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준 기자

등록 : 2019.11.11 07:44

손담비 연기 동백 향기만큼 은은했다

등록 : 2019.11.11 07:44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서 주연처럼 빛난 조연으로 화제

순수하면서도 천박하게… 맹하지만 촌철살인 대사로 시선

뿌리염색 안 해 궁핍 살리고 PD와 일대일로 대사 톤 연구

‘몸치’ 였는데… 연습으로 빈틈 메운 노력파

“존재 잃은 우리에 대한 연민” ‘열외자’ 향미에 시청자 열광

가수 겸 배우 손담비는 지난 7월 진행된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제작발표회에 나오지 않았다. 공효진, 강하늘, 김지석만 참석했다. 극을 이끄는 주요 배우들만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9월 방송이 전파를 탄 뒤 손담비는 주연처럼 주목 받고 있다. 독특한 향미 역으로 울림을 준 결과다. 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운’ 이름(최고운)의 소녀는 곰팡이 취급을 받았다. 특히 학부모들이 음습한 곳에서 자란 세균처럼 소녀를 “뵈기 싫어” 했다. 그는 술집 ‘물망초’ 마담의 딸이었다. 가족들에게까지 버려진 채 세상에서 쥔 게 하나도 없어서였을까. 어른이 된 그에게는 도벽이 생겼다. 각설탕부터 라이터까지. 잡동사니라도 차곡차곡 쌓아 텅 빈 삶을 꽉 채우려는 몸부림에 그는 더 손가락질을 받았다. KBS2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술집 까멜리아에서 가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향미 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손담비의 모습이다.

KBS2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 역을 맡은 손담비. 팬 엔터테인먼트 제공

◇“향미와 닮은 손담비” 시너지

“그런데 사람들은요. 맨날 나보고 가던 길 가래요. 다들 난 열외라고 생각하나 봐.” 극중 향미는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홍자영(엄혜란)에게 이같이 말하며 “사람 자꾸 비뚤어지고 싶게”라면서 한숨을 쉰다. 반짝이는 쇼트 원피스를 입고 “미쳤어”를 되뇌며 무대에서 기품 있게 빛나는 보석 같았던 손담비는 없다. 그는 열외자의 그늘을 드라마에서 짙게 드리운다. 순수하면서도 때론 천박하고 맹한 듯하면서도 예측하지 못한 촌철살인, 배우로 기대받지 못한 손담비가 보여 준 반전이었다.

현실 속 손담비도 향미와 닮았다. 드라마 제작진과 손담비의 지인들의 말이다. “손담비는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순수한 구석이”(‘미쳤어’ 작곡가 용감한형제)있고, “사기를 당해”(손담비 절친 슈퍼주니어 김희철) 향미처럼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이건준 총괄 프로듀서는 “손담비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아닌 살짝 빈 틈이 있는 날것의 연기가 세상과 늘 어색한 향미와 만나 묘한 시너지를 냈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손담비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어?’(gld*****, JT****, ditto*****)’ 같은 글이 적잖이 올라온다.

가수 손담비는 데뷔 후 ‘여자 비’로 불렸다. 관능적이면서도 힘 있게 무대에서 춤을 춰서다. 하지만 그는 데뷔 전 ‘몸치’였다. 연합뉴스

◇갈비뼈에 금 갔는데도… ‘악바리’ 손담비

주연처럼 빛난 조연의 비결은 치밀한 캐릭터 분석이었다. 드라마에서 손담비는 갈색으로 머리카락 염색을 했는데 정수리 부분이 까매 머리 스타일이 지저분해 보인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머리카락 염색을 한 사람이라면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자라난 머리카락을 따로 염색해 기존 머리와 색을 맞추기 마련인데 손담비는 반대였다. 지난 6월 말 드라마 첫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 머리카락 뿌리 염색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향미가 할머니 병원비를 대고 해외에 있는 동생 뒷바라지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캐릭터인 만큼, 그 궁핍함을 스타일로 보여주기 위해 직접 한 선택”(손담비 소속사 키이스트 김선희 실장)이었다. 손톱의 매니큐어는 벗겨진 것처럼 칠했고, 촌스러운 옷을 구해 입었다. 향미가 일하는 주점이 충남의 한적한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손담비는 차영훈 PD와 촬영장에서 수차례 따로 만나 향미의 헛헛한 대사 톤을 상의하고 입에 익히기도 했다.

손담비는 가수 시절 이미 ‘연습벌레’로 유명했다. 격정적인 댄스로 대중에 각인됐지만 그건 훈련이 만든 결과였다. 데뷔 전 그는 ‘몸치’였다. 발톱 두 개가 부서지고,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춤에 매달렸다. 그러니 무대에서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2010년 노래 ‘퀸’을 선보인 뒤 가창력 논란에 휩싸였을 땐 신인처럼 다시 보컬 교습을 받았다. 당시 그는 ‘미쳤어’(2008)와 ‘토요일 밤에’(2009)로 스타 반열에 오른 상황이었다. 노래와 연기의 빈틈을 연습으로 극복해 온 전형적인 노력파의 궤적이다. 2009년 드라마 ‘드림’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뒤 손담비가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기의 꽃을 피우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강하늘(왼쪽 부터)과 손담비, 공효진, 오정세가 촬영 중 짬을 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향미 역을 맡은 손담비는 최근 촬영을 마쳤다. 손담비 사회관계망서비스

‘동백꽃 필 무렵’엔 손담비의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동백 역을 맡은 공효진이 손담비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버팀목이 됐다. “손담비는 공효진, 정려원, 소이 등과 절친한 동료로 (JTBC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019)를 함께 보는 등 평소 격의 없이 교류하며”(손담비 지인 A씨) 문화적 자극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 자연스러움이 극에도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극에서 향미는 늘 존경받고 싶어하는 노규태(오정세)와 유명한 야구 선수 부인으로 살며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 제시카(지이수)의 ‘지질한’ 욕망을 통렬하게 들춘다. 드라마는 향미를 통해 성별을 넘어 존재의 불안에 시름하는 이 시대의 염증을 보여 준다. “향미에 대한 공감은 시청자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공희정 드라마평론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극중 인물들이 향미에게 쏟아붓는 혐오는 ‘술집’ ‘여성’에 대한 TV밖 세상의 차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열외자 향미에게 시청자들이 그토록 애달파한 이유다.

손담비는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2014)에서 철부지 며느리로, ‘미세스 캅2’(2016)에서 강력계 형사 역을 맡아 변화를 줬지만 늘 2%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손담비가 향미를 만나, 연기를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배우로 향을 내기 시작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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