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9.11.28 04:40

증오 대신 ‘백만송이 장미꽃’… 아이유가 악플의 시대에 건네는 사랑

등록 : 2019.11.28 04:40

2년 7개월 만에 낸 정규 앨범 ‘러브 포엠’

노래 ‘블루밍’으로 온라인 ‘마녀사냥’ 아닌 ‘꽃밭’ 바라

“못 보게 된 친구 위해…” 공연서 설리 추모도

과거와 현재 잇는 온기 어린 가사… “K팝과 다른 세계”

새 앨범 ‘러브 포엠’을 낸 가수 아이유는 “마음속에 장미가 피어나는 것 같은 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카카오M 제공

“오빠 혹시 ‘너랑 나’ (뮤직비디오에서) 타임머신 2019년 12월31일에 멈추는 거 알아요?” 작곡가 이민수는 2년 전 가수 아이유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이 작곡가가 작곡한 ‘너랑 나’(2011)의 후속곡 작업 제안이었다.

아이유가 2011년 낸 노래 '너랑 나' 뮤직비디오. 서로 만나지 못한 인연은 2019년 12월31일 재회를 꿈꾼다. 뮤직비디오 캡처

◇2년 전부터 기획한 ‘너랑 나’ 타임슬립

‘너랑 나’는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고픈 소녀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동화 같은 노래다. 뮤직비디오엔 사랑을 꽃피울 운명의 시간이 2019년 12월 31일로 나온다. 이 시기에 맞춰 ‘너랑 나’의 뒷얘기를 펼쳐 신곡을 내고 싶다는 게 아이유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아이유와 만난 뒤 이 작곡가는 풍경 소리를 떠올리며 머릿속에 음표를 쌓았다. 닿을 듯 닿지 못한 인연을 긴 세월이 지나 ‘시간의 바깥’에서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은 아련함이 “댕, 댕”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와 딱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려 기어이 우리가 만나면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이 작곡가가 한국일보에게 들려준 아이유의 신곡 ‘시간의 바깥’ 제작 과정이다.

‘꽃갈피’ 시리즈로 옛 가요 재해석에 공을 들여온 아이유는 다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아이유는 지난 18일 ‘시간의 바깥’이 실린 앨범 ‘러브 포엠’을 냈다. 리메이크가 아닌 정규 앨범 발매는 2017년 4월 낸 ‘팔레트’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유산에 대한 애정 어린 재해석은 올해 스물여섯이 된 아이유의 무기다. 그는 선배 가수 심수봉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1997)를 모티프로 앨범 타이틀곡 ‘블루밍’을 작사했다. 아이유가 털어놓은 창작 계기는 이랬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심수봉 선생님의 ‘백만 송이 장미’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얻은 사랑의 결실을 백만 송이 장미로 표현한 것이 사랑에 대한 어떤 비유보다 시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수 아이유는 20~30대 연주자들이 모인 '아이유 밴드'와 함께 앨범을 녹음한다. 카카오M 제공

◇”내 보폭으로 가겠다”는 아이돌

아이유의 ‘백만 송이 장미’ 재해석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장미가 피는 장소다. 아이유는 온라인 대화창에서 장미 즉, 사랑을 키운다. “우리의 네모 칸은 블룸(Bloomㆍ꽃).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아이유는 파란색과 회색 말풍선(아이메신저)으로 차갑게 대화를 주고받는 현실에 따스한 낭만을 불어넣는다. “아이유의 가사엔 디지털 감성인데도 따뜻하게 설레는 묘한 감성이 담겼다”(박생강 소설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심수봉이 20세기 아날로그 사랑 찬가의 선구자라면 아이유는 21세기 디지털 사랑 찬가의 기수”(김상화 음악평론가)다.

악성댓글에 시달려 온 아이유는 디지털 대화창이 증오의 진흙탕이 아닌 사랑이 피는 꽃밭이기를 바란다.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설리와 구하라가 온라인 ‘마녀사냥’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간 터라 경쾌한 곡이 때론 애틋하게 들린다. “얼마 전부터 못 보게 된 친구를 위해 부를게요.” 아이유는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연 공연에서 설리를 추모하며 새 앨범 동명 수록곡 ‘러브 포엠’을 불렀다.

아이유는 시류를 타면서도 휩쓸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는다. 그는 새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언 럭키’에서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라고 노래한다. “아이유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며”(아이유 지인 A씨) 제 속도를 찾는다. 가수 이상은이 아이돌의 삶을 등지고 예술가로서 길을 갔다면, 아이유는 아이돌의 길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다듬어 길을 내려 한다. 그는 시집처럼 꾸민 CD 가사집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세상에게 받았던 많은 시들처럼 진심 어린 시들을 부지런히 쓸 것이다. 그렇게 차례대로 서로의 시를 들어주면서 크고 작은 숨을 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덜트 컨템포러리’ 아이유

신작의 분위기는 전작과 확 달라졌다. 아이유는 컴퓨터로 프로그래밍된 전자음악으로 ‘팔레트’를 채웠다면, ‘러브 포엠’은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가득하다. 아이유는 ‘러브 포엠’에서 로커가 된다. 곡은 비장하면서도 웅장하다. 아이유가 여태 하지 않았던 시도다. “아이유가 새로운 실험에 열려 있어”(‘러브 포엠’ 작곡가 이종훈) 가능했다.

아이유의 새 앨범에서 연주자의 연주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언럭키’에선 건반 소리가 팝콘 튀듯 톡톡 튀고, ‘그 사람’에선 기타 줄을 옮겨 짚는 소리가 ‘멜로디’가 된다. 적재(기타), 홍소진(건반) 등 대중음악계에서 소문난 실력파 연주자들이 힘을 보탠 결과다. 아이유는 ‘아이유 밴드’를 꾸려 앨범을 녹음했다. 무대에 서 춤도 추며 노래하는 아이돌의 밴드 녹음은 이례적이다. 그러니 “아이유의 앨범 ‘러브 포엠’은 K팝과 다른 세계”(김성환 음악평론가)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천편일률적인 K팝과 다른 이야기와 소리를 내서다. 아이유의 신작은 10대만을 위한 음악을 넘어서 ‘어른’을 위한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ㆍ성인 취향의 팝)로 큰 힘을 발휘한다. 아이유의 ‘블루밍’은 18일 공개된 후 27일까지 열흘 동안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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