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20.06.02 16:57

‘십리벚꽃길’만 그립더냐, ‘천년차밭길’이 섭섭할라

등록 : 2020.06.02 16:57

[자박자박 소읍탐방]<64>하동 화개면

하동 화개면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한 곳으로 인증받은 곳이다. 마을 뒤편 산자락이 대부분 야생 차밭이다. 정금차밭에서 내려다보는 화개천과 주변 마을 풍경이 이국적이면서도 정겹다. 하동=최흥수 기자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올봄은 꽃이 피는지 지는지 모르고 지나갔다. 꽃피는 고을, 하동 화개면의 ‘십리벚꽃길’도 축제 없이 잔인한 봄을 보냈다. 열흘 동안 피어 있는 꽃은 드물어도 화개의 푸르름은 사계절 지속된다. 화개는 공식적으로 국내에 차나무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다. ‘벚꽃’보다 ‘십리’에 주목하면 한국 차의 시원, 화개의 진면목이 보인다. 섬진강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가 대략 6km이고, 도로가 끝나는 의신마을까지는 또 8km를 더 가야 한다. 화개천을 가운데 두고 이어진 골짜기가 깊고도 아늑하다. 그 계곡을 형성하는 가파른 산자락 곳곳이 야생 차밭이다.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천년차밭길’ 산책

화개장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가수 조영남의 영향이 컸다. ‘화개장터’ 노랫말만 보면 아랫말 하동 사람, 윗말 구례 사람에 삐걱삐걱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온 광양 사람,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산을 넘은 산청 사람까지 어우러져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시골장터 분위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지금의 화개장은 오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명성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시장에 더 가깝다.

화개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곳의 옛 화개장터. 현재는 다리 건너편에 관광객들을 위한 장터가 조성돼 있다.

화개장터 광장에 가수 조영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화개장터 담장을 따라 노랫말 속 옛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수해를 막기 위한 제방은 점점 높아져 장터는 섬진강에서 분리됐고, 하천 북측에 형성됐던 시장도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측으로 이전하고 말끔하게 단장했다. 시장 초입에 기타를 든 조영남 동상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옛날 풍경은 장터 담장을 따라 전시한 사진으로나 볼 수 있다.

화개를 여행하는 이들은 대개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계곡 상류에 위치한 쌍계사를 돌아보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화개의 진짜 매력을 보기 어렵다. 화개의 자랑이자 보물인 차밭은 계곡 양측 산허리에 있기 때문이다. 녹차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된다.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이어지는 ‘천년차밭길’을 걸으면 하동의 색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약 2.7km로 1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마저 부담스러우면 출발지와 종착지만 둘러봐도 좋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한 차 시배지. 쌍계사 방장 고산 스님의 글 25수가 조형물에 새겨져 있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차 시배지. 법향다원 이쌍용 차 명인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차를 죽로차라 부른다. 댓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란 차라는 의미다.

차 시배지는 이름대로 한국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얕은 언덕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공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곳으로 2008년 한국기록원에 공식 등록됐다. 초입에 이러한 내력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듬성듬성 바위가 섞인 차밭을 거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나 있다. 차와 관련한 글귀 25수를 새긴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그 뜻을 음미하며 걷는 것도 재미다. 쌍계사 방장 고산 스님이 남긴 글이다.

정금차밭은 화개면에서도 경관이 가장 뛰어난 곳에 위치한 차밭이다. 이곳에서 차 시배지까지 ‘천년차밭길’로 연결돼 있다.

정금차밭의 곡선 밭고랑 뒤편으로 우람한 지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있다.

정금차밭의 소나무는 자연 포토존이다. 화개천 건너 마을과 지리산 산세가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화개면의 차밭은 대부분 마을 뒤편 산허리에 위치한다. 도로로만 이동하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정금차밭은 정금마을과 신촌마을 사이 고갯길에 있어 전망이 시원하다. 아래로 굽어보면 화개천과 주변 마을 풍경이 이국적이고, 시선을 올리면 금방이라도 지리산의 우람한 능선에 닿을 듯하다. 하동군에서 내세우는 ‘한국의 알프스’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발하듯 가지런히 다듬은 차밭 고랑을 거닐면 어디서든 ‘인생사진’을 남겨도 좋을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산허리를 층층이 감싼 차밭 고랑은 자체로 조형미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편안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핵심 포토존이다.

