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기자

등록 : 2020.04.28 04:30

“한반도 평화, 과감한 정치적 판타지 제시할 때 가능”

등록 : 2020.04.28 04:30

‘독일 통일’ 전문가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한국전쟁 70주년, 6ㆍ15공동선언 20주년 맞아

다음달 4일부터 본보에 평화 정치 구상 연재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를 향한 첫 발걸음을 뗐다. 동족 상잔의 비극을 극복하고 화해 협력의 길로 나아가자는 거대한 전환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북핵 문제라는 큰 걸림돌에 가로 막혀 남북관계는 그대로 멈춰 섰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인 가운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는 그저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으면 될까.

한국일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6ㆍ15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독일 통일의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 한반도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다음달 4일부터 격주로 연재되는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의 ‘한반도 평화, 베를린서 묻다’(가제)를 통해서다.

한국냉전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독일 통일 전문가다. 옛 동독 지역인 튀링겐주 예나대학교에서 독일 통일 과정에서 논의 됐던 ‘국가연합 통일안’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엔 평화정치를 화두로 한반도 평화체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재를 통해 인권과 평화, 국가연합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려 볼 참이다. 본격 연재에 앞서 27일 이 교수를 만나 독일 통일 과정에 비춰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물었다.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건 결국 북핵 문제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선 한국이 독자적으로 남북관계에 드라이브를 걸기 쉽지 않다는 데 누구도 쉽사리 이의를 달지 못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냉전의 관습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보다 과감한 정치적 판타지를 제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냉전 체제 극복의 계기가 됐던 데탕트와 동방정책 등 동서 화해 물결이 쿠바 위기와 베를린 장벽 건설로 인한 긴장 국면을 겪은 뒤 나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대결로, 압박으로 가선 해결이 안되겠다고 느꼈고, 평화에 대한 백화제방식 아이디어를 쏟아냈어요. 당시엔 위험해 보이는 망상에 가까웠지만, 그런 신선하고 모험적인 상상력들을 계속 던지고 설득해나가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갔던 겁니다.” 현실이 평화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평화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렇다고 문재인정부가 대화와 협력을 시도 안 한 건 아니다. 미국만 쳐다보며, 우리를 대화 파트너로 거들떠도 안 보는 건 북한이다. 이 교수는 아무리 응답 없는 상대라도 꾸준한 신뢰를 보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동독과 서독은 통일 이전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교류 협력에 나섰지만, 그 역시 단번에 이뤄진 건 아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30년 세월 동안 만남과 대화가 지속됐다. 이 교수는 “대화와 협상은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아야 신뢰는 쌓인다”고 강조했다. ‘의제도 없이 왜 만나냐’ ‘성과도 없는데 왜 계속 협상하느냐’는 식의 발상 자체가 대화의 진정성을 떨어트린다.

꼬일 대로 꼬인 문제에 집착하는 대신 어려운 안건일수록 조건을 달아 유예하고 당장 조정 가능한 것부터 실천해 상호 합의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도 협상의 기술이다. “다른 무엇보다 대화의 성과에 집착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이 교수가 동서독의 협력 과정을 지켜보며 얻은 교훈이다.

내로라하는 대북, 외교안보 전문가도 섣불리 남북관계의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 이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독일통일의 과거와 현재에서 한반도의 더 나은 미래를 성찰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기존의 문명과 사고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한반도 분단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위기이자 위험이란 걸 다시 한번 되새긴다면, 평화 정치와 평화 체제를 향한 근본적 논의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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