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기자

등록 : 2020.05.01 04:30

어린이날 책 선물? 읽히고 싶은 책 아니라 아이가 읽고 싶은 책 어때요

등록 : 2020.05.01 04:30

요즘 어린이책 시장에서 ‘엄마 아빠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어른들도 읽는 그림책’ 같은 홍보 문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만큼 아이들 책의 수준이 높아졌단 얘기일 터. 하지만 헷갈린다. 감성적 그림과 심오한 메시지에 열광하는 건 아이들일까, 어른들일까. 부모들이 사주는 책은 아이들이 읽고 싶은 게 아니라 부모들이 읽히고 싶은 건 아닐까.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선물해도 퇴짜 맞지 않을 책’을 기획한 이유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와 ‘꿈꿔본다, 어린이’의 필자인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장난감보다 더 신나고, 흥나는 책들을 자신 있게 추려봤다.

◇37㎝ 거인 그림책, 탐정의 세계에 풍덩 빠져볼까

‘타이탄’ ‘사라지는 동물친구들’ ‘스무고개 탐정’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책 속의 내용을 본받아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근엄한 메시지를 덧붙이곤 한다. 이런 수직적 태도는 결코 환영 받지 못한다. 선물 받는 어린이는 스스로 허물고 만드는 즐거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생각의 블록놀이 같은, 도전과 추리의 쾌감이 있는 책을 골라보았다.

테오 기냐르의 ‘타이탄’(박선주 옮김ㆍ보림)은 세로 길이가 37㎝나 되는 그림책이다. ‘컴퓨터 타이탄’, ‘미로 타이탄’, ‘놀이공원 타이탄’, ‘괴물 타이탄’ 등 열두 명의 거인족이 등장한다. 그런데 책을 펼치면 똑같이 생긴 거인 둘이 서 있다. 왼쪽과 오른쪽 그림에서 다른 점을 찾는 숨은그림찾기 책이다. 거인족들의 특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종이 호일을 대고 거인을 베껴 그린 뒤 딱딱한 종이에 붙여 거인 모형을 만들거나 거인들이 등장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다.

이자벨러 버넬의 ‘사라지는 동물친구들’(김명남 옮김ㆍ그림책공작소)은 코로나19로 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읽으면 좋을 놀이 그림책이다. 흰머리 랑구르, 자유꼬리박쥐, 모래언덕 더나트, 콧수염물총새처럼 이름만 들어도 신기한 동물들이 지구 곳곳에 깨알같이 숨어 있다. 숲과 동굴과 산호초 등을 그린 배경그림이 탁월하게 부드럽고 아름답다. ‘찾기’라는 행위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이 동물들이 모두 멸종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그들이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인지에 생각이 머무르게 된다.

7년 동안의 대장정을 끝내고 얼마 전 드디어 12권이 완간 된 허교범의 ‘스무 고개 탐정과 마술사’(비룡소)는 탄탄한 탐정물 시리즈다. 작가는 독자들의 뜨거운 연장 요청 속에서도 이 놀랍도록 집중력 있는 작업을 냉정하게 종료했다. 인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필요하며 마지막 권인 ‘독버섯과 박쥐’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탐정을 떠나 보낸다는 아쉬움에 엉엉 울었던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스무 고개 탐정의 세계에 들어서지 못했거나 12권을 손에 넣지 못한 어린이가 주위에 있다면 두고두고 크게 칭찬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무지개가 넘실넘실 춤을 추네

‘의외로 유쾌한 생물도감’ ‘팝업으로 만나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 ‘신기한 무지개’

‘팝업으로 만나는 도구와 기계의 원리’(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ㆍ크래들)는 우리가 살아가는 기계 세계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과학책이자 이야기책, 그리고 놀이책이다. 나무늘보와 코끼리땃쥐의 동물원 탈출 모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빗면, 쐐기, 지레, 도르래, 톱니바퀴 등의 단순 기계와 이들이 합쳐진 복합 기계의 활용 가능성과 사례에 대해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책 표지의 톱니바퀴를 돌려 나무늘보를 물 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톱니바퀴의 회전 운동이 크랭크로 연결되어 왕복운동으로 이어지는 걸 자연스럽게 학습할 것이다. 팝업북은 어린이들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책 속에 다양한 정보와 흥미거리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을 통해 도구와 기계의 원리에 좀 더 흥미를 가지게 된 어린이에게는 같은 저자의 ‘도구와 기계의 원리’를 권한다.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에게 마술적이고 예술적인 체험을 선물할 수도 있다. ‘신기한 무지개’(와타나베 지나쓰 지음ㆍ문학수첩 리틀북)는 말하자면 책으로 만들어진 만화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조에 따라 반으로 접힌 거울 위에 그려진 추상적 이미지들은 거울의 반사작용에 의해 3차원적인 신비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거울의 환영은 깊어지고 다채로워지면서 추상 애니메이션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이 신비로운 시각적 환영은 시간성을 가지게 된다. ‘신기한 무지개’는 아마도 어린이가 가장 처음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체험할 수 있는 현대 미술 중 하나일 것이다. 독서 후 거울지를 활용하여 직접 나만의 거울책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그림으로 가득 찬 사전이나 도감류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친구일 것이다. ‘의외로 유쾌한 생물도감’(누마가사 와타리 지음ㆍ주니어 김영사)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흥미롭고 유쾌한 놀이친구로,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 중 하나이다. 귀엽고 재미있는 만화로 구성된 이 생물도감은 각 생물마다 한 장을 할애하여 앞장에서는 정말로 다양한 생물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 뒷장에서는 생물의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모습을 폭로한다. 얼룩말의 맨 살은 사실 전부 회색이었다고 한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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