▦‘참새 혓바닥 차’와 ‘병아리 눈물 차’

칠불사도 하동 차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금강산 마하연 선원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참선 도량으로 꼽힌다. 대웅전 앞 보설루 건물에는 당당히 ‘동국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쌍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해발 650m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다.

지리산 반야봉 아래 해발 650m 산중턱에 자리 잡은 칠불사. 당당히 ‘동국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칠불사가 자랑하는 아자방 건물은 현재 해체ㆍ보수 공사 중이다.

칠불사 맨 아래에 아자방을 체험 시설로 재현해 놓았다. 실제 아자방은 스님들의 참선 공간이어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다.

선원에서 내다보는 풍광도 빼어나지만 칠불사에서 가장 자랑하는 건 아자방(亞字房)이다. 방의 네 귀퉁이를 각각 50cm씩 높여 방바닥이 자연스럽게 아(亞)자 모양으로 구획된 방이라는 의미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 공간은 스님이 한 명씩 참선하는 곳이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처음 축조했다고 전하는데 한번 불을 지피면 방안의 온기가 100일간 지속된다고 한다. 실제 아궁이를 보면 어른 서넛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크다. 대웅전 옆 아자방은 현재 해체ㆍ보수 공사 중이라 볼 수 없고, 사찰 맨 아래에 체험 시설로 재현해 놓았다.

칠불사라는 명칭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곳이라는 설화에서 비롯된다. 출가한 자식들을 보기 위해 수로왕과 부인 허황후가 직접 행차했지만 수도하는 스님을 방해할 수 없어 사찰 입구에 연못을 파고, 거기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다. 일곱 왕자의 모습이 비쳤다는 ‘영지(影池)’에는 지금 주위의 나무와 하늘이 담긴다. 맑은 날이면 하늘을 나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빛깔 고운 잉어가 유영하는 모습이 일곱 왕자가 환생한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몽환적이다. 왕과 왕후가 머물렀던 곳은 각각 범왕마을과 대비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김수로왕 행차 때 팠다는 칠불사 영지에 잉어 무리가 유영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물고기다.

칠불사 영지를 헤엄치는 잉어의 모습이 이곳에서 성불한 일곱 왕자의 환생인양 몽환적이다.

칠불사 주지 도응 스님은 화개에 차 나무가 전해진 것도 이때가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한다. 아유타국에서 차 씨앗을 가져 온 허황후가 칠불사에 아들들을 만나러 왔을 때 심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물론 공식 기록보다 600년 이상 앞선 시기이고, 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이기 때문에 확인은 불가능하다. 다만 화개가 차 생산의 최적지로 판명되기까지 오랜 기간 실험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논리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검증하기 힘든 얘기보다 여운이 남는 건 잔의 바닥만 겨우 적실 정도로 따라 준 스님의 차 맛이었다. 처음에는 음미하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둘째, 셋째 잔도 딱 그만큼만 채워 준다. 이른바 ‘병아리 눈물 차’인데 농축액처럼 향이 진하다. 고수만 제조할 수 있는 ‘녹차 에스프레소’인 셈이다.

막연히 몸에 좋을 거라 짐작만 할 뿐,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게 좋은 차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법향다원의 이쌍용 차 명인은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게 좋은 차다. 맛있는 차에선 박하 향이 난다”고 했다. 물론 첫 번째 조건은 좋은 원료다.

김태종 하동차생산자협의회 회장은 화개는 비가 많이 오지만 물 빠짐이 좋아 차 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화개천이 적당하게 습도를 유지해 주고, 연중 기온이 따뜻하다는 것도 좋은 조건이다. 섬진강 주변은 강바람이 세지만, 화개에선 계곡 양편의 높은 산이 오히려 골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화개면 차 시배지에서 딴 차로 작설차를 생산하는 법향다원의 이쌍용 명인.

