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20.06.14 10:00

일본 극우 정치인까지 빠지게 한 사랑의 불시착? 일본에 부는 ‘한드’ 붐

등록 : 2020.06.14 10:00

[시시콜콜 why]넷플릭스 보급·유명인 입소문·사회성 담은 스토리까지 삼박자

지난 5월 일본 넷플릭스에서 시청률 1위와 3위를 기록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클라쓰. 넷플릭스 캡처

“평소 드라마를 안 봐서 2, 3회만 보고 그만둘까 했는데 16회까지 한번에 다 봤어요. 거북하게 느껴졌던 건 북한의 병사들이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과거 위안부 관련 망언으로 비판을 받았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이 일본 방송에 출연해 최근 한국드라마(한드) ‘사랑의 불시착’에 빠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은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2월부터 일본에서 방영 중인데요. 하시모토 전 시장은 2013년 오사카 시장 시절 “일본군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극우 정치인입니다. “북한의 현 체제나 북한군의 문제점을 알려주면서 보게 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극우 정치인이 한드에 빠졌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랑의 불시착뿐 아니라 ‘이태원클라쓰’, ‘더킹-영원의 군주’에 이어 이달 초부터 방송을 시작한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그야말로 한드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은 ‘제2의 겨울연가’로 불릴 정도인데요. 사랑의 불시착은 공개 4개월이 지난 이번 달까지도 일본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에서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 드라마 역시 10위권 이내 올라와 있습니다.

특히 한일 두 나라의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죠. 최근 한국 법원이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 하는 절차를 본격화하면서 일본 정부는 수입 관세 인상 등 보복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극우 정치인까지 빠져들게 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요.

◇기다릴 필요 없이 넷플릭스로 실시간 시청 가능

일본에서 이달 초부터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넷플릭스 캡처

일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등 주문형비디오(VOD)의 이용이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 연예 뉴스를 전하는 일본 ‘단미’는 영화·영상 등의 분석을 GEM파트너스의 자료 를 인용해 넷플릭스가 지난해 VOD 시장에서 13.8%의 점유율을 보였고, 코로나 19가 강타한 올해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넷플릭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 이른바 ‘K-콘텐츠’의 약진이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전에 DVD를 빌려서 볼 수 있었던 한드와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시청자와 큰 시간 차이 없이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사랑의 불시착은 국내 2월 종영했는데요, 일본에서도 같은 달 방영을 시작했고, 5월 말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역시 이달 초부터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서브컬처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이이다 이치시(飯田一史)도 일본에서 한 드의 인기 요소로 넷플릭스, 인터넷 플랫폼 아베마TV 등의 활성화를 꼽았습니다. VOD서비스가 활성화하기 전 한국 콘텐츠는 전문 채널에서 방영한 이후 DVD로 판매되고, 그 이후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식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방송된 뒤 2~3년 지나 낮 시간에 방송됐다고 합니다. 자연히 주요 시청자도 중장년 여성이었구요. 하지만 VOD 서비스가 활성화하면서 10~20대 시청자도 많이 늘었습니다.

◇일본 유명인들 입소문으로 홍보 효과 톡톡

사사키 노조미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연예계의 유명 인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드에 대한 호평을 쏟아내는 것도 인기에 가속도가 붙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일본 인기 배우 사사키 노조미는 동료배우 오마사 아야와의 인스타 라이브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봤다”고 얘기했고요. 올림픽에서 세 차례 금메달을 걸었던 레슬링 선수 요시다 사오리는 트위터를 통해 “여러분에게 추천 받은 사랑의 불시착을 다 봤다”며 “정말 최고였다. 펑펑 울었다”고 감동을 전했습니다.

방송인 오가미 이즈미와 후지TV의 미카미 마나 아나운서도 사랑의 불시착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특히 오가미는 “16화 시청 후에도 몇 번이나 돌려 봤다”며 사랑의 불시착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일본 원로 방송인 구로야나기 테츠코도 인스타그램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가장 재미있게 봤다”는 인증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일본의 유명 개그콤비 지도리 멤버 노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그린 배우 김다미와 박서준의 그림을 올리면서 김씨에 대한 팬심이 듬뿍 담긴 글도 덧붙여 화제가 됐습니다.

◇러브 스토리에 젠더 이슈, 계층 이야기까지 담아

일본 사랑의 불시착의 인기 요인을 다룬 일본의 한 방송. 트위터 캡처

마지막으로 한드의 인기는 러브 스토리에 사회성까지 담아낸 탄탄한 스토리입니다. 일본 연예주간지 프라이데이는 온라인 판에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낸 2개월 동안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에 빠져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며 “이태원클라쓰는 사랑·가족애·우정·복수극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성 차별 문제까지 다뤘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젠더 감수성이 낮은 한국의 현실을 바꾸려는 제작자의 뜻이 전달됐다는 겁니다.

성 차별 문제와 기업광고 전문 저널리스트 지부 렌게는 일본 일간 아사히 신문에 사랑의 불시착 인기와 관련 “제목과 설정에서 값싼 멜로 드라마를 떠올리지만 이는 오해”라며 “실상은 러브 스토리에 비평을 교묘하게 집어넣은 사회파 드라마”라고 기고했습니다. 작가 기타하라 미노리는 최근 아사히 신문 자매지인 아에라(AERA)에 사랑의 불시착을 ‘페미니스트 드라마’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그는 “드라마 속 남자 배우가 커피를 볶고, 국수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이는 일본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남북간 여성들의 우정도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겁니다.

동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인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는 정치·외교적 갈등과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정치외교에 무관심하더라도 (한류 콘텐츠) 소비는 열심히 하는 이들이 많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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