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5 09:00

협곡보다 깊은 가을 속으로…백두대간협곡열차와 낙동강비경길

등록 : 2019.11.15 09:00

[박준규의 기차여행・버스여행]테마관광열차⑧ V트레인 타고 경북 봉화 여행

봉화 분천역~태백 철암역 사이를 운행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

13종류의 대한민국 테마관광열차 중에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계곡만큼 깊은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2013년 4월 13일 중부내륙관광열차인 ‘O트레인’과 함께 개통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우선 태백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연결한 노선이라 ‘백두대간협곡열차’, 협곡을 의미하는 영어 ‘Valley’의 첫 글자를 따서 ‘V트레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디젤기관차 외관이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여서 ‘아기백호열차’라고도 부른다. 분천역~비동역~양원역~승부역~철암역 27.7km 구간을 하루 3회 왕복 운행한다. 요금은 성인 기준 편도 8,400원, 코레일 홈페이지( letskorail.com )에서 예매할 수 있다.

여행 기간이 3일 이상이고 O트레인, V트레인을 포함해 다른 테마관광열차를 함께 이용할 예정이면 일일이 승차권을 사는 것보다 ‘오레일패스’를 구입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코레일관광개발(korailtravel.com)에 문의.

V트레인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열리는 열차다. 상큼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고, 낙동강 비경을 찍기도 좋다.

◇포토존 천국 분천역 산타마을

7년 전만 해도 하루 이용객이 20~30명에 불과했던 봉화 분천역은 O트레인과 V트레인이 운행하고, 낙동정맥트레일 안내소를 운영한 덕에 요즘은 하루 1,000명이 넘는 여행객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됐다. 침체했던 마을도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013년 5월에는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스위스의 원목과 시계로 체르마트역을 재현한 분천역은 명소가 되었고, 2014년 코레일과 봉화군의 협력으로 ‘분천산타마을’이 탄생했다. 분천사진관, 분천우체국, 산타 포토존, 호랑이 포토존 등은 기념사진 명소로 떠올랐고 여름과 겨울마다 산타마을 축제가 열린다.

백두대간협곡열차 출발역인 봉화 분천역.

분천역 산타우체국에서는 기념 엽서에 기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분천역의 산타마을 포토존.

◇계곡보다 깊은 가을 속으로, 분천역~철암역

‘V트레인’은 아기 호랑이를 쏙 빼닮은 디젤기관차에 복고풍 드레스가 연상되는 3칸짜리 미니열차를 연결했다. 소화물 열차를 개조했으니 성형수술의 신기원인 셈이다. 객실 구조도 이색적이다. 옛 비둘기호처럼 좌석을 배치했고, 히터가 아니라 목탄 난로에서 전해오는 온기가 따뜻하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아이들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신기한 신기한 기차다.

백두대간협곡열차 객실 내부의 목탄난로.

백두대간협곡열차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정겹다.

열차는 천천히 백두대간의 비경을 감상하도록 시속 30km로 운행한다. KTX의 10분의 1인셈인데, 빨리 가자고 재촉하거나 느리다고 답답해하는 여행객은 없다. 비동역부터 환상적인 협곡이 펼쳐진다. 첩첩산중에 철길을 건설해 낭떠러지 위로 달리는 열차가 신기하면서도 아찔하다. 좁은 계곡을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V트레인의 또 하나 비밀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열리는 열차라는 것이다. 열차 안까지 고스란히 스치는 백두대간의 바람이 상쾌하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천장에 야광 별 과 결정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도 흥미롭다.

주민들이 직접 지은 양원역 대합실.

열차는 양원역에 약 10분간 정차한다. 기차역이라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고 허름한 간이역에는 주민들의 힘겨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양원마을(봉화 소천면 분천리)은 버스를 타려면 광비(울진 금강송면 광회리)까지 2시간을 걸어야 하는 산골이다. 마을으로 기차는 다니는데 역이 없어 이용할 수 없으니 억울할 밖에. 결국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차역을 짓고, 철도청(현 코레일)에 요청해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양원마을은 그렇게 세상과 연결됐다. 짧은 시간 시골 풍경을 만끽하고 다시 열차에 올랐다.

양원역~승부역 구간은 협곡을 따라 조성한 트레킹 코스와 나란히 달린다. 이 구간에서 만약, 3초 동안 깜짝 등장하는 거북바위를 발견한다면 만수무강 보장이다.

차창 밖으로 잠깐 보이는 거북바위.

승부역에 정차한 백두대간협곡열차.

낙동강비경길에서 만난 벽화. 승부역 기념비에 쓰인 내용이다.

승부역에도 약 10분간 정차한다. 기차로만 갈 수 있다는 설명대로 역무원도 열차로 출퇴근한다.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쓴 기념석이 오지 간이역을 지키고 있다. V트레인이 정차하면 역 인근에서 번개 먹거리장터가 열린다.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1,000원짜리 노랑 좁쌀막걸리의 인기가 최고다. 달달하고 은은한 맛이 알싸해진 날씨에 딱 어울린다. 짧은 휴식 후 다시 열차에 올라 강원도에 접어들면 곧 종착역인 철암역에 도착한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승부역에 정차할 때마다 열리는 먹거리장터.

특히 좁쌀막걸리가 인기 있다. 짧은 시간에 판매하기 때문에 아주머니가 손에 돈을 쥔 채 막걸리를 붓고 있다.

◇낙동강비경길과 체르마트길(총 7.8km, 3시간30분 소요)

백두대간의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면 ‘낙동강비경길’과 ‘체르마트길’을 추천한다. 승부역~양원역 구간 낙동강비경길은 5.6km. 승부역 철교 아래 갈대밭을 걷다가 깊은 골짜기에 몸을 감추고 병풍처럼 보이는 은병대를 시작으로 협곡을 따라 간다. 하늘을 담고 구름을 품고 바람을 타고 흘러 온 물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관란담’을 지나면 철길과 나란히 뻗은 길이 나타난다. 운이 좋으면 열차를 만나는데 계곡 물소리와 기차 소리의 2중주 화음이 겹쳐 진다. 이외에도 거북바위ㆍ연인봉ㆍ선약소ㆍ선문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비경이다. 2시간30분 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 받은 기분이 든다.

낙동강비경길은 계곡이 깊은데 비해 물길 따라 가는 길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다.

승부역에서 양원역으로 가까워질 수록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낙동강비경길 은병대는 깊은 골짜기에 몸을 감춘 병풍처럼 보인다.

양원역에서 휴식을 취한 뒤, 비동역까지는 2.2km 체르마트길로 이어진다. 분천역과 스위스 체르마트역 간 자매결연으로 탄생한 길이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철길과 협곡의 조화가 아름답다.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산을 넘고, 철교를 건널 때는 아찔함이 느껴진다.

체르마트길의 마지막 구간인 철교를 건널 때 아찔함이 느껴진다.

체르마트길의 마지막 철교를 건널 때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

박준규 기차여행/버스여행 전문가 http://traintri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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