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주 기자

등록 : 2020.02.28 04:30

‘당신은 아플 준비가 되셨습니까’ 질병과 돌봄은 삶의 일부다

등록 : 2020.02.28 04:30

인간은 서로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없다. 김효은 작가가 점토로 인간들이 서로 기대 사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봄날의책 제공

새벽 세시는 사람들에게 어떤 시간일까. 보통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게 대부분일 거다. 깨어 있다면 밀린 업무나 공부 때문일 테고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고요함을 즐길 수도 있을 거다. 어찌됐건 오늘의 일상을 마감하고, 내일의 일상을 준비하는 충전의 시간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의 들쑤심에 비명 지르며, 제발 이대로 잠이 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 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고통을 나눌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하며 눈물 흘리고 기도하는 시간일 수 있다. 이들에게 새벽 세시는 다시 찾아올 일상을 악착같이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다.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는 후자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아픈 몸’과 ‘돌보는 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리는 모두 아프고 늙으며 죽는다. 닥쳐오는 시기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 담론은 너무 빈약하고 납작하다.

환자는 정상 세계에서 이탈한 낙오자로 취급되고,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는 가족, 엄밀히 말하면 가족 내 여성의 몫으로만 남겨지는 게 대한민국에선 당연한 일이다. 이따금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간병살인’과 노인 학대 같은 끔찍한 사건에 안타까워하고 분개하는 것도 잠시뿐. 당장 내가 건강하고, 내 가족이 아프지 않으면 금세 잊고 넘어가다 보니 질병과 간병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돈다.

책은 질병과 돌봄, 노년 문제를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의제화 하는 모임인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소속 연구활동가 4명이 쓴 글을 묶은 것이다. 병명과 상태도 다르지만, 한때 그리고 지금도 ‘아픈 몸’으로 또 ‘돌보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아픔과 돌봄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세상에 건넨다.

첫 번째 챕터인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는 한국 사회의 돌봄 문화를 바꿀 근본적 상상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 노동이 위기에 처하는 건 독박 구조 탓이다. 간병을 가족 구성원, 특히 여성에게만 떠맡기는 ‘독박 돌봄’이 대표적 문제다. 연구자 전희경은 가족 내 한 두 명의 여성에게 모든 간병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돌보는 사람이나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도 ‘인권침해’라 비판한다. 독박의 구조에선 돌봄은 기꺼움보다는 고역이 되고, 희생은 학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국가 그리고 시장에만 맡기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제도와 정책, 그리고 돈만으로 완벽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건 헛된 기대다.

그래서 전희경은 가족과 국가, 시장을 넘어 돌봄의 주체로 상호 의존하는 시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 사람에게 독박을 씌울게 아니라 주변 이웃 지인 친구 등 공동체가 모두 나서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 아픈 환자는 사회의 짐이나 민폐가 아니며, 돌봄 역시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로 인정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픔은 정상이며, 취약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돌봄은 반드시 아프고 서서히 죽어가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권리가 돼야 한다. 시민이기에 돌봄에 참여해야 할 책임을 공유하고, 그 공유된 책임의 시스템을 통해 비로소 돌보고 돌봄 받을 개인의 권리가 가능해진다.”

책은 질병과 돌봄의 경험이 개인적 고통의 호소와 토로를 넘어 사회적으로 함께 공유하고 배워나가야 하는 공공의 지식이란 점도 거듭 강조한다.

연구활동가 메이는 ‘병자의 독서클럽’이란 챕터에서 병을 앓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투병기를 읽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 나갔던 경험을 전한다. 읽기를 통해 ‘나만 아픈 건 아니다’는 질병의 보편성을 깨달았고, 고통을 극복해가는 방법도 습득했다.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투병기를 읽는 건 고통의 감각을 미리 익혀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권한다.

전희경은 ‘보호자의 자리’에선 “그래도 환자가 더 힘들지”라는 비교급의 언어로 보호자에게 무한 책임과 부담을 안겨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또 보호자가 환자를 지배하려 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픔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세상은 아픔을 실패로 규정한다. 불성실하고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낙인과 함께. 특히 젊은 사람이 아프면 죄명은 더 가혹해진다. 전희경은 “젊은데 아픈 사람이 아니라 그냥 젊고 아픈 사람”이라며 “아픈 몸이 불현듯 찾아오듯 건강한 몸 역시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상황일 뿐”이라 말한다. 건강도 한 때이듯, 질병도 삶의 한 부분이란 얘기다.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ㆍ김영옥 메이 이지은 전희경 지음

봄날의 책 발행ㆍ304쪽ㆍ1만5,000원

저자들은 외친다. 아프고 늙고 의존하는 몸으로 그냥 사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의미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닥쳐올 아픔과 의존, 돌봄의 경험을 미리 미리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도, 내 가족이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 아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의 시작이라고 책은 말해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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