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9.01.05 04:40

[아하! 생태!] 꽃가루 싣고 멀리 멀리… 박쥐는 최고 중매쟁이

등록 : 2019.01.05 04:40

몰디브의 숲 속에서 박쥐가 꽃을 향해 혀를 내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구상에 자라는 식물은 이끼, 고사리까지 합하면 40만종 가까이 됩니다. 이 중 꽃식물이 대략 35만여 종이니 대부분은 식물은 바로 꽃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꽃식물 가운데서도 약 20%만이 바람이나 물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생물의 중매를 통하여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씨가 씨방 안에 들어 있는 속씨식물이 출현하고 여기에 생물적 꽃가루받이가 결합되면서 식물진화는 총알처럼 빨라졌습니다. 종의 분화가 마치 폭죽이 터지듯 폭발한 것이지요. 생물학적 타가수분에 의하여 유전자 재조합과 새로운 조합이 엄청 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물론 종의 분화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지만 유전자의 새로운 조합이 가장 큰 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식물은 타가수분을 통해 유전자 다양성을 높인다

식물은 효과적인 타가수분을 위해 동물을 중매쟁이로 써먹기 시작한 이래, 이들을 효과적으로 부려먹기 위한 갖은 방법을 고안해오고 있습니다. 적절한 보상 외에도 색과 모양의 발달, 향기내기 등 갖은 속임수에 지금도 여러 동물이 중노동(?)에 끌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식물이 중매쟁이를 쓰는 이유는 효과적으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이루어 유전자 다양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지만, 자가수분을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곤충의 크기가 작게 진화한 것도 식물에게 여러 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중매쟁이(화분 매개체)에게 적은 사례만 해도 되기 때문에 식물 자체도 작게 진화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충분한 꽃가루받이가 보장 받지 못했다면 아마 식물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을 겁니다.

소나무 등 침엽수는 바람에 의한 수분을 하기 때문에 대량의 꽃가루를 생산해 널리 퍼뜨리는 전략을 쓴다. 게티이미지뱅크

비생물학적인 타가수분은 대표적으로 바람에 의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산밑 논에 고인 물에 떠있는 노란 가루를 볼 수 있는데요, 바람에 송홧가루가 날려 온 것이지요. 겉씨식물인 침엽수뿐 아니라, 속씨식물 중에서도 참나무류, 자작나무류 등은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들입니다.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은 많은 양의 꽃가루를 생산해야 합니다. 이들은 물량공세로 많은 양의 꽃가루를 내어 암꽃에 닿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자가수분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구비하고 있는데요. 대부분 침엽수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달립니다. 또한 겉씨식물, 속씨식물 모두 수꽃과 암꽃이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식물 중매에는 척추동물도 참여한다

이제 범위를 좀 더 좁혀서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식물의 꽃가루받이에는 곤충류가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척추동물도 적지 않게 참여합니다.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박쥐는 일단 제외하고 다른 포유류와 새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박쥐를 제외한 포유류는 약 85종이 꽃가루받이를 하며 여기에는 유인원, 설치류, 몽구스 등이 포함됩니다. 유인원 중에서는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레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꽃가루받이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무는 마다가스카르를 대표하는 식물인 여행자야자나무를 즐겨찾으면서 넥타(꽃꿀물)를 빨아 꽃가루를 옮겨줍니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케이프코끼리땃쥐는 프로테아라는 식물에서 넥타를 찾는데 이 식물은 아주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많은 넥타를 생산하지요. 케이프코끼리땃쥐는 주둥이가 가늘고 길게 뻗어 있어 넥타를 빨기에 적합하게 진화되었습니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는 열대와 아열대 등 따뜻한 곳일수록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류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하는 척추동물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뱅크

척추동물 중에서 비교적 많은 종이 식물의 꽃가루받이에 참여하고 있는 동물 집단은 바로 새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대륙의 벌새를 비롯해 호주나 남태평양 섬에 사는 태양새, 꿀빨기새 등이 대표적인데요. 앵무새도 주요한 꽃가루받이를 하는 새에 속합니다. 새들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910여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열대나 아열대에서 자라는 것들이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포유류나 새들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하는 종들이 있습니다. 새들은 주로 이른 봄 추위 때문에 아직 곤충이 나오기 전 꽃가루받이에 나서는데요. 동박새, 직박구리 등은 동백꽃이 내는 넥타를 빨면서 꽃가루를 옮겨 줍니다. 새 뿐 아닙니다. 육식동물로 알려진 담비도 꽃가루받이에 참여합니다. 담비는 단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넥타를 생산하는 꽃을 찾아 와서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갑니다.

꽃가루받이의 종결자는 박쥐

척추동물 중 ‘식물 꽃가루받이’의 종결자는 박쥐입니다. 전 세계 박쥐는 약 1,350여종에 달합니다. 포유류 중 단연 가장 많은 종을 차지하는데요. 모두 야행성이며 시각, 후각, 청각 외에 초음파를 써서 위치를 가늠하고 먹이를 찾습니다. 대부분 곤충을 잡아먹지만 과일먹이류, 넥타먹이류, 소동물먹이류, 흡혈박쥐 등도 있습니다. 과일을 먹이로 하는 박쥐류는 덩치가 아주 커서 날개를 편 길이가 1.5m를 넘기는 것도 있습니다. 이중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식물의 넥타를 먹는 박쥐류입니다.

