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성 기자

등록 : 2020.06.12 04:30

인류는 약해서 살아남았다? 협력은 분열 속에서도 가능?

등록 : 2020.06.12 04:30

통념을 뒤집는 책 2권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 뼈를 무기로 휘두르는 원인이 인류의 조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류의 동종 개체 살해 비율이 급격하게 올라간 시점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다. 진화 초기부터 인류가 동료와의 싸움에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가설은 오류로 판명됐다. 부키 제공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초기 인류는 25종이 넘었다. 우리와 다른 종이어도 인류들이다. 하지만 전부 사라지고, 생존한 인류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뿐이다. 승자가 독식한다. 지금 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걸 지배한다.

말끔하게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결과다. ‘절멸의 인류사’의 부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다. 분자고생물학자인 저자는 인정한다. 지금으로부터 700만년 전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은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현재 유일한 인류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에 저자는 전복을 시도한다.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단단하고 컸다. 뇌까지 컸으니 더 똑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랜 서식지인 유럽에 호모 사피엔스가 건너오자 멸종을 피하지 못했다. 맨손으로 싸웠다면 네안데르탈인이 이겼으리라는 게 저자 생각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입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힘은 약했지만 행동 범위가 넓은 데다 사냥 기술이 뛰어났고, 더 많은 자식을 낳았다. 시간은 그들 편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사냥감이 부족했고 분산되며 고립됐다. 기술 발전도 정체했다.

진보를 추동하는 건 결핍이다. 유약한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여러모로 궁리를 해야 했다. 침팬지류와 갈라질 때 인류 계통에 처음 나타난 진화는 직립 이족 보행과 송곳니 크기의 축소였다. 일어서면 불리한 게 많다. 일단 발이 두 개뿐이라 느리다. 센 놈 눈에 띄면 그냥 죽었다고 봐야 한다. 서 있으니 잘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굳이 다리 절반을 포기한 건 ‘손’ 때문이다. ‘수컷이 암컷과 새끼에게 줄 음식물을 손으로 운반하려 직립해 두 발로 걷게 됐다.’ 유력한 ‘음식물 운반’ 가설이다. 게다가 발이 두 개면 빨리는 뛰지 못해도 오랫동안 걸을 수는 있다. 멀리까지 이동 가능하다는 건 큰 혜택이었다. 경쟁 상대보다 식량을 먼저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위와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체모를 버린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장거리 이동에는 체온 상승이 동반하는데, 무상한 털은 땀의 증발을 방해한다.

송곳니가 작아진 까닭은 약간 다르다. 거추장스러워서가 아니다. 사회성과 관계가 있다. 사용할 일이 없어져서다. “인류가 서로 위협하거나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인류는 일부일처 문화를 정착시켜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싸울 일을 만들지 않았다. 일부일처는 짝 만들기에도 유리하지만, 자식이 제 아이라는 확신을 준다. 진화 목적은 생존ㆍ번식이다. 평화가 무기 대신 선택된 셈이다.

“이렇게 인류 진화 관련 최신 이론을 친절하게 소개하면서 복잡한 과정까지 명확히 설명한 책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의 추천사다.

절멸의 인류사

시라시나 이사오 지음ㆍ이경덕 옮김

부키 발행ㆍ272쪽ㆍ1만4,800원

지금 인류는 난처하다. 인류의 개체 수가 증가함에 따라 지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졌고, 그만큼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의 양이 줄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스스로 생존을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협력했기 때문이다. 협력은 단순 덧셈이 아니다. 1에 1을 더하면 2보다 크다. 그게 협력이다.

공존을 위한 해법이 이런 협력을 통해 나와야 하지만 위기는 분열을 낳는다. 혁신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관성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 절실한 상황에서 협력은 외려 요원해진다. ‘세상을 바꾸는 분열의 힘’이 부제인 ‘협력의 역설’은 협력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집는다. “중대한 난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동료와 친구뿐만 아니라 적과도 함께 일해야 하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라는 게 저자의 소개다.

수백명의 타인이 모인 서울역 대합실에 겁 없이 들어서는 사회성 동물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다. 서울역 대합실에 열차표를 구매하려는 귀성객들이 앉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사진. 뉴시스

저자는 복잡하고 논쟁적인 상황에서는 전통적 형태의 협력이 쓸모없다고 지적한다. 그가 제안하는 건 전통적인 수렴형 협력이 아니라 발산형 협력이다. ‘스트레치(뻗기) 협력’이라 명명했다. 하나의 지배적인 전체, 하나의 가능성, 한 명의 리더에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부분적 전체(이해관계가 전체와 부분 간에 다르고 부분별로도 다른 탓에 갈등이 불가피하다), 다수의 창발(실험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진전ㆍ창조)적 가능성, 다수의 공동 창조자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 과제 진행 방식, 상황에 참여하는 방식, 다 바꿔야 타협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협력에 성공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건 일사불란과 로드맵, 남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다. 필요한 건, 다양성ㆍ임기응변의 수용과 나를 바꾸겠다는 의지다. 여러 개 팀이 각자의 뗏목으로 강을 건너는 게 스트레치 협력이라고 저자는 비유한다. 협력은 분열 속에서도 가능하고, 합의는 협력의 전제가 아니라 결과라는 게 저자 통찰이다. 갈등이 파국이 되지 않게 막아주는 것도, 협력 경험의 유용성이다.

협력의 역설

애덤 카헤인 지음ㆍ정지현 옮김

메디치미디어 발행ㆍ192쪽ㆍ1만3,000원

캐나다 출신 갈등 해결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은 놀랍다. 25년간 인종 갈등 해소와 내전 종결, 마약 퇴치 등이 목표인 프로젝트를 위해 공무원, 게릴라, 군인, 성직자, 노동자 등 이질적 부류가 참여한 팀의 협력을 중재했다.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극단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폐기하고 민주주의 사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전환의 단초가 된 ‘몽플뢰르시나리오’ 프로젝트가 대표적 성과물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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