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빈 기자

등록 : 2018.10.27 14:00

[뒤끝뉴스] 백조가 된 미운 오리, 박용진 의원이 걸어온 길

등록 : 2018.10.27 14:00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립유치원 비리 척결 의지를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폭로로 2018년도 국정감사 최대의 스타로 떠오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두고 여의도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미운 오리’가 백조로 거듭났다”는 말이 나옵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박 의원이 그간 당내에서 눈칫밥을 먹었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해에는 청와대 오찬에 참석했다 ‘반찬 투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20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때는 재벌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경력이 무색하게 국회 정무위에서 사실상 방출됐습니다. 하지만 교육위로 옮겨간 지 3개월도 채 안 돼 보란 듯 가을 국회에서 ‘큰 거 한 방’을 쏘아 올리면서, 박 의원은 민주당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나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단 박 의원이 여권 주류인 친문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건 김종인 더민주 대표 시절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으면서입니다.

◇‘김종인 사람’ 꼬리표, 친문 지지세력에 ‘미운털’

무얼 해도 ‘김종인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와중에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만 유리하도록 개헌 전략보고서를 작성해 논란이 일었을 때 비판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난해 문 대통령 초청 청와대 오찬 때는 페이스북에 “청와대 밥은 부실해도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당청의 의지는 식탁 가득 넘쳐났다”는 글을 올렸다, ‘반찬 투정하는 것이냐’는 비난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당청 모임에 송로버섯, 샥스핀찜 등 일반인은 쉽게 먹기 힘든 메뉴가 등장했던 것을 빗댄 표현이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이 직접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 의원의 글은 역설적 표현으로 여유 있게 봤으면 좋겠다”며 “(SNS상 글이) 기사화까지 되는 것은 우리 정치를 너무 잘게 만드는 것 아닐까 한다”고 이례적으로 박 의원을 두둔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불과 두 달 전에는 문 대통령이 특별히 요청한 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와 관련해 “정책의총을 열어야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괜한 딴죽 걸기를 한다는 핀잔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무위에서 재벌 저격수로 활약해온 박 의원은 20대 국회 후반기 교육위로 상임위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원내지도부를 찾아가 잔류 의사를 피력해봤지만 돌아온 건 ‘인기 있는 상임위를 혼자만 하려 하느냐’는 핀잔뿐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환경노동위로 가라고 하길래 ‘거기서도 경제민주화를 위해 할 일이 있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과발표 1시간 전 갑자기 교육위행을 통보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왼쪽)과 조승래 교육위 간사가 2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등학교 운동권 출신, 한총련 비주류 PD계열

따지고 보면 박 의원은 유독 비주류, ‘아웃사이더의 길’에 오래 서있긴 했습니다. 박 의원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위원장의 제자로 이른바 ‘고운’(고등학교운동권) 출신입니다. 친구들이 입시 공부로 머리를 싸맬 때, 학생인권을 외치며 머리띠를 싸맸습니다. 대학시절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권 지도부의 일원이었지만, 범여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전대협 86세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소수 그룹인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 세대입니다. 한총련 내에서도 주류(민족해방ㆍNL)계열이 아닌 민중민주(PD)계열로 비주류에 속했었죠.

진보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민주당내에선 가뜩이나 ‘왼쪽’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권영길 전 의원이 국민승리21 소속으로 대선에 도전했을 때 대변인을 맡는 등 진보진영 분열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에 합류하기까지 오랜 기간 진보정당에 몸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봐도 김종인계라는 낙인이 억울할 법도 할 텐데, 박 의원은 “제 세례명이 베드로이긴 하지만, 당장 모진 욕설과 문자폭탄을 받는다고 맺었던 관계를 없었던 일처럼 뒤집을 순 없지 않냐”며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입니다. 박 의원은 “개인의 성형과 무관하게 김 전 대표가 경제민주화에서 자기만의 역할이 있지 않았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권영길 전 대표에게선 진보 아젠다(의제)를 밀고 나가는 힘을 배웠다”며 “두 분 모두 정치인이 가져야 할 ‘용기’를 일깨워준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액 후원금 봇물, 하루에 통장 6개씩 갈아치워

하지만 어쩌면 박 의원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일지도 모릅니다. 박 의원은 2016년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 줄곧 이건희 회장과 맞서며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에 매달렸습니다. 교육위로 옮긴 뒤에서는 삼성보다 무섭다는 사립유치원이라는 벌집을 건드렸습니다. 유독 ‘센 놈’에게도 굽히지 않는 용기와 근성 덕에 비주류라는 딱지에도 불구하고 당내 입지는 점차 넓어지는 모양새이기도 합니다. 23일 사학유치원 비리근절 대책을 담은 그의 법안 3개가 당론으로 제출됐습니다. 여권 지지층도 박 의원을 다시 보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응원문자와 소액 후원금이 봇물 터지듯 들어와 하루에 통장을 6개씩 갈아치울 정도라고 합니다.

박 의원은 “요즘 같아선 정말 국회의원 할 맛이 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유치원뿐만 아니라 사학비리, 연구비리까지 교육계 3대 비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런 뒤에 정무위로 당당히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맞을까요. 박 의원은 어쩌면 ‘서생의 문제 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강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박 의원 스스로는 몽골 기병들이 중국 중원을 차지한 역사를 언급하며, 민주당이 관념적 노선투쟁에만 빠지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 ‘진짜 진보’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고 경계하기도 합니다.

“변방의 몽골 기병들이 중국 본토를 차지한 뒤 말에서 내려왔다. 허벅지에 살이 찌고, 그 순간부터 왕조가 망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을 믿고 찍어준 국민을 위해서라도, 민주당도 진보도 허벅지에 살이 찌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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