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
영화평론가

등록 : 2019.12.14 04:40

[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으악새 영화 찍는…” 편견 깨고 칸의 시선 잡은 이두용

등록 : 2019.12.14 04:40

<41> 액션영화 감독 이두용의 변신

※ 한국영화가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영화만큼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를 통해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영화감독 이두용.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두용은 특유의 폭력 연출과 ‘칼’ 편집으로 유명했거니와, 그런 그의 장기가 잘 산 영화는 ‘해결사’(1982)였다.(중략) 악한을 공중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입에 비누를 물리고 몇 대 먹인 다음 좌변기에 머리를 처넣고 물을 내리자 뽀글뽀글 올라오던 그 앙증맞은 거품, 벽돌공장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기나긴 패싸움 시퀀스, 황정리의 저 현란한 발기술. 하나같이 험상궂기 짝이 없는 진짜 사나이들의 세계였다. 법이 무력해진 시대에 그것을 대신하는 사적 응징의 통쾌함이었다”(‘김기영과 이두용과 임권택’, 박찬욱 저서 ‘박찬욱의 몽타주’에서)

이두용(77)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의 중흥을 이끈 흥행 감독이었다. 데뷔작 ‘잃어버린 면사포’(1970)에서 후년의 대표작 ‘뽕’(1985)이나 ‘내시’(1986)에 이르기까지 멜로물, 토속물, 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그중에서도 그가 열정을 갖고 천착한 장르는 “좀 더 영화적인 기능을 살리는” 액션 활극이었다. 연출부로 일하던 고등학교 선배의 촬영현장을 들렀다가 얼떨결에 이강천 감독의 ‘생명’(1958)에서 스크립터 대타로 일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이두용 감독은 김수동 감독의 ‘여왕벌’과 ‘단발머리’(1967), 정소영 감독의 ‘속 미워도 다시 한 번’, ‘잊혀진 여인’(1969)의 조감독을 거쳐 감독에 입봉했다. 그의 초기 경력은 ‘댁의 아빠도 이렇습니까’(1971), ‘죄 많은 여인’(1971)과 같은 신파적 멜로드라마였다. “멜로만이 마치 순수 영화 예술로 착각”되었고 연출 제안을 받으면 그런 유의 작품들만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안정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박력 넘치는 액션 활극에 흥미를 가졌던 그로선 답답한 노릇이었다.

한국형 발차기 태권도 영화의 효시가 된 ‘용호대련’의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청춘스타 전영록이 주연한 영화 '돌아이'(1985) 케이블카 액션 등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무술 유단자 수십 명 배우로 발굴

‘용팔이’로 유명했던 박노식 주연의 ‘날벼락’(1971)으로 이경자 편집기사와 함께 ‘스피디한 템포와 액션’의 가능성을 실험한 이두용 감독은 합동영화사의 곽정환 대표와 손잡고 한국만의 독자적인 액션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그의 발상은 사뭇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태권도를 응용한 액션영화를 만든다면 홍콩의 권격영화와는 차별화되는 동시에, 태권도에 관심이 많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액션을 소화할 배우 모집을 위해 영등포의 한 도장을 잡아다 참가자들에게 시연과 대련을 시켰는데, 100여명의 태권도 유단자가 몰린 전국적인 규모의 오디션이었다. 낙점할 주인공을 찾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20~30명 가까이 뽑았는데 다 합치니까 100단이 넘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유수의 실력자들을 대거 발굴하고 속성으로 연기교육을 시켰다. 그 중에는 홍콩으로 진출해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의 악역으로 유명해진 발차기의 달인 황정리, ‘생사결’(1982), ‘프로젝트 A 2’(1987)에 출연한 권영문과 같은 인재들도 있었다.

국내 오디션에서 추려낸 배우들에 세계태권도대회에 출전한 한용철을 주연으로 합류시켜 찍은 만주 액션물 ‘용호대련’(1974)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하여간 발로 귀싸대기 때린다고 소문이 나서 극장이 미어터지며” 서울 허리우드 극장에서만 4만4,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선풍을 일으켰다. 이 감독은 그 해에만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돌아온 외다리 속’ ‘배신자’ 등 6편의 액션영화를 잇달아 쏟아내며 태권도 영화의 유행에 불을 질렀다. 지방흥행업자들은 같은 날 약속을 하고 합동영화사로 몰려와 “이두용 감독에 한용철 주연으로 태권도 영화 만들라”며 즉석에서 수표를 끊었고, 편당 2만~3만달러로 미국이나 동남아에도 수출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한용철의 몸값이 치솟아 다른 영화사로 스카우트되자 이 감독은 강대희를 새로운 액션 스타로 내세워 일본에 의한 대한제국 군대 해산의 역사를 그린 ‘무장해제’(1975), 이전 작품에서 꾸준히 조연을 맡던 현길수를 전면에 내세워 ‘사생결단’(1975)과 ‘비밀객 속’(1977)을 찍는가 하면, ‘아메리칸 방문객’과 ‘뉴욕 44번가’(1976)를 해외 로케이션으로 만들며 해외시장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스타가 된 황정리의 국내영화 복귀작 ‘해결사’에서 한 정점을 이룩한 이 감독의 액션은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1985)와 ‘돌아이 2’(1986)에서 각각 카 스턴트 액션과 케이블카 격투 장면으로 규모를 일신하며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당시 황영빈이라는 평론가와 무척 친했는데 그가 어느 날 문득 그랬다.(중략) ‘왜 그렇게 연탄 찍어내듯이 영화를 빨리 공산품 만들 듯 만드느냐, 액션영화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망가진다...’ 그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액션영화를 쉬게 되었다.” (걸작 ‘최후의 증인’과 이두용의 영화세계, 영화주간지 필름 2.0 2006년 1월 17~24일호)

