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8.10.27 04:40
수정 : 2018.10.27 09:14

[아하! 생태!] 도망 vs 숨기… 포식자 피하는 최선의 전략은

등록 : 2018.10.27 04:40
수정 : 2018.10.27 09:14

자벌레(왼쪽부터), 동사리, 은줄팔랑나비의 애벌레는 각각 서식처로 삼는 나무, 하천바닥, 물억새잎과 비슷한 색을 지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물속에 사는 물벼룩부터 초원의 얼룩말까지 초식동물의 삶은 참 고단하기 이를 때가 없습니다. 포식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초식동물들은 얻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포식자를 방어하는 데 사용합니다.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자손의 번식’에 투입되어야 할 에너지이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세대를 이어나갈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의 배분은 쉽지 않습니다. 포식자를 방어하기 위해 에너지를 상당 부분 투입한다면 이로 인해 자칫 자손의 번식이나 먹이 습득 등에 소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손 번식에만 치중한다면 포식자의 진화된 포식전략에 살아남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포식자와 불편한 동거를 한 현재의 피식자들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한 녀석들입니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불편한 동거

‘도망가기’는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피식자가 흔히 선택하는 방어 전략입니다. 가령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 무리에 사자가 나타났다면 얼룩말은 사자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갈 것입니다. 얼룩말과 사자의 불편한 동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이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사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합니다. 얼룩말은 오랜 세월 동안 사자를 피해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뒷다리의 도약력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하지만 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빨리 달리기 위해 진화한 얼룩말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먹이를 먹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자 역시 얼룩말을 잡아먹기 위해 빠른 다리로 진화하게 됩니다. 즉 피식자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진화했다면, 포식자도 따라서 진화해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진화속도가 늦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피식자인 얼룩말의 진화 속도가 사자보다 뒤쳐지게 된다면 얼룩말은 사자에게 빈번하게 잡아 먹혀 개체수가 줄어들고 어느 순간 멸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포식자인 사자가 얼룩말보다 더 빨리 뛰지 못한다면 먹이를 먹지 못해 기아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피식자와 포식자는 참 오랜 세월 동안 끝나지 않는 진화경주를 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상대보다 더 빨리 뛰는 것은 곧 생존인 셈입니다. 그러나 ‘도망가기’의 전략은 상대 모두에게 참으로 부담이 되는 회피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대의 진화속도나 방법 등에 맞춰 진화를 하다 보니 빠른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전략인 것입니다.

◇‘숨기’ 전략을 활용하는 피식자

‘숨기’는 ‘도망가기’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전략으로 통합니다. 도망가기는 상대편의 진화에 맞서 빠른 변화를 요구하지만, 숨기는 그것보다 반응이 느린 편입니다. 대신 에너지 배분 측면에서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지요. 의태(Mimicrv)는 가장 대표적인 숨기 전략 중 하나입니다. 자벌레가 나무의 색과 비슷한 색을 가진 것이나, 해마가 해초의 색깔이나 형태와 비슷한 모양을 가지는 것은 주변의 지형지물로 위장하여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한 부단한 노력입니다. 또 다른 형태로 지형지물에 의존하기보다 독침ㆍ악취ㆍ무기 등을 가진 동물과 흡사한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경계의태(警戒擬態)라고 하는데, 나방이나 등에, 광대꽃하늘소 등이 독침을 가진 벌과 흡사한 모습을 가집니다. 사실 의태의 모델이 되는 동물은 눈에 잘 띄는 경계색을 가지고 있어 흉내내기 적합한 장점을 갖고 있지요.

수생식물은 하루살이나 물벼룩에게 포식자로부터 숨기 좋은 장소다. 사진은 수생식물 중 하나인 검정말. 국립생태원 제공

의태 외에도 다양한 숨기 전략으로 피식자는 포식자를 회피합니다. 말 그대로 숨는 전략인 ‘피난처의 활용’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피식자의 최선의 전략 중 하나입니다. 하루살이나 물벼룩에게 물속은 포식자를 피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습지나 연못 등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은 것도 문제지만 포식자인 물고기의 유영 속도를 도저히 못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대신 습지나 연못에 풍부한 수생식물은 이들 피식자에게 포식자를 피할 공간을 제공하지요. 털물참새피나 붕어마름, 생이가래 등의 수생식물은 물 속 공간을 점유하며 복잡한 구조로 성장하기 때문에, 하루살이나 물벼룩에게 효율적인 피난처를 제공합니다. 포식자인 물고기는 시각을 활용하여 포식활동을 하기 때문에 수생식물이 풍부한 공간에서 탐색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덕에 피식자들은 생존가능성을 높이고 자손의 번식이라는 삶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피식자 탐색을 위한 포식자의 진화

