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호 기자

등록 : 2020.06.15 16:45

“광주시, 맥쿼리에 휘둘려 도로 재협상 말아먹었다”

등록 : 2020.06.15 16:45

광주 제2순환도로1구간 소태IC 전경. 광주시 제공

“광주시가 거대 인프라 투자 자본에 휘둘려 협상을 말아먹었다.”

‘혈세 먹는 하마’로 지목됐던 광주제2순환도로 1구간(두암IC~소태ICㆍ5.67㎞)에 대해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박한 평가를 내리기 십상이다. 이 구간에 적용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의 사업시행조건 변경(사업재구조화)을 위한 광주시와 민간사업시행자 간 협상이 금품으로 얼룩진 탓이다. 광주시의 부실ㆍ졸속 협상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정작 사업시행자 지분 100%를 소유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막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광주시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 및 변호사법 위반 등)로 기소된 A(55)씨가 최근 1심(광주지법)에서 징역 3년 6월과 추징금 2,051만여원을 선고 받은 이후 판결문을 통해 그 일단이 드러났다.

15일 판결문 등에 따르면 2014년 12월 맥쿼리 전무였던 K씨는 1구간 문제를 풀기 위해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의 선거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A씨를 접촉했다. K씨는 A씨에게 맥쿼리 측 협상 자문을 맡은 투자자문사 대표 H씨를 소개하며 “H씨와 1구간 문제점 해결 방안을 마련해 주면 합당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는 시가 실제 통행료 수입이 예상통행료 수입의 85%에 미달되면 재정보전금을 지급하는 기존 MRG 협약에 발목이 잡혀 매년 수백억 원을 쏟아 붓게 되자 맥쿼리 측에 재협상을 요구하던 때였다.

K씨의 제안에 넘어간 A씨는 2015년 8월까지 사업재구조화 협상과 관련한 광주시 입장 등을 확인해 H씨에게 넘겨줬다. A씨는 이어 두 달 뒤 협상이 시작되자 협상 실무를 담당했던 시 간부 B씨에게 H씨를 소개했다. 이후 H씨는 2016년 1월부터 광주시 재정경감단 회의에 배석해 시에 협상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 협상을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야 할 시가 협상 상대 쪽으로부터 자문을 받은 것이다. 시가 협상 내내 맥쿼리에 질질 끌려 다녔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맥쿼리는 협상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뒷공작도 했다. 맥쿼리는 2016년 1월부터 A씨에게 시와 재구조화 협상 자문 약정을 맺으려던 전 대구시 감사관 C씨가 협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C씨는 2012년 맥쿼리가 실질적 운영자였던 대구 범안로 사업재구조화를 주도해 2,000억원 가량의 재정지원금을 절감시킨 회계사였다. 맥쿼리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당시 C씨는 “재구조화를 통해 광주시가 재정지원금 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시는 C씨와 협상 자문 약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A씨는 당시 윤 시장에게 맥쿼리 측의 뜻을 전달했고, 끝내 C씨는 협상에서 배제됐다. 그 후 시는 H씨에게 자문계약도 맺지 않고 17억원에 달하는 재구조화 관련 수수료를 자문료 명목으로 지급했다. 자문료도 맥쿼리 측이 H씨에게 지급한 8억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시는 심지어 2016년 12월 협상이 끝난 뒤 H씨에게 재구조화 유공자로 광주시장 표창까지 줬다. 시가 재정지원금 1,000억여원을 절감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는 게 이유였다.

맥쿼리는 또 2016년 9월 A씨에게 “시를 설득해 사업운영비를 100% 이상 받아오면 제2순환도로 도로시설권리권과 통행료수납용역을 통합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B씨 등을 설득해 125% 이상 증액된 내용으로 운영비 협상을 마쳤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공무원에 대한 청탁 및 알선 명목으로 H씨로부터 5억1,700만원을 받았다.

이처럼 맥쿼리의 부도덕성이 드러나자 시는 제2순환도로 민자사업을 공익처분하는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공공성 회복과 시설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나 관리운영권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2018년 10월 정부법무공단에 발주했다가 중단했던 공익처분 타당성 검토연구 용역에 이번 판결 내용을 반영해 용역을 재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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