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순
기자

등록 : 2020.05.25 04:30

[법조캐슬, 사실은?] n번방 이후... 수사 위해 범죄 가담 ‘국가의 위법 허용’ 딜레마

등록 : 2020.05.25 04:30

<18> ‘양날의 검’ 잠입수사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 비밀수사관 이자성(왼쪽)이 경찰 상관인 최과장에게 잠입수사를 중단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영화 제공

“어이, 브라더! 너 저 드럼통에 뭐 들어있는지 한번 볼래?”

범죄영화 ‘신세계’에서 폭력조직 2인자 정청(황정민 분)은 8년간 동고동락했던 이자성(이정재 분)의 바둑 교사가 경찰관이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자성에게 알린다. 그 또한 폭력조직에 잠입한 비밀요원이던 자성은 자기 정체까지 탄로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식은 땀을 흘린다. 중국에서 온 해결사들이 바둑교사를 고문해 죽이려 하자, 자성은 결국 동료 경찰관이던 바둑교사를 자기 손으로 처치한다.

이처럼 비밀요원의 잠입수사는 범죄물의 단골 소재다. 언제 정체를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감, 수사관이면서 범죄를 행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영화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n번방 계기로 본격화된 잠입수사 논의

잠입수사는 수사관이 신분을 위장해 범죄조직 등을 상대로 벌이는 수사활동을 의미한다. 범죄가 갈수록 조직화되고 은밀해져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자, 국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수사기법이다.

영화 같은 창작물에는 비밀요원이 살인에까지 가담한다는 극단적 설정이 많지만, 실제 한국 법체계에서 이런 상황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미국 등 잠입수사가 활성화된 나라에 비해 법적 근거는 아예 없고 판례상 허용 범위도 매우 좁다.

실제 수사에서도 다크웹 등에서 마약이나 성(性)을 판매하는 홍보 글을 보고 접근해서 검거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징계를 받거나 위법수집 증거(형사소송법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인정되지 않는 것)의 위험이 있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렵게 잠입수사를 시작하더라도 제약이 많다. 실제 마약 거래를 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된다. 거래 직전 상대방 의사만 확인 한 뒤, 마약 판매 혐의가 아닌 마약 소지 혐의로, 성매매 혐의가 아닌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검거하는 식이었다.

이처럼 소극적이었던 잠입수사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n번방 사건’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한 파렴치한 범죄임에도, 수사기관의 단속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n번방’은 성착취물을 구매하거나 다른 성착취물을 올리는 등 자기 범죄를 인증해야만 진입할 수 있는 구조여서, 법을 지켜야 하는 수사기관이 그 방에 들어가기 불가능한 구조였다. 강력범죄 수사를 주로 맡아 온 한 부장검사는 “마약이나 성착취물 거래는 닫힌 커뮤니티에서 이뤄지고, 자신의 범행을 인증해야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며 “검거와 처벌을 위해 잠입수사 도입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독일과 미국의 잠입수사/2020-05-24(한국일보)

◇비밀요원 면책 미국서도 논란

이처럼 잠입수사는 악질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위법 소지를 허용하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핵심은 면책이다. 현직 수사관 신분의 비밀요원이 단속을 위해 저지르는 범죄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마약ㆍ무기ㆍ뇌물 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명시적 피해자가 존재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자칫 국가 수사기관이 부분적으로나마 성범죄 피해를 방조하고 가해에 가담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잠입수사가 가장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플레이펜(Playpen)’ 사건은 “가장 성공한 수사”라는 찬사와 “있을 수 없는 수사”라는 악평을 동시에 받는다. FBI는 2015년 2월 아동음란 사이트 ‘플레이펜’ 서버를 압수한 뒤, 사이트를 즉각 폐쇄하는 대신 약 2주동안 직접 음란 사이트를 운영했다. 이 기간 동안 접속자에게 악성코드를 심어 이용자의 고유주소(IP)를 추적했고, 137명을 일망타진했다. 그러나 당시 타코마 연방법원의 로버트 브라이언 판사는 “FBI가 수백명의 피해자 아이들을 그들이나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미끼로 사용하며 다시 희생시켰다”고 비판했다.

◇성인 연기자 활용한 ‘가짜’ 제작 아이디어도

뒤늦게 잠입수사 도입을 공식화한 정부의 고민도 깊다. 위법성 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잠입수사 방식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 아이디어는 수사관이 미성년자로 위장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하면서 접근하는 남성 등과 대화하며 정보 수집을 이어가는 것이다. 수사관이 성착취물 구매자인 척 활동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이 실제 성착취물을 온라인에 올리거나 내려받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가짜 성착취물’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동의 받은 성인 연기자 촬영물을 미성년 성착취물처럼 올려 고액방에 잠입하는 식이다.

잠입수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때에는 가입료를 내고 대화방에 들어가는 정도의 범죄행위는 허용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 경우에도 국가예산이 성착취물 유포에 활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매우 단기간에만 가입료 납입이 허용되는 등의 제한 조건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 시절 함정수사(범죄의도를 유발해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 논란으로 물거품이 됐던 미성년자 성매수 함정수사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수사관이 인터넷 상에서 미성년자로 활동하며, 성매수자를 유인해 검거ㆍ처벌하는 방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잠입수사의 필요성 자체는 모두가 공감한다”면서도 “그 동안 금지됐던 수사기관의 범법 행위를 허용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분위기에 휩쓸리기 보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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