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재 기자

등록 : 2020.06.04 23:31

손님 태울 때마다 100원씩 기부, 택시 미터기가 웃습니다

등록 : 2020.06.04 23:31

인천 택시기사 박병준씨 57만여원 ‘사랑의열매’ 전달

박병준(왼쪽)씨가 3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 앞에서 사랑의열매 김연순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에게 성금 전달을 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저도 넉넉하지 않지만 더 힘든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박병준(52)씨는 3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들러 기부금 57만9,600원을 전달했다. 적다면 적은 돈. 그러나 박씨의 기부가 주목 받는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93년부터 세미 프로골퍼로 활동하던 박씨는 1998~2003년 서울 은평골프연습장에서 번 레슨비 일부를 기부했다. 금액은 1,600만원. 이 일로 ‘은평골프장의 천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 골프연습장이 문을 닫은 뒤 2006년부터 다른 골프장들을 옮겨 다니며 레슨을 이어갔다. 계속 기부를 희망했지만 2006년 40만원 기부 이후에는 수입이 불안정해 추가 기부는 불가능했다.

월 200만원을 받으며 2015년부터 다니던 수처리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작년 10월 퇴사했다. 석 달치 월급은 물론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나왔다. 꿈꿨던 기부는 고사하고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어머니한테서 돈을 빌려 내는 신세가 됐다.

10년 넘게 기부를 멈췄던 그가 다시 기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작년 11월 말 택시 운전대를 잡으면서부터. 박씨는 “어머니한테서 빌린 돈을 갚는 게 급선무였지만, 수입이 있는데 기부를 계속 멈추고 있을 수는 없었다”며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100원 기부’”라고 말했다. 손님이 탈 때마다 100원씩, 지난 5개월간 5,796번의 손님이 탔고, 그는 그 동안의 결실을 들고 이날 사랑의열매를 찾은 것이다.

박씨는 “오래 전 사랑의열매에 기부를 하다 개인 사정으로 중단했지만, 사회에서 받은 건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고 말했다. 한국이 골프 불모지 수준이던 시절, 주변 도움으로 연습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1993년 세미프로골퍼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던 그다.

박씨는 “당시 받은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며 “작은 돈이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도록, 그게 또 다른 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부금 미터기’를 힘 닿을 데까지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씨의 기부금을 전달 받은 김연순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은 “힘든 시기를 겪었음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아주신 기부자의 따뜻한 정성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소중한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잘 쓰여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택시 운전 중 잠시 쉬고 있는 박병준씨.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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