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석 기자

등록 : 2020.05.20 21:02

숭고함에 이른 음악 세계… 조동익 26년 만의 앨범

등록 : 2020.05.20 21:02

조동익. 최소우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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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음악가 조동익(60)이, 그러니까 솔로 데뷔 앨범 ‘동경’(1994) 이후 무려 26년 만에 낸 새 앨범 ‘푸른 베개(Blue Pillow)’를 듣고 있노라면 모르스 신호가 떠오른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하는 신호의 연속. 점과 선의 불규칙한 교차, 소리와 여백의 긴장 어린 공존. 앨범 전제가 조동익이 아득히 먼 곳의 ‘그’에게 보내는 신호 같다. ‘그’는 누굴까. 과거의 자신일수도, 2017년 작고한 형이자 선배 음악가인 조동진이기도, 이 앨범을 듣는 이들이기도 하다.

평생 음악인으로 살았으면서도 영화음악 모음집 ‘무비’(1998) 이후 22년간 앨범 하나 내놓지 않던 ‘음악가들의 음악가’. 청춘이 희미해진 뒤에야 어느 날 불쑥 내민 조동익의 두 번째 앨범 ‘푸른 베개’는 고집스런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을 그린 일종의 풍경화다.

거기엔 꺼지지 않는 희망과 열정, 가시지 않는 상처와 분노, 묵직하게 내려 앉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운 대상에 가닿지 못하는 쓸쓸함, 제주살이 15년이 준 평온과 고요 같은 느낌들이 흑백의 추상처럼 들어 앉았다. 조동익이란 이름을 보고 1980년대 기타리스트 이병우 함께 했던, ‘어떤날’이라 불렸던 팀의 음악을 떠올렸다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아직도 ‘어떤날’을 기억해주는 분들, 제 앨범 ‘동경’을 좋아해준 분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앨범을 내려고 생각하다 26년이 흘러버렸다”는 그는 앨범을 내놓으며 “음악적으로 화려한 전개보다는 단순함을 목표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불규칙하게 끊기는 작은 노이즈들, 조심스레 잦아드는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첫 곡 ‘바람의 노래’부터 첫 세 곡은 모두 가사 없는 연주곡이다. 피아노, 첼로, 전자음 그리고 무음의 여백이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가며 펼치는 사중주. 그 중 앨범과 같은 제목의 ‘푸른 베개’는 11분48초간 창백하게 푸른 새벽의 고요한 공간을 유영한다. 그는 “나처럼 악몽을 자주 꾸는 분들이 이 곡을 듣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서 연주곡은 12곡 중 절반이다. 자신의 음악적 동지이자 삶의 반려자인 가수 장필순의 음악을 만들어내며 보여줬던 앰비언트(선율, 리듬 대신 전자악기로 음색, 분위기,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음악)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가사가 있는 여섯 곡은 조동익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삶을 반추하며 느낀 그리움과 외로움을 그린 걸까. 장필순에게 노래를 맡긴 ‘내가 내게 선사하는 꽃’에서 그는 ‘난 왜 늘 혼자라는 생각에 이렇게 몸을 떨고 있는 걸까’라고 되뇐다.

조동익 새 앨범 '푸른 베개(blue pillow)'

막내 동생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동희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노래 ‘페어웰. jdj, knh[1972]’는 형 조동진 부부와 함께 보냈던 행복한 시절을 회상한다. 직접 노래한 ‘그래서 젊음은’에선 ‘젊음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너무 빨리 사라져 버리고 / 사라지고 나서야 돌아보게 되는 것’이라고 읊조린다. ‘내 앞엔 신기루’에선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 왔을까 / 아무도 없는 이 벌판에 버려진 듯 혼자 서 있네’라고 노래한다.

조동익은 앨범에 실린 글에서 12곡이 원래 “하나의 긴 노래였다”고 고백했다.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 만든 ‘하나의 긴 애도의 노래’는 사라진 것들이 남긴 기억들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11번째 곡 ‘날개 II’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문득 저 자신이 날개를 잃은 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개를 잃기 전 새벽 숲을 날아다니던 기억, 눈부신 바닷가를 날아다니던 기억. 하지만 날개를 잃고 푸르고 창백한 바닷속으로 끝없이 가라앉기를, 희망과 열정, 상처, 분노가 소금처럼 녹아 내리기를 바랍니다. 저 자신은 물론 나와 같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조동익의 귀환에 평단의 반응은 뜨겁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한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치열하게 추구한 음악 세계가 숭고함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라 말했다. “과거의 명성과 성과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현재의 음악 언어로 바꿔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음악가가 끝내 이를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의지, 노력, 감각의 승리”라고도 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대중음악, 전자음악, 클래식, 재즈 같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일종의 메타음악”이라며 “‘어떤날’에서부터 아름드리 나무가 되기까지 30여년간 차근차근 쌓아온 나이테를 담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두 평론가 모두 별 5개 만점에 4.5개를 줬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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