바나나꽃에서 꿀을 빨고 있는 박쥐. 게티이미지뱅크

박쥐가 꽃가루받이를 하는 대표 식물을 들면 바나나, 빵나무라고 불리는 바라밀, 두리안, 카카오, 망고, 파파야, 기둥선인장, 아가베 등입니다. 그러고 보니 열대나 아열대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과일을 생산하는 식물들이군요. 박쥐에 의하여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약 530여종에 달합니다. 앞서 언급한 과일들 이외에 호주의 유갈립투스나 방크시아, 손네라티아(망그로브 식물), 헬리코니아 등도 포함됩니다.

이들 식물의 특징을 보면 야간에 꽃이 피고, 많은 양의 넥타를 생산한다는 겁니다. 모양은 종모양, 또는 술이 많은 면도솔 모양 등이 많습니다. 또한 꽃이 달리는 위치는 가지 끝이나 나무 기둥에 직접 달리며, 향긋한 꽃 냄새와는 거리가 먼 역하거나 고기 썩은 냄새를 풍깁니다. 넥타는 농도가 연하여 곤충에게 그리 인기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꽃가루받이를 보장받기 위하여 박쥐뿐 아니라 새나 곤충들도 꽃가루받이에 불러들입니다. 예컨대 아가베의 경우 꽃대를 흔들면 마치 물벼락을 맞은 듯이 쏟아져 내릴 정도로 많은 넥타를 생산합니다. 또한 꽃대는 길게 뻗어 9m까지 도달하는데 꽃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많이 핍니다. 꽃대가 높게 솟으면 눈에 잘 띌 뿐 아니라 냄새가 멀리까지 펴져나가겠지요.

기둥선인장 꽃에 맺힌 넥타. 박쥐는 이 넥타를 먹고 기둥선인장의 화분을 돕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기둥선인장 꽃에 맺힌 넥타. 박쥐는 이 넥타를 먹고 기둥선인장의 화분을 돕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박쥐에 의한 꽃가루받이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나은 점은 무엇이길래 박쥐-식물로 공생하는 진화를 이루어 왔을까요? 그것은 박쥐에 의한 꽃가루받이 효율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곤충보다 효율이 더 높은데다 꽃가루를 멀리까지 나를 수 있어 식물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다양성을 더욱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로서는 이상적인 중매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박쥐에게 꽃가루받이를 맡기기 위해서는 식물로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충분한 넥타가 제공되어야 하지요. 따라서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식물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공생관계는 열대와 아열대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박쥐가 없으면 바나나도 없다

박쥐의 조상은 모두 곤충을 잡아먹는 집단이었습니다. 이 집단이 과일을 먹는 집단과 곤충을 먹는 집단으로 나뉘게 됐는데요,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크게 곤충을 잡아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종류와 과일을 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집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시각과 후각이 발달했고 턱이 길어졌으며, 기다란 혀를 갖게 돼 긴 꽃 속으로 주둥이를 깊게 넣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둥선인장 꽃에 맺힌 넥타. 박쥐는 이 넥타를 먹고 기둥선인장의 화분을 돕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기둥선인장 꽃에 맺힌 넥타. 박쥐는 이 넥타를 먹고 기둥선인장의 화분을 돕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곤충을 먹는 조상에서 진화해온 집단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나타나는데, 코 끝에 잎 같은 작은 돌기가 나 있습니다. 되돌아오는 음파로 위치와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반향정위(echolocation)를 쓰며 다른 대륙 박쥐에 비해 크기가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정지비행을 하면서 넥타를 섭취하지요. 반면 동남아, 호주나 아프리카 박쥐는 과일박쥐에서 넥타박쥐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크기가 아메리카 넥타박쥐에 비하여 큰 편입니다. 구대륙 박쥐는 크게 두 번의 진화 과정을 거쳐 넥타박쥐에 이르렀습니다. 정지비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넥타를 빨 때는 꽃에 내려앉아야 합니다. 초음파를 쓰지 않아 방향정위를 활용하지 못하므로 특히 시각이 발달하였고 동굴대신 숲 속의 나무에서 지내는 습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은 대부분 전적으로 척추동물에게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들 척추동물도 전적으로 특정 식물종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지요. 모든 식물은 넥타를 제공하는 대신 척추동물에게 충분한 기여를 요구합니다. 바로 직접적으로는 열매를 맺어 번식을 돕고, 길게는 유전자 조합을 다양하게 하여 궁극에는 생태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일조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척추동물이 실제 관련식물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큽니다. 이들 꽃가루받이 척추동물이 모두 사라진다면 여기에 의존하고 있는 식물의 생산성은 60% 넘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특히 새보다 박쥐의 영향이 커서 새는 46%의 충격을 나타내지만 박쥐가 사라질 경우 관련식물의 84%나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박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관련 식물도 매년 2.5%씩 멸종위기종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광영 국립생태원 식물관리연구실 온실식물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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