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등록 : 2020.06.16 04:30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4차 산업혁명시대… 대학, 진리 탐구ㆍ인재 양성 ‘공존의 묘수’ 찾아야

등록 : 2020.06.16 04:30

<26> 대학

학령인구 감소와 제4차 산업혁명은 국내 대학들에게 도전적 과제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가 교육부의 ‘2021년 대학 기본 역량 진단 시안 설명회’ 행사장에서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대학노조 제공

대학은 시장ㆍ민주주의와 함께 인류의 가장 놀라운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오래전 카네기재단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1530년부터 420년 동안 계속 운영된 66개 기관들 가운데 로마 카톨릭 교단, 루터 교단, 아이슬란드 의회, 맨섬 의회를 제외한 나머지 62개 기관들은 모두 대학이었다. 배움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구현된 경이로운 발명품인 대학의 선 자리와 갈 길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대학의 기원과 발전

서구사회에서 대학은 12세기 중세에 탄생했다. 역사학자 이광주의 ‘대학사’에 따르면, 대학을 뜻하는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본래 조합이나 길드의 공동체를 의미했다. 학도들의 공동체는 ‘스투디움(studium)’이나 ‘스투디움 게네랄레(studium generale)’로 불렸다. 15세기에 이르러 스투디움, 스투디움 게네랄레, 우니베르시타스는 교수와 학생의 학문적 공동체를 함의하는 오늘날 대학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의 역사에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가장 오래된 대학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1158년 대학의 특권을 인가하는 특허장을 볼로냐에 수여했다. 이후 파리대학, 옥스퍼드대학, 캠브리지대학 등이 뒤이어 설립됐다. 독일 지역은 대학의 출범이 다소 늦었다. 1386년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설립됐다.

대학의 두 원형을 이룬 것은 볼로냐와 파리였다. 볼로냐가 학생 길드가 중심이 되어 로마법 연구에 주력했다면, 파리는 교수 길드가 중심이 되어 신학 연구로 이름을 떨쳤다. 대다수 중세 대학들은 이 두 대학의 제도와 관습을 따랐고, 이 두 대학의 졸업생들을 교수로 초빙했다. 볼로냐와 파리는 중세 대학의 자랑스러운 모교(母校)였다.

서구사회가 근대로 변화되면서 중세 대학은 쇠퇴하게 됐다. 새로운 사회변동에 걸맞은 대학의 전범을 제시한 것은 독일 베를린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이었다.

먼저 근대 대학의 대표적 모델을 이룬 것은 베를린대학이었다. 베를린은 1810년 언어학자이자 교육부장관이었던 빌헬름 훔볼트가 주도해 설립했다. 이광주가 ‘대학사’에서 강조하듯, 훔볼트와 그의 동료들은 인문주의적 교양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학문의 자유를 부각시켜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베를린은 프로이센이란 국가에 의해 주도된 대학이었고, 그만큼 근대 국민국가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역사학자 이광주의 ‘대학사’에 따르면 서구의 대학은 12세기 중세에 탄생했다. 알라딘 제공

한편 근대 대학의 혁신을 이끈 것은 미국 대학들이었다. 공학자 허준의 ‘대학의 과거와 미래’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발전에서 특기할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862년 제정된 ‘모릴 법안’이었다. 모릴 법안은 미국의 모든 주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공립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법적ㆍ재정적 지반을 제공했다. 이 법안을 바탕으로 한 대학 혁신은 당시 산업화에 요구되는 전문 인력 양성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 하나는 하버드대학의 발전이었다. 하버드는 19세기 중반까지 영국 대학들을 모방했고, 고전 교양 교육에 주력했다. 하버드가 크게 성장한 데에는 1869년부터 40년 동안 총장을 맡았던 찰스 엘리엇의 기여가 컸다. 그는 교양교육, 직업교육, 연구 개발을 효과적으로 통합시키는 대학 모델을 추구했다. ‘통합형 모델’이라 불린 이러한 대학 개혁은 지난 20세기 미국 대학의 부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0년대와 대학의 미래

미국 대학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중요했다. 나치즘을 피해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유럽 석학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게 그 하나였다면, 전후 미국의 압도적 경제력이 미국 대학의 재정을 풍부히 한 게 다른 하나였다. 오늘날 대학을 생각하면 많은 이들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미국 대학을 먼저 떠올린다.