화개면 법향다원의 이쌍용 차 명인이 우려낸 작설차. 뜨거운 물을 부어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작설차. 곡우 무렵 첫 수확하는 어린 잎이 참새 혓바닥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곡우(4월 20일) 무렵 수확하는 차를 우전차라 하는데, 처음 따는 어린 잎을 따로 작설차(雀舌-)라고도 부른다. 찻잎이 참새의 혓바닥 크기만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잎의 색깔만 옮긴 ‘녹차’나 ‘그린티(Green Tea)’에 비하면 얼마나 재치가 넘치고 멋이 담긴 이름인가. 차 시배지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이쌍용 명인은 아홉 차례 볶은 작설로 명품 차를 생산한다. 뜨거운 물에 우려도 형태의 변화가 없고, 색깔은 더 은은하고 깊어진다. 최고 품질의 작설차 가격이 80g에 120만원 수준이라니, 진짜 차 맛을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명품이다. 같은 재료를 써서 같은 방식으로 제조해도 맛이 미세하게 차이 나기 때문에 가격도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완전한 개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 맛은 결국 차를 볶는 손끝에서 결정된다는 말이다.

▦호리병 속 별천지…최치원 유적 따라 불일폭포까지

화개는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말년에 은거한 지역 중 한 곳이다. 깊은 골짜기마다 그가 남긴(혹은 남겼다고 추정되는) 흔적이 흩어져 있다. 그는 화개의 지형을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이라 표현했다. 호리병 속 별천지라는 의미이니 신선이 노니는 이상향으로 여긴 듯하다.

화개면은 통일신라시대 문장가 최치원이 이상향으로 여긴 곳이다.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앞 계곡에 그가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이 있다.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 앞의 푸조나무. 최치원이 세이암에서 귀를 씻은 후 꽂아 놓은 지팡이라는 전설이 서린 나무다.

신흥마을에서 단천마을로 가는 계곡에 있는 바위에도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어 ‘암호바위’로 부른다.

칠불사 초입 신흥마을 어귀의 바위에 그가 남겼다는 ‘삼신동’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영신(靈神)ㆍ의신(義神)ㆍ신흥(神興) 세 개의 절이 있었다는 표시다.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입구에는 푸조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최치원이 바로 앞 화개천에서 귀를 씻고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꽂아 놓은 지팡이라고 전해진다. 귀를 씻은 바위에는 세이암(洗耳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맑은 계곡에서 세속의 때를 닦아낸 후 신선처럼 학을 타고 날아올랐다는 곳이다. 왕성분교는 최치원이 인간 세상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고 보증한 곳에 자리 잡은 학교인 셈이다.

상류 단천마을로 가는 계곡 바위에도 최치원의 글씨가 남아 있다. 단지 세 글자인데 수수께끼 같은 문양이라 ‘암호바위’라 부르고 있다. 계곡을 거슬러 도로 끝까지 가면 의신마을이다. 벽소령 등반의 출발점으로 주변 산세만 봐도 지리산의 높이와 깊이가 느껴진다. 의신마을에서 계곡 하류 신흥마을까지 이어지는 옛길은 비교적 순하면서도 운치 있는 산책 코스다.

의신마을은 화개면에서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마을 공원에 지리산반달곰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의신~신흥마을 옛길이 끝나는 곳의 계곡 풍경. 순하면서도 거친 지리산의 높이와 깊이가 한번에 느껴진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 가는 길의 환학대(喚鶴臺)는 최치원이 이상향으로 여긴 청학동을 찾기 위해 학을 불렀다는 바위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는 약 2.4km, 왕복 한나절 등산 코스다. 지리산에서는 힘든 코스라 할 수 없지만 한때 야영장이었던 불일평전까지는 꾸준히 오르막이어서 만만한 길도 아니다.

불일폭포 가는 길의 환학대. 최치원이 학을 부른 바위라는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불일폭포 가는 길의 불일평전. 1970년대까지 주민들이 농사짓던 곳이었고, 한때는 야영장으로 이용됐다.

불일폭포 위의 불일암. 암자 바로 아래에 느긋하게 폭포를 감상하는 완폭대 바위가 있다.

60m 암벽에서 떨어지는 불일폭포.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다소 아쉬웠지만 더위를 식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불일폭포 바로 앞까지 탐방로가 나 있다. 사진으로는 아담해 보여도 실제는 2단으로 떨어지는 웅장한 폭포다.

폭포는 불일평전 뒤편에서 계곡 아래로 다시 내려가는 협곡에 있다. 수량이 줄었다지만 물소리가 계곡을 가득 메운다. 60m 단애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와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폭포 상단과 비슷한 높이에 불일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고, 바로 아래에 ‘완폭대’라는 바위가 있다. 느긋하게 폭포를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지금은 바위 위에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대신 폭포 바로 앞에 전망대를 설치했으니 멋스러움은 덜해도 현장감은 뛰어나다.

하동=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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