 들지 못했지만 대한축구협회가 2017년부터 프로리그인 K리그1ㆍK리그2 아래 세미프로리그인 K3, K4리그를 운영했고, 그 아래 동호인 축구클럽이 뛰는 K5, K6, K7리그를 구축하면서 정식 리그에 편입됐다. 2000년 프랑스 FA컵에서 프로팀들을 꺾고 결승까지 오른 ‘칼레의 기적’을 쓴 프랑스 4부리그팀 라싱 유니온FC 칼레 같은 스토리의 시작점이었다.

지난해 K5리그 인천권역 우승팀 자격으로 FA컵 출전자격을 얻은 송월FC 선수들은 1라운드에서 대구경북 권역 우승팀 가람FC를 꺾고 2라운드 진출해 제주와 맞붙었다. 이날 제주 원정은 꿈 같은 대결이자, 무한도전이었다. 선수 대부분은 학생 때 축구선수로 뛰다 프로 진출 꿈을 접거나, 프로 무대에서 일찌감치 은퇴한 이들, 혹은 그저 축구를 즐기던 비선수 출신까지 모여있다.

K리그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에 입단하고도 프로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던 송월FC 공격수 김도연(31)은 “우리 팀 선수 가운덴 나처럼 유소년 축구강사 등 축구계 종사자는 물론 동화엠파크에서 일하는 중고차 딜러, 경찰, 목회자까지 모여있다”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골키퍼로 활약하다 선수 생활을 접었다는 진경수 송월FC 감독도 본업은 수상레저 강사다. 한 선수는 이날 제주 선수 태클에 나뒹굴면서도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이라며 밥벌이 걱정부터 했단다.

선수들이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데다 구단 재정도 넉넉지 않다 보니 이번 제주 원정은 그야말로 ‘짠내투어’였다. 진 감독에 따르면 선수단은 경기 전날인 5일 오후 7시20분과 9시30분 출발 비행기로 나뉘어 김포공항을 출발, 제주에 도착했다. 20여명이 움직이는 단체 여정이지만, 여행사에 맡기면 수수료가 100만원이 넘게 들어 진 감독 아내가 선수들의 퇴근 일정을 취합해 일일이 티켓팅을 했다.

프로팀처럼 대형 버스를 구하지도 못해 학원차량으로 흔히 쓰이는 30인승 버스를 대여했다. 숙소도 서귀포시내에서 가성비 높은 곳을 고르고 골라 예약했는데, 체크아웃 시간(오전11시)과 경기 시작시간(오후3시) 틈이 커 식사 후 카페에 모여 앉아 작전시간을 가졌다. 경기를 마친 뒤에도 하루쯤 더 쉴 법도 했지만, 저녁식사 후 곧장 김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이 원정 비용을 아끼고, 이튿날 출근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축구협회와 제주 구단 배려도 있었다. 같은 라운드 대부분의 경기가 저녁에 편성된 것과 달리 이들의 경기를 오후 3시에 편성한 게 대표적이다. 제주 선수단은 경기 전 송월FC 선수들을 배려해 4번의 득점 때 모두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전반에만 3골을 먹고 후반을 1실점으로 막은 송월FC 선수들이 경기 후 활짝 웃을 수 있었던 이유다.

진 감독은 송월FC의 도전을 도운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와 지역 체육단체에서 지원금이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 내년에도 FA컵 출전기회가 주어진다면 내륙팀과 붙었으면 한다”고 농반진반 소감을 전하면서도 “송월FC 선수들의 제주 원정을 응원한다며 수십만원씩 모아 봉투를 건넨 지역 내 다른 조기축구회, FA컵에 한해 스폰서를 자처한 화장품판매업체 티에이인터내셔널 이성 대표 등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원정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귀포=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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