미국 대학이라고 해서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는 학생과 함께 대학의 주인이다. 그런데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들은, 놈 촘스키 등의 ‘냉전과 대학’에서 볼 수 있듯, 그 다수가 냉전 시대의 국가 권력에 침묵했다. 또,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등록금이 크게 올라 학생들의 재정 부담이 높아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21세기에 들어와 대학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됐다.

2020년대를 열어가는 현재, 대학이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한 전망은 다양하다. 앞서 말한 통합형 모델은 적절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교양교육, 직업교육, 연구 개발은 대학이 갖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목표다. 이런 통합 모델을 계속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하나를 특화할 것인지는 매우 중대한 문제다. 개인적인 체험을 돌아보면, 사회과학의 경우 미국 대학은 실용적 경향이 강조되는 반면, 독일 대학은 이상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근대 대학의 혁신을 선도한 건 미국의 대학들이었다. 특히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교양ㆍ직업 교육 및 연구 개발 통합형 모델을 구축한 하버드대가 선두에 섰다. 미 메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캠퍼스. 하버드대 제공

2020년대에 대학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세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 번째는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다. 허준이 지적하듯,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은 연구 개발 기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하여, 교양교육과 직업교육에 대한 변화도 도모해야 한다. 최근 올린공대와 미네르바스쿨 등은 문제 해결 학습능력을 부각시켜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재 대학이 안고 있는 중대한 과제의 하나다.

두 번째는 대학의 경쟁력에 관한 것이다. 그 동안 세계화는 국가 간 경쟁을 증대시켰고, 대학 또한 대학평가 등 경쟁력 제고를 위한 압력을 받았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대학의 책무성을 강조했고, 일본과 중국은 대학의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일각에선 과도한 대학평가가 진리 탐구와 학문의 자율성을 훼손시킨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대학 역시 사회 안에 놓인 조직이라는 점에서 학문의 경쟁력 제고는 앞으로 더욱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온라인 학습의 도입에 따른 변화다. 여기에는 무크(MOOC)가 적절한 사례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더불어 21세기에 들어와 코세라, 유다시티 등 무크 플랫폼이 크게 주목 받았다. 무크는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를 열고, 하버드, 스탠퍼드 등과 협업했다. 지난 몇 년 간 무크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올해 코로나19 팬데믹과 마주해 다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언택트사회의 도래에서 교육 방식의 변화는 대학이 직면한 또 하나의 중대한 과제다.

오늘날 분명해 보이는 사실은 대학이 산업과 점점 가까워져 왔다는 점이다. 교육이 최선의 경제정책이라는 전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의 말은 여전히 새겨들을 만하다. 진리라는 교육적 가치와 혁신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와 대학의 미래

광복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통계는 대학진학률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은 1980년대에 30% 내외였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한때 80%를 유지했고, 2010년대에 70% 내외로 줄어들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학진학률이 41%인 것과 비교할 때, 이러한 통계는 대학 교육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 미국 유수 대학과의 협업으로 이목을 끌었던 대규모 온라인 공개 강좌 ‘무크’(MOOC)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학령인구의 감소가 강제하는 대학의 구조조정이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 정부의 의지, 대학공동체의 대응 등의 여러 변수들을 두루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위한 지혜로우면서도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더하여, 앞선 살펴본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 학문의 경쟁력 제고, 온라인 학습의 강화도 대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학의 정체성이다. 대학은 왜 존재하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한편에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교양을 교육하며 직업을 준비하는 학교라는 전통적인 대학관이 존재한다면, 다른 한편에는 사회변동에 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실용적인 대학관이 존재한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내가 생각하기에 21세기 오늘날 우리 대학은 이 두 정체성을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에서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 의학까지 포괄한 대학에서 하나의 가치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할 수 없다. 대학은 본디 다양성의 공간이다. 이 다양성을 21세기에 걸맞게 공존시키고 혁신하는 것이 우리 대학에 부여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시대정신’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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