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성 기자

등록 : 2020.06.08 04:30

“김홍도=풍속화가 틀 깨야 진짜 김홍도가 보인다”

등록 : 2020.06.08 04:30

‘단원 김홍도’ 펴낸 장진성 교수

18세기 동아시아 최고 화가 불구

“풍속화는 조선 낙후함 드러내”

일제가 패배 의식을 주입

‘군선도’(1776) 부분. 현재 남은 김홍도 작품 중 연대가 가장 빠른 병풍 그림이다. 32세 김홍도는 신선과 시동을 속필로 순식간에 그렸지만, 연극 장면을 연출하듯 개별 인물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풍속화첩은 김홍도를 가둔 감옥이었습니다. 둘을 분리해야 새 평가의 창이 비로소 열립니다.”

최근 ‘단원 김홍도’(사회평론아카데미)를, 구상부터 15년 만에 펴낸 장진성(54)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단원이라면 온 국민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림들이 있다. 씨름, 서당, 대장간 풍경들. ‘단원풍속화첩’에 담긴 이 그림들은 너무나 유명해 신문ㆍ방송 같은 대중매체뿐 아니라 민속주점, 한식당, 관광호텔 등에서 ‘한국의 전통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로 활용된다.

최근 '단원 김홍도'를 펴낸 장진성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장진성 교수 제공

하지만 장 교수가 보기에 ‘단원=풍속화가’라는 이 확고부동한 공식은 오히려 “김홍도에 대한 저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단원은 그런 수준을 뛰어넘었어요. 독창적일 뿐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도석화(신선ㆍ부처 등을 그린 동양화), 화조화 등 못 그리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장 교수는 단원을 “18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 화가”라 불렀다.

장 교수가 들이미는 건 단원의 병풍화다. 병풍화는 쉽지 않다. 화면이 장대해 화가가 무엇을 그릴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머릿속 구상을 화면에 옮길 때에는 구성력이나 표현력이 중요하다. 서양 유화와 달리 고쳐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장 교수는 그래서 “김홍도 이전에 병풍화는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풍속화 대신 ‘병풍화의 효시’로 단원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삼공불환도’(1801). 현존하는 김홍도의 병풍화 중 마지막 작품이다. 그가 그린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의 면모가 전부 포함됐다. 김홍도 화풍이 망라된 대표작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병풍화 중 장 교수가 꼽은 단원의 대표작은 ‘삼공불환도’다. 최대 후원자였던 정조가 1800년 6월 승하하자 김홍도는 크게 상심했다. 1년 반 정도는 붓을 놓은 것 같다는 게 장 교수의 짐작이다. 그러다 이듬해인 1801년 12월 그린 게 ‘삼공불환도’다. 중국 송나라 때 대복고의 시에서 따온 ‘삼공불환’은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삼공(三公ㆍ최고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장 교수가 이걸 대표작으로 꼽는 건 “무엇보다 김홍도 화풍이 총망라된 회심의 역작”이어서다. 그 이전 그린 산수화, 인물화, 풍속화 중 일부를 그림에 적극 활용했다. “중국적 주제인 ‘은거’를 한국적 주제인 ‘전원 생활의 즐거움’으로 완전히 재해석한 혁신적 그림”이기도 하다.

버금가는 작품으론 1776년 봄에 그린 ‘군선도’를 골랐다. ‘군선도’의 특징은 호쾌한 화풍과 극적 화면 구성이다. 장 교수는 “따로 주문받은 그림이라 도화서(화가가 소속된 조선 관청) 규칙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법을 사용해 그릴 수 있었던 첫 역작”이라고 평가했다. 두 그림을 제대로 음미해 보라는 듯, 장 교수는 ‘삼공불환도’와 ‘군선도’ 도판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책에다 접어 넣어뒀다.

‘고소번화도’(1759ㆍ부분). 중국 궁정화가 서양이 그려 청 건륭제에게 바친 도시풍속화다. 1776년 서양 퇴장 뒤 중국 화단은 공백기를 맞는다.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소장

일본 화가 오가타 코린의 대표작 ‘홍백매도병풍’(18세기 전반ㆍ우측 부분). 사실적인 매화나무와 추상적인 물결 모습이 대조적이다. 일본 MOA미술관(아타미미술관) 소장

장 교수가 단원을 18세기 후반 동아시아 최고 화가라고 추어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청나라의 경우 든든한 후원자였던 건륭제 말년부터 황실의 후원이 줄면서 화단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공교롭게도 단원이 ‘군선도’를 그린 1776년, 그즈음이었다. 조선과 청나라 화단의 행보가 엇갈린 셈이다. 일본 화단은 창의성이 부족했다. 스승에게서 배운 기법, 구도, 소재 등의 제약이 심해서다. 장 교수는 “주제의 혁신성, 창의성, 실험 정신 등에서 단원의 그림은 18세기 후반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매우 특이하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자화자찬 아닐까. “물론 ‘김홍도가 그렇게 대단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원을 풍속화가로만 한정 짓는 건 일제 시대에 주입된 패배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 광복 뒤 단원풍속화첩은 우리 고유 생활상을 드러내는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재해석됐지만, 원래 일제에게 이 화첩은 조선의 낙후함을 드러내는 소재였다. “이제 풍속화첩에서 단원을 해방시켜야 할 때”라는 장 교수의 호소는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학생 시절 2005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청나라 초기 대표 화가 왕휘의 특별전 준비를 도왔던 적이 있습니다. 왕휘 특별전 같은 전시를 열 만한 우리 화가는 누구일까요. 단연코 김홍도입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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