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기자

등록 : 2020.05.28 07:00

[홍재민의 풋볼인사이드] 리버풀의 서른 번째 도끼질… 곧 넘어갑니다

등록 : 2020.05.28 07:00

리버풀 버질 판데이크가 지난 1월 19일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선제골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리버풀=AP 연합뉴스

1970년 발표된 ‘롱 앤드 와인딩 로드(The Lond and Winding Road)’는 리버풀 출신 밴드 비틀스의 마지막 싱글 차트 1위 곡이다. 노래에서 폴 매카트니는 닿지 않는 문으로 인도해달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비틀스는 해체됐다.

1990년 리버풀은 통산 18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우승 횟수는 7회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리버풀은 제자리, 맨유는 통산 20회 우승 클럽이 되었다. 리버풀 팬들은 잉글랜드 축구의 옥쇄가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맨체스터로 넘어가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리버풀의 ‘30년 무관’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1990년 우승 직후 리버풀은 세대교체를 감행했다. 과도기적 성적 하락이 불가피했다.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았는데 갑자기 잉글랜드 축구판이 뒤집어졌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EPL) 출범과 1995년 보스만 판결이 이어졌다. 리버풀 전성기 때와 달리 EPL 시대에서는 이길수록 돈을 벌어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맨유는 EPL 초반 5시즌 중 4차례나 우승하면서 새 시대의 주인이 되었다. ‘쩐의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리버풀은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2006년 부채 부담을 이기지 못한 리버풀의 데이비드 무어즈 회장은 미국인 기업가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에게 자신의 지분을 팔았다. 새 주인들은 유럽 축구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2010년 5월 리버풀의 부채는 3억5,000만 파운드(약 5,283억원)까지 늘었다. 팬들의 지지를 받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까지 떠나자 리버풀은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제1 채권자였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는 힉스-질레트 공동 구단주를 축출한 뒤 미국 스포츠 재벌 존 W.헨리 회장에게 리버풀을 넘겼다.

파산 직전에서 기사회생한 리버풀은 에너지를 선수단에 집중할 수 있었다. 2013~14시즌 스티븐 제라드, 루이스 수아레스, 필리페 쿠티뉴를 앞세워 리그 우승에 도전했다. 리그 3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리버풀은 승점 5점 앞선 선두였다. 하지만 첼시전에서 제라드의 치명적 실수가 빌미가 되어 0-2로 패했고, 크리스털팰리스와 3-3으로 비기면서 자력 우승 가능성이 사라졌다. 리그 최종전 승리하고도 리버풀은 승점 2점이 모자라 우승에 실패했다.

2018~19시즌 왕좌 탈환의 꿈은 재차 잔인한 결말을 맞이한다. 위르겐 클롭 감독과 함께 리버풀은 리그 38경기에서 1패만 당하면서 시즌 내내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시티와 치열하게 경쟁했다. 두 팀이 1위 자리를 32차례나 주고받는 살얼음판 경쟁이었다. 하지만 맨시티가 막판 리그 14연승의 괴력으로 승점 98점 우승을 차지했다. 리버풀은 승점 97점을 기록하고도 우승하지 못하는 ‘역대급’ 불운 앞에 분루를 삼켰다.

2019~20시즌 리버풀은 절대 1강 입지를 굳혔다. 29라운드까지 27승 1무 1패로 폭주했다. 잔여 9경기 상태에서 리버풀은 2위 맨시티(잔여 10경기)보다 승점이 25점이나 많았다. 2승만 추가하면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불가항력과 맞닥뜨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 사무국이 일정을 중단한 것이다. 한 달 뒤, 리그 측은 다시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강등권 팀들이 ‘시즌 취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을 정도로 코로나19 피해가 컸다. ‘시계 제로’ 상황에서 리버풀 팬들은 가슴을 졸였다. 천만다행 4월 말을 기점으로 사망자 그래프가 꺾이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와 EPL은 6월 중순 재개 방침을 세웠다. 5월 둘째 주 팀 훈련을 시작으로 리그 측은 6월 중순 리그를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마지막 리그 우승으로부터 30년 동안 리버풀은 ‘멀고도 험한 길’ 위에서 자빠지고 미끄러지길 반복했다. 매카트니의 바람을 들어준 사람은 없지만, 안필드에서는 클롭 감독이 멱살을 잡고 리버풀을 문 앞에 끌어다 놓았다. 이제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리그가 재개만 된다면 리버풀이 비틀스보다 희망적으로 보인다.

홍재민 전 <포포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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