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기자

등록 : 2020.03.05 04:30

[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 왕을 찍어낸들 역병은 잡히지 않는다

등록 : 2020.03.05 04:30

<8>정치적 주술과 방역 과학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저작권한국일보] 예나 지금이나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은 사태의 원인보다 책임을 물을 범인을 원한다. 일러스트=성시환 기자

아주 옛날 로마의 동남쪽 19㎞지점에 ‘네미의 숲’이라 불리는 성소(聖所)가 있었다. 그 숲의 빈터에는 커다란 나무가 서 있고, 그 주위를 늘 “음산한 형상”이 배회하고 있었다. 손에 칼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 미치광이 같은 사내는 ‘숲의 신’, 당시에는 ‘숲의 왕’이라고도 불렸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도전자였다. 누구든 그 나무에 붙어 자라는 ‘황금가지’(기생식물)를 꺾은 이는, 이미 쇠약해진 늙은 사제를 해치우고 사제의 직에, 즉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금가지, 자연에 왕을 바치다

이 관습은 왜 생겼을까. 과학도 기술도 없던 시절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술이었다. 자연을 통제할 수 없었을 때 인간은 자연의 모상(模像)을 만들었다. 모상을 조작함으로써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령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한 여인상을 만들면, 정말 현실의 여인들이 출산과 수유에 적합한 신체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효험이 있었을 리 없지만, 이 주술적 믿음이 자연의 횡포 속에 사는 그들에게 적어도 심리적 안정감은 주었을 것이다.

아득한 옛날 농사는 전적으로 자연의 변덕에 내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대지가 늘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어서, 땅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해도 있었을 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사(先史)인들은 자연의 모상을 세우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생장력을 상징하는 ‘왕’이다. 왕이 젊고 건강한 한 자연도 생장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왕도 인간인지라 언젠가는 노쇠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왕을 주기적으로 살해하고 그 자리에 젊은 왕을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왕이 나이가 들면 무조건 살해했다. 하지만 후에는 관습이 바뀌어 나이 든 왕에게도 방어권을 주게 된다. 젊은이의 도전을 물리친다면 여전히 생장력을 잃지 않은 것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네미의 숲을 배회하는 “음산한 형상”은 바로 이 시기의 왕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왕권이 강화되면서 제의는 점차 왕이 자기 대신 제 아들을 죽이는 것으로 바뀌고, 시간이 더 흐르면 이 인신공희의 관습은 사람 대신 양이나 염소를 바치는 ‘희생양 제의’로 변모한다.

사람 대신 인형의 목을 쳐서 땅에 묻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밀짚으로 인형을 만들어 겨우내 들판에 세워두었다가 봄이 오면 목을 베고 불태워 그 재를 밭에 뿌리기도 했다. 그래야 풍작이 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을들판의 허수아비도 원래 왕 대신에 목이 잘렸던 이 인형에서 유래했을 게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적 근거도 있다. 일본에는 쿠에비코(久延毘古)라는 신이 있다. ‘고사기’(712년경)에 따르면 지혜와 농경을 관장하는 이 신이 바로 걷지 못하는 허수아비였다고 한다.

지난 2016년 어버이연합 소속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KT빌딩 앞에서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화형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의 주술, 모상에 대한 저주

흔히 사람을 이롭게 하는 주술을 ‘백(白)주술’, 사람을 해치는 것을 ‘흑(黑)주술’이라 부른다. 목적은 서로 달라도 모상을 통해 실물을 지배한다는 발상은 한 가지다. 문자가 발명되고 문명이 시작되어도 주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에서도 왕궁에서 주술을 이용한 저주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사극에는 종종 장희빈이 인현왕후의 초상을 활을 쏘는 장면이 등장한다. 꾸며낸 얘기라 하나, 어쨌든 이 이야기는 모상을 통해 실물을 지배한다는 주술적 관념을 잘 보여준다.

이 모두 아득한 고대의 관습일 뿐이나, 아직도 이 원시적 심정은 남아 있나 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신석기제의를 자주 본다. 유신시절 반공집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던 김일성 화형식. 이 관습은 최근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 화형식으로 3대세습을 마쳤다. 그런가 하면 반대쪽 사람들은 5ㆍ18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전두환 인형을 만들어 태운다. 물론 이들이 주술의 효험을 믿는 것은 아닐 것이나, 실물을 죽이고 싶은 그 심정만은 풍작을 바라는 고대인들의 염원 못지 않게 절절할 게다.

