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기자

등록 : 2019.11.19 07:18

휠체어로 BMX… 그에게 휠체어는 날개였다

등록 : 2019.11.19 07:18

‘휠체어+BMX’ WCMX 창시자 아론 포더링햄 이메일 인터뷰

“껍질을 깨고 나와 꿈을 현실로 만드세요”

WCMX 아론 포더링햄. 포더링햄 제공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ㆍX게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찔함이다. 스케이트보드 스턴트부터 암벽 등반, BMX(Bicycle Motocrossㆍ스턴트 자전거), 번지점프 등 선수들은 부상,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갖가지 묘기를 펼친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장애인 선수가 있다. 세계 최초의 WCMX(휠체어와 BMX의 합성어) 선수인 아론 포더링햄(28ㆍ미국)이다.

한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더링햄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장애를 뛰어넘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최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분명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길 머뭇거리는 어린 친구들이 한국에도 많을 텐데 그 친구들에게 ‘껍질을 깨고 나와 꿈을 현실로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며 “전세계에 스포츠로서의 WCMX를 널리 알리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라고 말했다.

포더링햄은 1991년 1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작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선천적 척추이분증(척추갈림증)을 앓았던 그는 평생 하반신을 쓸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된 그는 생모에게 버려져, 이름도 없이 자신을 입양해줄 부모를 기약 없이 기다렸다. 그를 키운 건 마침 병원을 찾았던 스티브와 케일린 포더링햄 부부였다. 이미 4명의 자녀를 입양해 기르고 있던 부부는 “누군가 이 갓난아기를 보살펴야 하는데, 그게 우리면 어때”라며 ‘아론’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부부 슬하에서 포더링햄은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휠체어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그의 어릴 적 취미는 TV로 X게임을 보는 것뿐이었다. 마음 속으로만 “나도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되새기던 그가 처음 BMX에 도전했던 건 8살 때였다. BMX 선수가 꿈이었던 형 브라이언을 구경하기 위해 동네 공원에 갔다가 “너도 한 번 해봐”라는 형의 권유에 자전거 대신 휠체어로 BMX 스턴트를 시작했다. 이후 스케이트 공원에서 살다시피 한 포더링햄은 14살 때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BMX 대회에서 일반인과 경쟁해 4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포더링햄은 각종 대회를 섭렵하며 휠체어로 BMX를 즐기는 WCMX 종목을 개척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휠체어 백 플립(Back Flip, 뒤로 한 바퀴 돌고 착지), 더블 백 플립(Double Back Flip, 뒤로 두 바퀴 돌고 착지), 프론트 플립(Front Flip, 앞으로 한 바퀴 돌고 착지)을 성공시켰다. 현재는 익스트림 스포츠 단체 ‘니트로 서커스’ 소속으로 매주 BMW 프리스타일 공연을 하며 WCMX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은 스케이트 공원에서 보낸 것 같아요. 어릴 땐 하루에 12시간 넘게 있던 적도 있었던걸요. 처음엔 저도 너무 무서워서 첫 번째 시도는 완전히 망쳤지만 2, 3번 만에 쿼터파이프를 정복하고 나서는 ‘아, 이거다’ 하면서 쾌감을 느꼈죠.”

WCMX 아론 포더링햄. 포더링햄 제공

물론 휠체어로 하프파이프, 난간 등을 오가며 곡예를 펼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보호장치를 해도 이가 가끔 부러지는 건 물론이고 뼈에 금이 가거나 골절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내가 가장 열정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이 길을 택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포더링햄의 성공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더 값졌다. 그는 “용기를 북돋아준 형과 가족들, 옆에서 곁을 지켜준 아내 찰리, 편견 없이 바라봐준 이웃들까지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더링햄은 특히 그의 WCMX용 커스텀 휠체어를 제작해준 마이크 박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유아용부터 WCMX용 휠체어까지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커스텀 휠체어를 제작하는 마이크 박스는 포더링햄과 함께 10년을 함께하며 그의 도전을 응원해줬다.

그가 본인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장면은 2016년 리우 패럴림픽 개막식 공연이었다. 수만명의 관중과 세계 각국의 장애인 선수들로 가득찬 마라카낭 경기장. 그는 17m 높이의 점프대에서 가파른 경사로를 미끄러져 내려와 멋지게 백 플립을 성공시켰다. 화려한 불꽃이 브라질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는 “TV를 보는 수백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라며 “사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는데 헬멧 때문에 티가 안 나서 다행이었죠”라고 귀띔했다.

WCMX 아론 포더링햄. 포더링햄 제공

WCMX 선수 아론 포더링햄(왼쪽)과 아내 찰리. 포더링햄 제공

불가능은 없어 보이는 그도 좌절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수십 번을 넘어져도 당신 얼굴엔 항상 미소가 가득하다는 질문에 포더링햄은 “절대 아니에요. 나도 눈물이 날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어요”라고 답했다.

“그저 작은 성공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수백 번 넘어지면서 프론트 플립을 가까스로 성공시키면, ‘이제 백 플립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죠.“

포더링햄의 다음 목표는 더블 프론트 플립(Double Front Flip)이다. 앞으로 두 바퀴 회전한 뒤 착지하는 기술이다. 전방 회전은 후방 회전에 비해 경사로를 타고 내려오는 휠체어에 가속도가 붙어 착지가 어렵고 부상 위험도가 높다. 아직 그 누구도 성공한 적 없는 고난이도 기술이다. 그는 지금도 그 2번의 회전을 위해 매일 연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그에게 ‘휠체어’란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보통 휠체어를 화가의 붓에 자주 비유해요. 화가가 붓으로 캔버스에 꿈을 펼쳐놓는 것처럼, 휠체어에 몸을 실은 순간 꿈꾸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거죠. 저에게 휠체어는 ‘자유’인 셈이에요.”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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