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찬유 기자

등록 : 2020.01.22 23:00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호랑이도 사람이 무섭다” 인간과 동물 충돌 잦아

등록 : 2020.01.22 23:00

<20> 수마트라코끼리 목에 GPS 달기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야생에 400마리 미만이 사는 것으로 추산되는 수마트라호랑이. 사람들이 호랑이 서식지로 밀고 들어오면서 양측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부킷바리산슬라탄국립공원 제공

언뜻 인형인 줄 알았다. 밀림과 맞닿은 밭에 주저앉은 물체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총 쏘는 소리와 총탄의 궤적이 선명했지만 물체를 둘러싼 호랑이 세 마리는 뒷걸음치는 시늉만 했다. 어슬렁거리던 호랑이 한 마리가 순식간에 물체의 목덜미를 물고 흔들자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그제서야 그 물체의 정체가 사람임을 직감했다. 한탄과 총탄 소음이 뒤섞이면서 영상은 끝났다. 두어 번 더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수마트라섬 부킷바리산슬라탄국립공원의 존 케네디(59) 관리소장이 지난달 말 기자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최근 국립공원 인근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이 중 한 마리는 이달 21일 생포됐다. 그는 “세 개 주(州)를 아우르는 공원에 사는 수마트라호랑이는 30마리 정도”라며 “호랑이 서식지에 커피농장이 생기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인간이 동물의 터전을 침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라는 취지였다.

수마트라코끼리가 몇 달 전 출현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의 부킷바리산슬라탄국립공원 주변 마을 풍경. 람풍=고찬유 특파원

야생동물이 사람을 죽인 사건은 인도네시아 뉴스에 이따금씩 나온다. 밀렵, 보복 독살 등 인간에 의한 동물의 죽음도 소개된다. 애꿎게도 대부분은 수마트라호랑이, 수마트라코끼리 등 멸종위기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선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먼 나라 얘기로 소비되지만, 동물의 왕국 인도네시아에선 ‘인간과 동물의 충돌’이라는 연구 대상으로 다뤄진다.

수마트라코끼리 보호구역 위치. 그래픽=송정근 기자

예컨대 우리에게 생소한 코끼리와 인간의 충돌의 경우 현지 논문에 따르면 수마트라 아체 지역에서만 매년 20~40건 이상 발생한다. 31번 충돌한 2014년엔 사람이 코끼리를 죽인 사건, 코끼리가 사람을 죽인 사건이 각 10건으로 같다. 수마트라호랑이는 아무래도 살인 사건이 부각된다. 작년 11~12월 수마트라 남부에서 발생한 호랑이와 인간의 충돌은 15건, 사람만 7명이 죽거나 다쳤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람풍주 와이캄바스국립공원의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에서 보호하고 있는 코끼리 무리. 현재 42마리가 있다. 와이캄바스국립공원=고찬유 특파원

그러나 수마트라호랑이가 처한 상황은 약자에 가깝다. 2008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 동물로, 삼림 벌채 및 서식지 침범,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현재 400마리 미만이 야생에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형제뻘인 자바섬의 자바호랑이는 같은 이유로 1970년대에 멸종됐다.

세계자연기금(WWF) 관계자는 “호랑이의 행동을 먹이 사냥용 ‘공격’이 아닌 인간이란 위협에 대한 ‘방어’ 기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동물 기사에서 읽어야 하는 건 끔찍한 사건 자체가 아니라 서글픈 이면이다.

수마트라 람풍=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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