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성 기자

등록 : 2020.06.01 07:00

“코로나 이후 의료복지 빙자한 ‘메디컬 파시즘’ 출현할 수 있다”

등록 : 2020.06.01 07:00

임지현 서강대 교수

최근 서울 신수동 연구실에서 본보와 만난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래할 세계를 전망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한국이 ‘메디컬 파시즘’이 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경고했다. 서재훈 기자

“20세기 ‘대중 독재’를 능가하는 ‘메디컬 파시즘’(의료 전체주의)이 코로나19 이후 출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서울 신수동 연구실에서 만난 임지현(61)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전망은 서늘했다. “질병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존재론적 위기가 ‘생체 정치’(bio-politicsㆍ생명 관리 권력의 통치), ‘첨단 기술 감시’(high-tech surveillance) 같은 문제를 완전히 묻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현 상황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였다.

얼마 전 임 교수는 ‘토인비상(賞)재단’에 에세이를 써 보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국가 대 개인’, ‘자본 대 노동’, ‘인류세 대 자본세’ 등 3가지 축으로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토인비상은 격년으로 탁월한 세계사 분야 저작에 주어지는 상인데, ‘우리 안의 파시즘’, ‘대중 독재’ 같은 개념을 주조해낸 그는 토인비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재단 위원회의 아시아 멤버다.

재단에 투고한 글과 관련해 이야기하던 임 교수는 역사상 모든 독재 체제가 ‘비상 상태’의 규정에 따라 확보된 비상 권력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의 코로나19 비상 시국이 그와 같은 상태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치적 비상 사태와 유사한 의료적 비상 사태가 벌어졌고, ‘의료 복지’를 빙자한 ‘의료 전체주의’ 또는 ‘위생 독재’가 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K방역’의 성공에 자만하고 환호하기만 해선 안 된다고 여기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우선 “긴급을 핑계 삼은 절차의 누락”을 염려했다. 우리 정부의 감염자 동선 추적에 대해 “비록 중국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감시하진 않았지만 추적 허용에 필요한 법적 판단이 충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는 짐작이다.

메디컬 파시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임 교수는 “사람 목숨의 가치를 사회적인 위계에 따라 배열하거나 다수에 이익이 되느냐 여부를 치료의 기준으로 삼는 도구적 합리성이 극도로 강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앞으로 감염병 대유행 국면마다 ‘외국인은 버리고 가자’는 식의 비정한 결정이 다수결로 이뤄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그는 내다봤다.

이런 우려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고언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방역이 그러했듯 ‘국민의 뜻’을 내세워 무엇이든 해결하려는 청와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빈농의 자식’을 자처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의 고운 손이 밉다’는 시까지 지어가며 자발적 동원 체제를 만들고 싶어했던 포퓰리스트였고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지식인들을 꾸짖었다”면서 “하지만 형식이나마 ‘국민 투표’를 거쳤다는 점에서 ‘청와대 국민 청원’에 의존하는 현 정부보다는 제도적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근대 민주주의가 ‘다수ㆍ주류는 다 옳다’는 식의 다수의 독재로 갈 여지가 다분한 만큼 소수자의 목소리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민주주의를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현 정부 지지자 일부의 맹목성이 파시즘을 키울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며 민족주의자로 길러졌다가 대학 때 김일성으로 고개를 돌렸던 이들 중 상당수가 노무현ㆍ문재인 팬덤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얼굴만 바뀐 박정희주의’, ‘반대편에 선 박정희주의’ 아니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5월 25일 서울 신수동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중인 임지현 서강대 교수. 서재훈 기자

코로나 사태는 ‘자본 대 노동’ 구도도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원격ㆍ재택 근무를 시켜본 뒤 노동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각성과 확신을 자본이 하게 돼서다. 인공지능(AI)은 이미 많은 일을 한다. 이는 곧 노동의 위기다. 임 교수는 “자본 진영이 자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고용 비용을 줄이려 시도할 게 뻔한 만큼, 노동자 간 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흑사병이 휩쓸고 간 14세기 유럽에서는 토지 대비 인구가 대폭 감소하며 살아남은 농노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자본ㆍ노동의 처지가 지금과 반대였지만, 상황이 농노에게 유리하게만 전개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영주ㆍ농노 간 ‘힘의 관계’가 변수였기 때문”이라며 “코로나 사태 이후 노조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실제 응집도 이뤄지고 있는 만큼 자본ㆍ노동 간 씨름이 어떻게 결론 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더 주목하는 대목은 ‘노동 진영 내 분화’다. 그는 “‘덜 일하고 덜 받겠다’는 라이프스타일 비정규 노동자가 등장한 반면 노조조차 꿈꿀 수 없는 하위계급 노동자도 다른 편에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며 “기본소득이라든지 공정한 룰이 작동하는 시장경제 같은, 자본 대 노동이라는 기존 냉전적 이분법을 벗어난 상상력이 절실해졌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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