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기자

등록 : 2020.06.02 16:58

간송미술관은 왜 ‘한국판 구겐하임’이 되지 못했나

등록 : 2020.06.02 16:58

‘지원 받으면 간섭 따른다’ 원칙… 3대째 폐쇄적 운영으로 재정난

“일찌감치 외부와 소통했다면 뉴욕 구겐하임 못지 않았을 것”

지난달 27일 서울 논현동 케이옥션에서 진행된 5월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의 불상 2점. 각각 시작가 15억원이었으나 모두 유찰됐다. 연합뉴스

지난달 간송미술관이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보유 문화재만도 5,000점이 넘는다”는 소릴 들어왔던, 전통문화의 보루임을 자임해왔던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이유로 ‘설립 82년 만에 처음’으로 소장품을 경매에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미술계에선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란 평가다.이제 해결법을 터놓고 논의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1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전시를 했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열악한 전시관람 환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전시를 보려는 인파로 붐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년에 전시 2번, 외부지원 ‘0’원…간송의 폐쇄성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이번 경매를 두고 “2013년 재단 설립 후 대중적인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하여 재정적인 압박이 커졌다”며 “2년 전 전성우 전 이사장이 소천한 후 추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해 결국 소장품 매각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단 설립 이전부터 재정난이 누적됐다고 본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일제강점기 때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온 재산을 쏟아 부어 전통 서화와 도자기 등을 사들여 보화각(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을 세운 것이 1938년이다. 이후 재단이 설립된 2013년까지 75년간 미술관은 외부 지원을 마다해 왔다. ‘지원을 받으면 간섭이 따른다’는 간송가(家)의 원칙을 내세웠다. 미술관 소장품은 모두 후손들 개인 소유다.

한 사립미술관 관계자는 “국내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히는 삼성미술관(리움)이나 호림박물관은 기업의 재정적 후원을 받기 때문에 운영에 큰 무리가 없지만, 간송미술관은 그렇지 못하다”며 “소장품은 훌륭해도 외부 지원 없이 소장품만으로 미술관을 운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간송미술관의 지나친 폐쇄성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재단 설립 이전 간송미술관은 1년에 딱 2번만 소장품을 무료 전시했다. 보안 등의 이유로 수장고는 개방하지 않았다. 소장품 목록이나 내용을 담은 도록을 내는 작업, 연구를 목적으로 한 학계와의 교류 등에도 소극적이었다.

한 사립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문화재는 사유재이지만 동시에 공공재”라며 “외부와 소통, 정부와 협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문화재 ‘소장’에만 공을 들인 게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간송미술관이 문화재 수집, 연구, 전시 등의 문제를 일찌감치 공개적으로 논의해 왔다면 ‘한국판 구겐하임’도 문제 없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은 철강업계의 거물이었던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이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기반으로 1937년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구겐하임 일가가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1938년 간송 전형필이 세운 서울 성북동 보화각 전경. 문화재청 제공

간송미술관도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 변화에 나섰다. 삼성문화재단(1965년 설립)의 리움미술관, 성보문화재단(1981년 설립)의 호림박물관에 비하면 뒤늦은 변화였지만, 재단 설립 뒤 후원회도 만들었다. 지난해 기업과 개인 후원자들로부터 6억원 가량의 후원금을 받아 미술관 운영비로 썼다. 후손들 개인 명의의 소장품 90% 이상을 재단에 귀속했다. 서울시와 협업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5년간 대형 유료 전시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미술관으로 공식 등록, ‘문화재보호법’ 등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47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장고 신축 등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3ㆍ1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 전시장에서 간송의 손자 전인건(왼쪽) 간송미술관장이 김정숙 여사에게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공공성 확보하고, 정부 제도적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당분간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을 해소하긴 어렵다는 전망이다. 당장 이번에 경매에 나온 불상 2점이 모두 유찰됐다. 여론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정부기관이 나서길 바라지만, 전문가들은 예산과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부정적이다.

설혹 경매 등을 통해 불상을 비롯, 다른 소장품들이 다른 주인을 찾아간다 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한 미술평론가는 “지금 당장은 2대에 걸친 상속문제지만, 이 문제는 대를 이어갈수록 계속될 수밖에 없다”라며 “미술관 소장품을 팔아 그때 그때 세금과 운영비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간송미술관의 미래’를 툭 터놓고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간송미술관 같은 미술관을 어느 날 갑자기 국가가 뚝딱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사회적으로 검증된 미술관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이나 세제혜택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간송미술관만 유독 특혜를 받아선 안 된다는 비판론도 강하다. 동양미술을 전공한 한 사립대 교수는 “지금처럼 정부를 상대로 경매로 압박하는 방식은 간송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며 “소장품의 향방에 대해 정부와 미리 논의를 하거나 장기 플랜을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절충안도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무조건 사는 게 아니라 프랑스처럼 ‘문화재매입위원회’를 구성, 충분히 검토한 후에 매입 여부를 결정토록 하고, 위탁관리를 맡기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간송의 공은 공대로 인정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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