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기자

등록 : 2019.12.23 04:40

“스스로 유품 정리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요”

등록 : 2019.12.23 04:40

[인터뷰] 인터넷 장례 플랫폼 여는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생전에 유품 정리를 직접 해보라.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고민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정리하다 보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작업할 때마다 심리적 부검을 하는 것 같죠. 고인이 남긴 물건, 흔적을 보면 생전 모습이 그려집니다.” 김석중(50) 키퍼스코리아 대표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비유했다. 그의 직업은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유품정리사. 2010년 일본 유품정리업체 키퍼스에서 영감을 얻어 부산에 같은 이름의 한국 회사를 차리고 이 생소한 직업을 알려왔다. 이달 말부터는 동명의 장례 관련 포털사이트 키퍼스코리아도 선보인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 유품정리업에 뛰어들기 전에는 무역업체를 운영했다. MRO(기업용 소모품 및 산업용자재) 시장이 커지기 전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한때 한진중공업 조선소에 커피 같은 간식을 전부 납품하는 등 꽤 성공도 맛봤다. 김 대표가 유품정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젊은 직원의 죽음을 지켜 보면서다. 그는 “성실한 친구였는데 휴일에 친구랑 놀러 갔다가 자동차 사고로 둘 다 숨졌다. 두 사람의 보험 배상금이 다르자 부모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하더라. 혼란스러웠고 ‘돈 벌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때 일본 NHK방송의 유품정리업체 키퍼스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고 무작정 회사 대표인 요시다 다이치를 찾아갔다. 2007년부터 3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각지의 사례별 유품정리법을 배웠다. “고독사와 가족이 있을 때의 유품정리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같은 고독사라도 100세 할아버지, 오타쿠, 자살은 어떻게 다른지 사례별로 지켜봤죠. 겉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일본을 봤고,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유품관리사 김석중씨. 박형기 인턴기자

김 대표는 2009년 요시다 다이치의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를 번역해 국내 출간하고, 이듬해 키퍼스 코리아를 열었다. 무역업체 운영은 가욋일이 됐다. 매스컴에서 주목을 받으며 초창기 일감이 몰려들었지만, 미디어의 관심은 특이한 고독사 같은 자극적인 주제에 집중됐다. 왜 유품을 정리해야 하는지, 죽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없었다.

의뢰를 받으면 유품 중 버릴 것과 남길 것을 판단한다. 유언장이나 계약서, 귀중품과 후대에 남길 가치가 있는 유물을 골라낸다. 유족과 상담이 이뤄지고, 법적 절차나 세무 처리가 진행되도록 돕는다. 유품정리 기술, 문화적 이해, 법률적 지식이 필요한 전문 분야이지만 국내 유품정리 산업이 ‘특수 청소’의 한 분야가 되면서 일을 할수록 적자가 났다. 그는 “일본의 경우 대략 450만원선 내외인데, 국내는 그 절반도 안 된다. 비용을 적게 받는다는 건 제대로 처리도 안 될뿐더러 업무 처우도 열악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견적을 내러 현장으로 가는 동안 이미 다른 업체가 유품정리를 끝낸 일도 허다했다. 김 대표는 “일본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인 종활(終活)의 하나로 생전 정리를 일상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금기시되고 유품을 빨리 치워 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개점 휴업상태로 두었던 회사를 재작년부터 다시 운영하기 시작한 건 일본의 고독사 증가현상을 보면서다. 그는 “일본은 단카이 세대가 은퇴하고 한 해 130여만명씩 사망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한 한국도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재작년 말에 ‘고독사 예방 대책 연구소’를 열고, 전국을 돌면서 고독사 예방 강연을 하면서 고독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달 말 선보이는 포털사이트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장례 문화를 비교하며 허례허식에서 벗어난 장례 방안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기 위해서다. 각종 장례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엔딩노트’ 작성법도 소개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가장 좋은 건 가족이나 본인이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자기 관을 자기가 준비해요. 그래서 화려해요. 장례를 스스로 준비하면 삶을 다시 보게 됩니다. 가족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버릴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하면서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느끼는 거죠. 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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