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 기자

등록 : 2019.03.23 13:34
수정 : 2019.03.23 13:35

[뒤끝뉴스] ‘재미없는’ 태국 선거를 위하여 <상>

등록 : 2019.03.23 13:34
수정 : 2019.03.23 13:35

태국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있던 지난 17일 오후 방콕 탐맛삭 대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토크쇼에서 푸어타이당의 쿤잉 수다랏(맨 왼쪽) 대표, 민주당의 아피싯 웨차치와(가운데) 대표, 퓨처포워드당의 타나톤 중룽레앙낏(맨 오른쪽) 대표 등이 손을 맞잡고 있다. 이들은 이날 행사에서 이구동성으로 군부의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으며, 태국 정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로 현 군부에 협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24일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태국이지만, 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낮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변하는 주변 상황 등의 영향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가 권력을 잡든, 그게 한국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인식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군부정권 연장이냐, 쿠데타 이전 민주주의로의 복귀냐를 결정하는 선거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절대군주주의던 태국이 1932년 입헌군주제로 바뀐 후 49년 동안을 군부가 통치했습니다. 86년 동안 총 29명의 총리가 있었는데, 그 중 절반이 넘는 15명이 군인이었습니다. 그 사이 헌법은 19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태국은 한국의 ‘동남아 관광 1번지’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했고, 태국에 진출한 400여 한국 기업들 덕분에 양국 교역량은 지난해 140억달러를 넘기며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느 쪽에서 권력을 잡든 이 같은 분위기는 영향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 한반도에 대한 태국의 관심을 알고 있을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한류가 가장 뜨거운 곳이지도 하지만, 그 외에도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이슈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 태국입니다. 특히 올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을 태국이 이끌고 있고, 의장국 태국이 연말 자국서 가질 아세안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등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대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태국은 지난 1, 2차 북미 정상회담 유치에 나선 바 있으며, 지난 2000년 북한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끌어들인 것도 바로 태국입니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지역 내 유일한 다자협의체로, 지역 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선거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결과가 뻔하기 때문일 겁니다. 쿠데타로 2014녀 집권한 군부가 2016년 개헌으로 상원의원 250명 전원을 군부가 지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로 뽑을 500명(지역구 350, 비례 150)의 하원의원과 상원을 더한 750명 중 과반인 376석을 차지하는 당(연립당 포함)이 총리를 배출하는데, 250석을 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현 쁘라윳 총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기울어져도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고 비판 받는 대목이자, 태국 국민들 사이서도 이번 선거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 쁘라윳 총리 재집권은 기정 사실인데 더 들여다 봐서 뭐하냐는 겁니다.

2014년 5월 22일 군부 쿠데타 이후 정권 민간 이양을 위해 8년만에 실시되는 태국 총선. 그 선거를 1주일 가량 앞두고 있는 방콕 시내 풍경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는 태국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에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작지만 역력했습니다. 탁신계의 대표당인 푸어타이당, 태국의 전통적 보수당인 민주당, 떠오르는 청년당인 퓨처포워드당 등을 중심으로 현 쁘라윳 총리를 내세운 팔랑쁘라차랏당에 대항해 형성한 ‘반군부’, ‘반쿠데타’ 전선이 바로 그것이니다.

총선을 1주일 앞두고 있던 지난 17일 오후 방콕 시내 탐맛삭 대학에서 열린 야 5당 대표 간담회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이날 토론회가 열린 탐맛삭대는 1973년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난 군부 정권이 1976년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자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군부가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규모로 죽인 곳으로 알려진, 태국 민주주의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선거를 앞두고 열린 토론회장은 대학생과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찼습니다. 야 5당 후보들은 시민들 앞에서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쿠데타를 통한 정권 장악과 무력 군인들에 대한 국가 통치에 반대한다는 겁니다. 다섯 후보가 똑같은 대답을 내놓자 토론회장은 떠날 갈 것 같습니다. 이 대학의 누따퐁(19ㆍ회계학과)씨는 “세계 1위이던 빈부 격차가 쿠데타 후 더욱 심해지고 있고, 5명 이상은 모일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국에서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 17일 유권자들이 방콕 시내 두싯 지역의 수코타이 학교에 마련된 사전투표장을 찾아 자신의 지역구 출마자 프로필을 보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젊은 학생들 뿐만 아니었습니다. 방콕에서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파타라칫 조카파닉(51)씨는 “총리는 현 총리가 또 맡는다 하더라도, 현 총리 당이 소외되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문제는, 진짜 게임은 선거가 끝난 뒤”라며 “당신이(기자)가 생각하는 선거보다 더 재미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웃어보였습니다.

방콕=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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