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

등록 : 2020.06.11 04:30

정부, 김여정의 비난 담화 압박에… “대북전단 단체 2곳 고발”

등록 : 2020.06.11 04:30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첫 적용

남북관계 개선 위해 고육책 꺼내들어

박상학(왼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8일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리 한 해안가 진입로에서 통행을 막아선 주민에 반발하고 있다. 박 대표와 탈북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이 지역 해안가에서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측에 보내는 행사를 개최하려다가 주민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10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를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북한이 4일 대북전단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9일 남북 간 모든 통신선까지 차단하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남북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북측에 분명히 보여준 신호이긴 하나, 최선책인지에 대해선 의문도 제기된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두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절차에도 돌입했다. 이들 단체는 남측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4일)에서 사실상 지목된 곳이기도 하다. 정부는 두 단체가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교류협력법(제13조)은 물품의 대북반출을 위해선 품목, 거래 형태, 대금결제 방법 등을 통일부 장관에게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북측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농가 주변에 탈북민 단체의 대북 쌀 보내기 행사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정부가 대북전단을 교류협력법 상 반출 물자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의 이런 유권해석 근거는 크게 다섯 가지다. △2018년 4ㆍ27 판문점선언에서 군사분계선 일대 전단 살포를 포함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한다고 합의 △2016년 대법원이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 위협이 있을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 △단순한 전단지가 아닌 쌀, USB(이동식 저장장치), 달러 등 다양한 물품 전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우려 △접경지역 군사적 긴장 조성 행위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안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련의 상황을 감안해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유권해석을 한 것”이라며 “남북관계 긴장이 높아지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받게 될 불안과 걱정을 특히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새로운 유권해석에 근거해 두 단체를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통일부 소관 비영리 법인인 두 단체의 법인 허가를 취소하는 사유도 비슷하다. 설립 허가 시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과 평화통일 환경 조성 노력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는데 이를 어겼다고 판단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두 단체의 활동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공익에 반한다”고 말했다.

그림 3북한 청년들이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성토하는 군중 집회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6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부가 ‘초강수’를 둔 배경에는 두 단체의 활동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탈북민 출신 박상학 대표, 큰샘은 박 대표의 동생인 박정오 대표가 이끌고 있는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도 이들은 이를 아랑곳 않고 대북전단 살포를 홍보하고 강행해왔다. 정부가 자제 요청 공문을 수 차례 보냈지만 무시하기 일쑤였고, 전단이 북측으로 날아가지 않는 시기에도 외신 등을 대상으로 퍼포먼스를 벌이기까지 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담화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5월 31일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콕 집어 문제 제기한 후에도 두 단체는 전단 살포를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8일 인천 강화군 삼산면의 한 마을에서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어 북한에 보내려다 주민 반발로 실패하기도 했다. 특히 자유북한운동연합은 6ㆍ25전쟁 70주년을 맞아 오는 25일을 전후해 대북전단 100만장을 날리겠다고 예고해 군사적 긴장 고조를 우려한 접경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정부 입장에선 북한이 2018년 이후 유지돼왔던 남북관계 전면 중단을 선언하고, ‘대남정책’ 대신 ‘대적정책’을 펼치겠다고 압박하는 사정도 감안해야 했다.

그림 4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5월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대북전단을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날려 보낸 모습.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000장, 메모리카드(SD카드) 1,000개를 북측에 보냈다고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그러나 정부의 대응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그 동안은 ‘표현의 자유’ 문제를 들며 이를 막지 않다가 갑자기 유권해석 변경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역할을 방기하다 북한이 압박하자 부랴부랴 나섰다는 굴복 비판 여론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다 해도 북한이 선선히 남북대화 테이블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 북한이 대북전단 문제를 빌미로 대남 압박 총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배경에는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꼬여버린 남북ㆍ북미관계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통일부 발표 직후 “김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법 위반’이라 한 적이 없는데 정부가 ‘대북 반출 승인 규정 위반’을 내세워 보복 조치부터 하는 것은 웃프기 그지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최근까지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교류협력법 개정을 추진하던 정부가 교류협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유권해석부터 내린 점도 아쉬운 지점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권리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어 법적 해결이 힘든 난제다. 그런데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만든 법을 제한 수단으로 삼아 선례를 만들면 향후에도 정권 향배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정부가 남북관계 관리 측면에서 불가피하게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단 문제를 해결해도 남북관계는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 대책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해결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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