이두용 감독은 "영화와 관련된 일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최후의 증인’(1980)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담고 있는 수작이나 '빨갱이 영화'로 낙인 찍혀 가위질 끝에 상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사극과 현대극으로 인정 받다

이 감독의 액션영화는 ‘하층관객의 배설구’(이영일 ‘마비와 혼미의 시대’ 영화월간지 영화예술 1970년 12월호)라는 평단의 반응과 더불어 영화계 내부에서도 ‘싸구려 저질영화’로 취급되며 억울하리만치 매도당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으악새 영화(배우들이 ‘으악!’ 소리를 내고 쓰러지는 점을 비꼬는 표현)라고 부르는 시선”을 이 감독은 견딜 수 없었다. 오태석 작가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초분’(1977)을 기점으로 이 감독의 영화는 변하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영화는 무속과 같은 민속 전통이나 역사 현실 속에서 억압당하고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고, 이러한 작가적 변신은 ‘피막’(1981)과 ‘업’(1988), ‘물레야 물레야’와 ‘뽕’(1984)을 거쳐 자신의 영화사 두성필름의 창립작인 ‘내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 중에서 ‘최후의 증인’(1980)은 비운의 걸작이었다. 세경영화사의 기획실장 김동진으로부터 “영화다운 영화를 하고 싶다”며 연출을 제안 받은 이 감독은 추리소설가 김성종의 소설을 극화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비극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평소 원작 있는 문예영화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언젠가 한국전쟁에 대해 다뤄볼 구상을 갖고 있었던 이두용은 시나리오를 채 탈고하기도 전에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촬영은 1979년 5월에서 1980년 3월까지 장장 10개월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 감독은 주연배우 하명중,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서울, 강원 평창군 횡계리, 설악산 등등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비며 영화를 찍었다. 북한군 잔당과의 전투장면은 전남 구례군의 폐교를 사다가 통째로 불태우면서 촬영했고, 현장감 넘치는 소리를 얻기 위해 후시녹음에만 한 달 동안 공을 들였다. 충무로에서는 그해 대종상 작품상은 ‘최후의 증인’이 될 거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최후의 증인’ 검열 문제로 영화를 그만둘 결심까지 했으나 '피막'을 만들며 영화 인생의 새 전기를 맞는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그러나 의문의 투서가 청와대 민원서에 날아들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돌자 경쟁영화사에서 외화수입 쿼터를 따내지 못할 걸 우려한 나머지 감독의 사상과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불온하다는 식의 밀고를 넣은 것이다. 이 감독과 시나리오작가 윤삼육, 제작자 김화식은 남산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치러야 했고, 군사정권의 검열로 157분의 프린트 중 한 시간 가까운 분량이 잘려나갔다. 버젓이 시나리오 사전 검열을 통과하고 촬영허가를 받은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개봉날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이 감독은 내 작품이 아니라며 자리를 뛰쳐나갔고, 영화는 열흘 남짓 걸려 있다가 극장에서 내려갔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최후의 증인’의 네거티브 필름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굴해냈고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는 원판에 가까운 154분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주인공 손지혜(정윤희)가 성상납을 요구받는 장면, 오병호(하명중) 형사가 공문서를 열람하기 전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 등 3분 가량의 삭제 분량은 끝내 복구되지 못했지만, 한국 근대사의 질곡과 상처 입은 민중을 바라보는 작가 이두용의 시선이 그 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회심의 역작이 갈기갈기 찢긴 후 죽음까지 생각하던 이 감독에게 세경영화사 쪽에서 작품 한 편을 더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된 ‘피막’은 베니스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에 주목한 칸영화제 선정위원들이 다음 작품의 칸 출품을 권유하면서 ‘물레야 물레야’가 칸영화제의 주요 부문 중 하나인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오르게 되었다.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쾌거였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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