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기 기자

서재훈
기자

등록 : 2020.04.11 11:09

[펼쳐ZOOM] 코로나를 넘어서… 마칭밴드의 희망 팡파르

등록 : 2020.04.11 11:09

크라운 마칭밴드 팀원들이 경기 용인시 명지대 자연캠퍼스 주차장에서 악기와 장비를 펼쳐 놓고 공연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홍인기 기자

크라운 마칭밴드 팀원들이 경기 용인시 명지대 자연캠퍼스 주차장에서 악기와 장비를 펼쳐 놓고 포즈를 취했다. 홍인기 기자

※편집자 주

익숙하기 때문에 잘 안다 착각하고 있지 않나요? 여기 펼쳐 놓은 소품 하나하나엔 미처 몰랐던 그들만의 세상이, 열정과 고집이, 치열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펼쳐 보는 사진 이야기 ‘펼쳐 ZOOM’,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마칭밴드입니다.

경쾌한 합주에 일사불란한 퍼포먼스까지 더해지니 지루하던 행사장에 흥이 오른다. 세대에 따라 ‘고적대’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마칭밴드(Marching Band)’ 덕분이다. 지난달 22일 경기 용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크라운 마칭밴드’를 만났다. 

우선 사진부터 찍자고 했다. 9명의 팀원들은 타고 온 12인승 밴에서 트럼펫과 트롬본, 거대한 골뱅이 모양의 수자폰을 차례로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어 큰북과 작은북이 등장했고 화려한 컬러가드(퍼포먼스용 깃발)와 유니폼, 어린이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동물 복장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펼쳐놓은 10여종 30여개의 악기와 소품 사이에 팀원들이 누워 포즈를 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국민들을 위한 가상의 행진, 희망의 팡파르가 이렇게 완성됐다.

이름 그대로, 행진을 하며 합주를 하는 마칭밴드는 중세 유럽에서 시작해 19세기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군악대로 발달했다. 그 후 사회로 나와 각종 행사나 퍼레이드에 단골로 등장해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해 왔다.

마칭밴드는 주로 관악기와 타악기를 이용해 경쾌한 행진곡을 연주한다. 금관악기에 속하는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유포니움, 수자폰을 비롯해 플루트, 피콜로, 클라리넷, 색소폰과 같은 목관악기, 여기에 스네어 드럼, 베이스 드럼, 멀티 드럼, 심벌즈 등 타악기가 합쳐진다. 크라운 마칭밴드의 경우 주로 15~30인조로 활동하는데, 금관악기와 타악기만으로 공연을 소화한다. 한차례 행사를 위해 보통 의상 10여벌과 15종류의 악기를 차량에 싣고 이동한다. 악기 가격만 3,000만~4,000만원 정도인데 큰 행사의 경우 차로 운반하는 악기 가격만 1억원이 넘기도 한다.

다양한 색상의 트럼펫(아래)과 트롬본.

커다란 골뱅이 모양의 수자폰과 타악기인 심벌즈.

크라운 마칭밴드는 운영비와 팀원들의 수입을 출연료로 해결해야 하는 전문 밴드다. 지역 축제나 각종 행사가 집중된 봄가을과 연말이 가장 바쁘다. 특히 5월과 10월은 초성수기에 속해 한 달 이동거리만 1만 3,000여㎞에 달할 정도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니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몇 해 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 초청을 받았는데, 당연히 정부 행사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보수 단체의 행사였다. 당혹감 속에도 공연은 무사히 마쳤지만 상대 진영 쪽으로부터 전화와 댓글 항의가 빗발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주최 측과 의사소통 실패로 팀원들이 ‘생고생’을 한 적도 있다. 퍼레이드 총거리를 300m로 알고 현장에 가 보니 3㎞였던 것이다. 9월 늦더위와 땡볕 아래에서 팀원들은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화려한 퍼포먼스용 깃발인 컬러가드(오른쪽)와 제복 같은 유니폼 및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복장.

지난해 10월 전북 임실치즈축제에서 야외 합주를 선보이는 크라운 마칭밴드. 메이킹컴퍼니 제공

2017년 9월 서울 방배동에서 서리풀 페스티벌 행사에 공연 선보이는 크라운 마칭밴드. 메이킹컴퍼니 제공

지역 행사가 곧 수입원이다 보니 올해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축제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5년째 드럼메이저(지휘자)를 맡고 있는 우성아(27)씨는 “코로나 때문에 예정된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면서 수입도 끊겨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미국의 경우 전국 단위의 대규모 경연대회가 열릴 정도로 마칭밴드가 활성화됐지만 국내는 군악대나 일부 고등학교 외엔 전문 밴드가 많지 않다. 크라운 마칭밴드가 소속된 메이킹컴퍼니 진해근 대표는 “밴드 운영에 있어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며 “일찍 악기를 배운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마칭밴드 연주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연주에 흥겨워하는 관중이 있어 쉽사리 행진을 멈추지 못한다. 우씨는 “관객들이 환호하며 ‘예쁘다! 잘한다!’라고 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클래식 음악을 하는 분들은 많지만 마칭밴드용 악기를 배우는 분들은 적다”며 “학교에서 마칭밴드를 했던 친구들이 졸업 후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전문 밴드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준희 인턴기자

크라운 마칭밴드 팀원들이 경기 용인시 명지대 자연캠퍼스 주차장에서 악기와 장비를 펼쳐 놓고 공연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홍인기 기자

크라운 마칭밴드 팀원들이 경기 용인시 명지대 자연캠퍼스 주차장에서 악기와 장비를 펼쳐 놓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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