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

등록 : 2020.06.17 17:55

“싹 치워라”… 선 넘은 북한의 도발, 8개월 전부터 징후 있었다

등록 : 2020.06.17 17:5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열어 자립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노동신문이 8일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연합뉴스

“신의를 배신했으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4일부터 강력한 말 폭탄을 쏟아내며 남북관계 파탄을 경고했다. 남측의 대응 조치가 있었지만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선을 넘어섰다. 그러나 북한의 행동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던졌던 메시지를 정부가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분석했다.

① 김정은 “금강산 시설 싹 치워라”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23일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 현지지도에 나서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금강산 관광은 김 위원장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추진한 남북 화해ㆍ협력 상징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선임자들의 잘못된 (대남)의존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아버지 시대 추진됐던 남북 협력사업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정부는 북측 설득을 위해 △대면 실무회담 개최 △시설 점검을 위한 공동점검단 방북 등의 카드를 꺼냈지만, 북한은 ‘문서교환’ 방식 협의만 가능하다며 모두 거부했다. 오히려 올해 2월로 철거 시점만 못 박았다. 사실상 남측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의지가 없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의 태도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의 연이은 결렬에 따른 ‘대남 전략’ 변화 메시지로 해석됐다. 북미 비핵화 협상 성과가 없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근본적 의심을 품었다는 얘기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17일 “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대미, 대남 관련 대응 방향과 전략을 큰 그림 차원에서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② 창린도 사격훈련 지휘… 9ㆍ19 무력화 위협

2018년 체결된 9ㆍ19 남북 군사합의 무력화도 김 위원장이 이미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5일 서부전선 창린도 방어대를 찾아 해안포 사격 훈련을 지도했다. 창린도는 황해남도 옹진반도 남쪽의 섬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30여㎞, 서울에서 약 150㎞ 떨어져 있다. 9ㆍ19 합의(제1조 2항)에서 모든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한 구역에 해당한다. 국방부가 즉각 “9ㆍ19 합의 위반에 해당한다”고 항의했으나 북측의 답은 없었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북한이 언제든 남북 간 각종 합의를 깨고 ‘2018년 한반도의 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그러나 정부는 군사회담 재개 등 대화를 모색하거나, 9ㆍ19 합의 위반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로 경고를 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눈감아준 셈이 됐다.

16일 오후 경기 파주시 자유로 선상에서 본 북한군 초소에 인공기와 인민군사령관기가 휘날리고 있다. 파주=고영권 기자

③ 김정은, 올해만 6차례 포병부대 찾아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금강산과 개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20년 만에 개성과 금강산을 ‘평화의 상징’에서 군사 거점으로 변모시킨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김 위원장이 예고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8차례 군사현장 현지지도 중 포병부대를 6차례나 찾았다.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3월21일)을 참관한 것은 1차례에 불과했다. 미국을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전략무기’가 아니라 남측을 겨냥, 전방에 포병부대 등을 동원하기 위한 화력타격 훈련에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대남 압박 총력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순연됐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위원장이 잇따라 예고 메시지를 발신하고 지난해 12월 북미 간 갈등이 고조됐으나, 3월 한미연합훈련이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되는 바람에 북한이 고리를 걸어 긴장 수위를 끌어 올릴 ‘전략무기 공개’ 명분이 사라졌다는 해석이다. 결국 6월 들어 자신들의 의도대로 도발 공세를 전개한 것이다. 전직 고위 정부관계자는 “북한의 태도 변화는 예견된 측면이 있다”며 “대북정책 당국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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