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8.10.13 17:33
수정 : 2018.10.13 17:34

‘블랙도그 신드롬’ 깨고 싶어요… 비닐하우스에 살던 검둥이

등록 : 2018.10.13 17:33
수정 : 2018.10.13 17:34

[가족이 되어주세요] 186. 한 살 혼종견 검둥이

처음에는 사람이 손을 대면 입질을 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돌진해 애교를 부린다. 책공장 더불어 제공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7월. 경기도의 한 비닐하우스를 지나던 시민은 지나가던 중 우연히 열린 문 틈 사이로 검은 개가 눈이 풀린 상태로 개구호흡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시민은 개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는데요. 개는 가득 쌓인 쓰레기 옆 몸도 제대로 둘리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오물이 가득한 축축한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더욱 안쓰러웠던 건 네 발로 선 어정쩡한 상태로 피를 흘리며 소변을 보는 것을 확인한 겁니다. 소변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앉거나 발을 들 공간 조차 없었기 때문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시민은 개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주인인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파지도 팔고 농작물도 재배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쓰레기를 모아서 비닐하우스 안과 밖에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쓰레기가 가득한 비닐 하우스에서 문을 잠근 채 개를 줄에 묶어 키우고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개가 덩치가 커질까봐 사료도 하루에 한 번 조금만 주었다고 했습니다. 시민은 며칠 동안 할아버지를 설득해서 겨우 검은 개를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 짧은 줄에 묶인 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야했던 검둥이. 책공장 더불어 제공

시민은 구조한 직후 개에게 검둥이(1세ㆍ수컷)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병원으로 데려가서 검진을 했는데요 검사 결과, 다행히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방광에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발견됐습니다. 혈뇨를 봤던 거는 방광염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저분한 곳에 묶여 있으면서 소변을 참아서 생긴 것이라고 했는데요. 다행히 치료 후 혈뇨는 사라졌고, 방광염도 깨끗이 나은 상태입니다.

검둥이는 체력을 회복한 후 예방접종을 맞았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소변 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검둥이가 이제는 엉덩이를 내리고 소변을 볼 줄 알게 된데다 입원실에서는 참았다가 산책할 때만 대소변을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런 깔끔한 성격의 검둥이에게 비닐하우스가 얼마나 지내기 힘들었을까요.

검둥이는 구조된 이후 소변보는 법도 배우고 중성화 수술도 마쳤다. 책공장 더불어 제공

처음에는 사람들이 손을 대면 입질을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돌진해서 온 몸을 마구 만지게 허락(?)하는 성격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병원을 찾는 개, 고양이와도 잘 지낼 정도로 사회성도 뛰어나고요. 워낙 밝고 활발한 성격이라서 병원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책을 너무 좋아해서 산책이 끝나는 걸 제일 아쉬워한다고 해요. 현재는 잘 먹고 잘 지내서 15㎏정도로 몸무게도 늘었습니다.

구조자와 주변 지인들은 검둥이의 사연을 알리면서 입양자를 찾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3개월이 되가는데 입양 문의가 한 번도 없다고 해요. 구조자와 함께 입양처를 찾고 있는 동물전문출판사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는 “15㎏이면 충분히 실내에서 키울 수 있고 성격도 너무 완벽한데 검은 개면서 믹스견이라는 것도 입양을 꺼리는 데 작용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실제 ​검둥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구조자가 매일 검둥이 산책을 시켰는데요, 산책하는 구조자와 검둥이를 노려보거나, 다짜고짜 만지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덩치가 크고 검은 믹스견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며칠 사이에 경험했다고 합니다.

검둥이는 병원을 찾는 개, 고양이와도 잘 지낼 정도로 사회성이 뛰어나다. 책공장 더불어 제공

검둥이는 ‘대형견, 혼종견, 검정색 털’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입양을 가기 쉬운 조건은 아닙니다. 검은색 유기견 입양을 기피하는 현상인 '블랙도그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하지만 이는 낭설에 불과합니다. 퍼스트도그가 된 검은 개 ‘토리’도 이를 증명하고 있지요. 토리에게 일어난 기적이 검둥이에게도 일어나길 바래봅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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