탄핵촛불집회에도 이 원시적 제의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군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머리인형을 막대기 끝에 달아서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한 집회문화 중에서 이 효수극보다 더 끔찍한 것은 없었다. 작년 12월 한 반미단체에서 해리스 미국대사 ‘참수경연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 몰취향에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참수극은 대사의 콧수염을 뽑는 것으로 대체됐다. 행사가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리스 인형의 목을 따는 꼴불견을 봐야 했을 것이다.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것을 당분간 금지하기 한 가운데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도로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문재인탄핵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왕의 목 베기, 희생양 제의

왕의 목을 베는 관습에는 이미 ‘희생양 제의’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흉작이 들면 왕은 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생장력이 다했다는, 이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과학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원인’을 찾는 대신 ‘범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조선시대에도 기근이 들면 왕이 이를 자신이 부덕한 탓으로 여겨 머리를 풀고 거적 위에 앉아 석고대죄를 했다지 않는가. 중세 마녀사냥 또한 이상저온으로 인한 대흉작이 그 배경이었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다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자 원인이 아니라 범인부터 찾는다. 범인은 물론 대통령. 이게 다 대통령이 중국을 봉쇄하라는 어느 이익단체의 말을 따르지 않은 탓이란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중국직항을 폐지한 이탈리아는 전세계 바이러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국 역시 멕시코에 장벽 쌓듯이 중국부터 봉쇄했으나 이미 동서남북으로 다 뚫렸다. 두 나라의 연구진이 유전자 시퀀싱을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는 봉쇄 2주 전에 미리 들어와 확산을 계속하고 있었단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인에 의한 내국인 감염의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밝혀진 것은 모두 내국인에 의한 감염이다. 3월 4일 현재 대구 경북에서만 확진자가 무려 4780명. 하지만 중국을 봉쇄하라고 외쳤던 누구도 중국의 우한이나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처럼 대구를 봉쇄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사태를 대통령 탓으로 돌리려 신천지 관련성을 애써 부정하거나 축소하려 할 뿐이다. 그들의 해법은 하나, 왕의 목을 치는 것이다. 대통령탄핵 국회청원이 동의자 10만을 넘겨 상임위에 회부됐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 탄핵 촉구 청원이 26일 동의자 58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신천지 프레임

문제는 이 주술적 사유가 사태의 과학적 해결을 방해한다는 데에 있다. 미래통합당에 따르면 신천지는 ‘범인’이 아니다. 그 말은 옳다. 하지만 그 말을 하려고 신천지가 ‘원인’이라는 명백한 사실까지 뭉개야 하는가. 중국의 바이러스 재생산지수 2~3, 신천지는 그 3배인 7~10. 엄청난 밀착접촉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야당대표는 대통령을 만나 중국봉쇄만 요구했다. 한국의 확진자수가 중국 각 성의 그것을 넘어서 외려 한국인이 거기서 거부당하는 시점이었다.

이런 태도는 방역에 혼란을 줄 뿐이다. 일본과 이탈리아를 포함해 외국 유입 확진자는 0.8%에 불과하다. 확진자의 90%는 대구경북에서 나왔고, 그 중심엔 확진자 2,685명의 신천지가 있다. 중국인 유학생 중 확진자가 1명 나오자, 어느 종편에서는 “중국입국 금지 필요 없다는 청와대의 논거가 깨졌다”고 주장했다. 중국인 확진자가 무려 1명씩이나 나왔는데, 중국 문 닫을 생각은 안 하고, 확진자가 겨우 4,000명 밖에 안 나온 대구 신천지에 집중하냐는 어이없는 타박인 셈이다.

집권여당도 다르지 않다. 잘못이 있든 없든 대통령은 결과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책임을 면하려 그들은 신천지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서울시장은 심지어 그를 ‘살인죄’로 고발까지 했다. 하지만 신천지 신도들은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린 ‘범인’이 아니다. 저도 모르게 감염의 ‘원인’이 됐을 뿐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지자체장들의 강제수사요구가 그들을 음성화시켜 방역을 더 어렵게 할 뿐’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주술은 이렇게 방역을 방해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스크를 잠시 내린 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금 필요한 것은 선거의 표를 늘리는 정치적 주술이 아니다. 다음에 올 바이러스에 더 잘 대처하게 해줄 방역의 과학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공격적 방역태세를 칭찬한다. 중국과 달리 우리는 대구를 봉쇄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다. 당국을 믿고, 책임은 나중에 논하자. 어차피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은 책임을 물을 범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믿어도 된다. 인간은 생각보다 많이 진화하지 않았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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