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 기자

등록 : 2017.04.25 04:40

시급 3,880원... 불이익 당할까 불평도 못해

외주제작사는 제작비 줄어들어... 노동착취 고착화

등록 : 2017.04.25 04:40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한 장면. tvN 방송화면 캡처

지상파 방송 한 예능프로그램의 막내 작가 A씨는 하는 일이 많다고 하나 대우는 초라하다. 프로그램 한 회당으로 계약해 주당 30만원을 받는다. 임금은 쥐꼬리고, 신분은 불안정하다. 아니나다를까. 5개월째 일했는데 갑자기 작가진이 바뀌기로 해 백수신세가 될 처지에 놓였다. “완벽하게 쉬는 날은 없다”는 A씨는 주말에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고 싶어도 “자료 좀 찾아볼래?”라는 선배 작가의 전화를 받으면 근처 PC방으로 달려가기 일쑤다. 프리랜서라는 호칭이 번지르르 할뿐 실상은 초과근무나 휴일 근무에 따른 수당을 받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다. 시급으로 평균 3,880원을 받으니 최저임금 6,470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힘들어도 입 밖에 꺼낼 수 없다.

A씨는 이한빛 PD 자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방송작가노동조합이 내달 출범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힘들다고 얘기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적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독립PD들의 삶도 위태롭기만 하다. 영세한 독립제작사 PD나 소속사가 없는 독립PD들은 방송사가 제작비를 점점 줄이면서 피해를 떠안고 있다. 24일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제작PD의 근무조건은 이들의 암담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근무시간과 급여가 공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현실은 10시간 이상’ ‘탄력적’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5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 독립PD로 복귀한 B씨(32)는 “이전과 근무환경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말이 탄력적이지 결국은 24시간 근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독립제작사협회와 독립PD협회가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해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독립PD도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게 했다. 저작권법에 따라 제작스태프 권리 보호와 방송사, 제작사의 영상저작물 이용 권리가 보장됐고, 독립PD의 4대 보험가입도 의무화 했다. 그러나 B씨는 “일부만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세한 제작사와 일할 때는 적용되지 않는 꿈 같은 조항이라는 것이다. 제작비도 감축되는 판에 독립PD를 위해 보험가입이나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 등을 요구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한 영세 독립제작사 대표는 “방송사 한 프로그램 제작에 20개 이상의 독립제작사가 몰리기 때문에 제작비를 후려쳐서라도 계약을 따내려는 경쟁이 치열한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방송작가나 독립PD들의 표준계약서 인식도 낮았다. 존재를 ‘몰랐다’는 의견이 90%에 달한다. 각 방송사는 외주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때 문체부가 주도한 표준계약서가 아닌 방송사가 유리하게 만든 표준계약서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방송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사가 할 수 없는 일이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방송평가 규정에 넣어 재승인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도록 행정지도를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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