그러나 포식자 입장에서 수생식물이 풍부한 공간에 숨어있는 피식자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만큼 먹이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포식자인 물고기의 번식과 개체군 성장을 위해서는 좀더 많은 먹이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외래어종인 블루길(Lepomis macrochirus)은 수생식물이 풍부한 공간에서도 하루살이나 물벼룩 등을 효율적으로 포식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경우입니다. 보통의 물고기가 물과 함께 먹이를 흡입하는 방식이라면, 블루길은 마치 빨대로 빨아들이듯이 수생식물 사이에 숨은 먹잇감을 쏙쏙 빼서 먹습니다. 블루길의 이러한 포식방법은 피식자에게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물고기인 꺽지가 지나가는 물고기나 곤충을 낚아채기 위해 돌 틈에 숨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또 다른 진화의 형태로 꺽지과의 물고기를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육식성 물고기이지만 더 이상 피식자를 쫓아가지 않습니다. 포식을 위해 피식자를 쫓는다면 피식자와 끝없는 진화 경주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안 모양입니다. 이들은 돌 틈이나 수생식물 사이에 은닉해 있다가 피식자인 물고기나 곤충 등이 지나가면 낚아채는 방식으로 사냥을 합니다. 비록 피식자가 은닉 장소 인근을 지나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러한 잠복 포식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하며 사냥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꽤나 매력적입니다.

의태를 가진 동물을 포식하기 위해서는 높은 탐색 능력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탐색 능력의 증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실 의태를 하는 동물들을 포식하는 포식자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다른 먹잇감을 먹으며 충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포식자가 적기 때문에 의태를 활용하는 동물들은 많은 개체가 증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태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지구상에 의태와 같은 고등 회피 전략을 활용하는 피식자는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의태가 포식자를 회피하기 위해 효율적이라면 이를 구사하는 피식자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식자는 이 의태를 하는 피식자를 탐색하도록 진화하겠지요. 그러면 피식자는 또 다른 회피 전략을 모색해야 합니다.

수생식물인 통발의 포충낭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왼쪽)과 포충낭으로 빨려들어가는 물벼룩의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먹이사슬의 역행, 식물포식자

중남미의 야테베오,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나무, 인도의 필리 마라(호랑이 나무) 등은 사람을 잡아먹는 나무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물론 이는 허구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건 생태학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먹이사슬을 역행할지라도 말입니다.

끈끈이주걱이나 파리지옥과 같은 식물은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곤충을 사냥해 왔을까요? 사실 식물은 땅으로부터 질소나 인과 같은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에 더 익숙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식충식물은 대부분 습지대와 같이 열악한 지역에 서식하기 때문에 식물에게 필요한 형태의 질소가 매우 부족한 특징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식물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곤충에서 얻을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흡입식으로 물벼룩을 포획하는 수생식물인 통발. 국립생태원 제공

식충식물의 다양한 벌레를 잡는 유형 중 통발은 흡입식으로 물벼룩을 포획합니다. 포충낭은 진공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는 주변을 지나가는 물벼룩을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서 잡기 위해서입니다. 포충낭 주변을 지나가던 물벼룩이 감각모를 건드리면 주머니가 물벼룩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데, 그 순간 문이 닫혀 탈출할 수 없습니다. 입 근처의 촉수만 건드려도 진공청소기처럼 벼룩을 빨아들여 상황이 종료되고 맙니다. 통발은 식충식물 중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데요, 포충낭의 문이 닫히는 시간은 약 0.03초입니다. 앗, 하는 순간 이미 포충낭 안인 겁니다. 안타깝지만 통발의 포충낭에 갇힌 물벼룩이 빠져나올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포충낭 속 물벼룩은 소화액에 용해되고 식물에 미네랄을 공급합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공존을 위한 경주

포식자와 피식자가 저마다 자신의 개체군을 유지하려는 진화적인 경주는 이들이 공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 않고 어느 한쪽이 따라 잡히거나 혹은 멀어지게 된다면, 포식자와 피식자 중 한쪽은 절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도망가기’와 ‘숨기’, 모두 포식자를 회피하기 매력적인 방어전략이지만 생물은 보통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포식자의 성향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이른바 ‘맞춤형 회피 전략’은 피식자의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포식자에게는 지속적인 먹이원 유지를 도왔습니다. 다양한 포식자들에 맞서 목숨을 걸고 진화해 온 피식자의 생존전략은 실로 절묘합니다. 또 포식자 역시 무분별한 먹잇감 확보 대신 피식자를 생존하게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먹이원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공존을 추구하는 피식자의 유연함과 포식자의 강인함은 우리도 배울 만한 점이 아닐까요.

국립생태원 생태공간조사평가연구팀 최종윤 전임연구원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 유치원 돈으로 명품백ㆍ성인용품 산 원장님
'용산, 20억 든 강남 알부자만 몰려... 그들만의 세상 됐다'
“경기 회복” 나홀로 고집하더니... 정부마저 낙관론 접었다
이재명 '이명박ㆍ박근혜 때도 문제 안 된 사건… 사필귀정'
문 대통령 “北 서해 NLL 인정…평화수역 대전환”
발끈한 손학규 “한국당은 없어져야 할 정당”
[단독] 고용부 장관 반대 편지에도… 박근혜 청와대, 전교조 법외노조화 강행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