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찬유 기자

등록 : 2020.01.23 00:33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살인 코끼리” 오명 벗을까?... GPS 선물한 한국 기업

등록 : 2020.01.23 00:33

<20> 수마트라코끼리 목에 GPS 달기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 지역 동물보호단체 회원 줄씨가 와이캄바스국립공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한 살배기 수마트라코끼리 타우판에게 바나나를 주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3명이 숨졌다. 현지 언론에도 소개되지 않은 비극을 수마트라섬 남쪽 람풍주(州) 밀림에서 들었다. 두 달 전 수마트라코끼리 12마리로 구성된 한 무리가 나타났다는 마을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남쪽에 늘어선 언덕’이라는 뜻의 부킷바리산슬라탄(Bukit Barisan Selatan)국립공원 부근이었다. 주민들이 보여준 사진은 끔찍했다. 희생자들은 갈가리 찢겨 손과 팔이 분리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코끼리가 한 짓”이라고 했다. ‘살인 코끼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커피 농부 자말(24)씨는 “코끼리가 먹이를 찾으려고 움막들을 다 부쉈다”고 했고, 사미온(39)씨는 “커피ㆍ바나나ㆍ카카오농장을 코끼리 떼가 휩쓸고 가면 폐허가 되는데 보상도 못 받는다”고 했다. “무서운 존재”라고 입을 모으다 급기야 “사람은 코끼리를 건들면 법의 심판을 받는데 코끼리는 사람을 해쳐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야생 수마트라코끼리가 사람들이 사는 농장과 마을에 나타난 모습(왼쪽 위 사진)과 코끼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파괴한 집과 움막. 람풍주 지역 주민 제공

공교롭게도 수마트라코끼리는 람풍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공항부터 호텔, 거리까지 도심 곳곳에서 코끼리상을 볼 수 있다. 수마트라섬 전체에 야생 수마트라코끼리는 1,400마리 정도 있고, 그 중 절반 가량이 람풍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수마트라코끼리를 30년 안에 사라질 동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심각한 멸종 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으로 꼽는다.

동물보호단체는 말 못하는 코끼리를 변호한다. “코끼리의 이동 경로와 보금자리를 야금야금 잠식하는 인간이 비극의 근본 원인”이라는 요지다. WWF 활동가 아리(34)씨는 “인간처럼 느끼고 기억력도 좋은 코끼리가 사람에게 쫓기고 쫓기다 악에 받쳐 돌발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코끼리가 나타나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을마다 작정하고 고성과 횃불, 화약을 터뜨리는 사제 총 등으로 몰아내는 식이라 코끼리 입장에선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갈수록 쌓이다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희생자들은 모두 코끼리가 마지막으로 머물던 마을에서 나왔다.

수마트라코끼리가 몇 달 전 출현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의 부킷바리산슬라탄국립공원 주변 마을의 한 나무집. 안에 코끼리가 좋아할 음식이 있으면 코끼리의 표적이 된다.

인간과 코끼리의 충돌은 람풍 일대에서 매달 두 번 가까이 벌어진다. 크고 작은 재산 피해부터 부상과 사망 등 인명피해까지. 물론 상아를 탐하는 밀렵꾼과 서식지를 파괴하는 화전민들, 농장을 망가뜨린 것에 대한 보복으로 농작물에 독극물을 발라둔 농민들에게 희생되는 코끼리가 더 많다. 아이들의 순한 친구처럼 여겨지는 코끼리와 웃음으로 반기는 순박한 촌사람은 그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앙숙이 됐다.

수마트라코끼리 보호구역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해법은 공존이라는 것을 주민도, 어쩌면 코끼리도 알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수마트라 곳곳에 출몰하던 야생 코끼리를 1980년대부터 인도네시아 당국이 국립공원 내 보호구역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80%의 코끼리는 국립공원 바깥에 있고, 가난을 피해 숲으로 숲으로 더 들어가는 사람들과의 접촉도 피할 수 없다. 고민하던 차에 코끼리 목에 위성항법장치(GPS) 달기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매일 20㎞씩 움직이는 코끼리의 이동 경로와 생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 인명 및 재산피해를 막는 동시에 코끼리는 건강 점검과 먹이를 제공받을 수 있으니 ‘누이(사람) 좋고 매부(코끼리) 좋은’ 격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의 주청사에서 지난 연말 열린 수마트라코끼리 GPS 달기 사업 설명회.

지난해 연말 람풍주청사에서 열린 코끼리 GPS 사업 설명회에 참석했다. 관계 기관과 동물보호단체, 현지 언론 등이 모였다. 야생 코끼리에게 마취탄환을 쏴 재운 뒤 GPS를 목에 걸어 나사로 고정시키는 설치 방법 등이 소개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만 생산하는 코끼리용 GPS는 설치비용이 개당 9,000달러(약 1,000만원)로, 배터리 수명은 2년, 무게는 25㎏이라고 했다. 직접 들어본 뒤 왜 이렇게 무거운지 묻자 “동물 몸무게의 5% 이하로 제작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에 확보한 GPS는 두 대다.

우선 지난번 마을을 습격한 12마리(어른 10마리, 새끼 2마리) 무리를 찾아 이르면 이달 내에 GPS 한 대를 달 예정이다. 10여마리씩 무리 생활을 하는 코끼리의 습성상 우두머리 암컷에게만 GPS를 달더라도 수마트라 전체엔 GPS가 100대 가량 필요하다. 현재 WWF가 자체적으로 코끼리에게 달아준 GPS는 5대에 불과하다.

야생 수마트라코끼리 목에 달게 될 코끼리용 GPS. 설치비용이 개당 9,000달러(약 1,000만원)로, 배터리 수명은 2년, 무게는 25㎏이다.

이번 추가 설치는 자금이 없어 작년 4월에 무산됐다가 한국 기업이 지역 동물보호단체를 지원하면서 성사됐다. 이덕섭 한국중부발전(KOMIPO)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인간과 코끼리가 공존하는 세상을 여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동물보호단체 회원 줄(50)씨는 “인간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지각이 뛰어난 인간이 양보하고 관리해야 밀림의 원래 주인인 코끼리와의 유대가 돈독해진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평했다.

부킷바리산슬라탄국립공원에서 만나지 못한 야생 코끼리를 직접 보기 위해 아침 일찍 9시간을 차로 달려 와이캄바스(Way Kambas)국립공원에 닿았다. 에스티(50) 코끼리병원 원장 등이 코끼리 42마리가 보호받는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안내했다. 생생한 증언과 증거 사진을 접한 터라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코끼리들의 자태는 평온하고 장엄했다. 에스티 원장이 손짓하자 무리 틈에서 한 살배기 타우판(폭풍이라는 뜻)이 반갑게 달려오더니 코로 바나나를 받아먹었다. 무리 중 일부는 치료를 받고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들이 다시 찾는 보금자리에 공존이 깃들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 와이캄바스국립공원의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에서 보호하고 있는 코끼리 무리들. 현재 42마리가 있다.

수마트라 람풍 부킷바리산슬라탄ㆍ와이캄바스국립공원=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커지는 '저유소' 화재 미스터리… “외국인 노동자에 모든 책임 부적절”
종신제 도입하면 국민 10명 중 7명 “사형 폐지 찬성”
일본, 방사능 오염수 본격 배출 태세…“정부 대응 필요”
“직장인에게 업무방식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비효율, 삽질, 노비”
‘음주운전 초범도 처벌 강화’ 지시한 문 대통령
김소연 대전시의원 “불법 선거비용 요구 폭로 뒤 외압 있었다”
태풍 직격탄 영덕, 더디기만 한 복구… 애타는 민심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