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창
특파원

등록 : 2020.06.13 07:00

트럼프에 잇따라 반기 든 美국방 '투톱'

등록 : 2020.06.13 07:00

에스퍼 국방 이어 밀리 합참의장 “트럼프 사진촬영 동행 실수” 사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 AP 연합뉴스

미국 국방 수뇌부가 잇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잦은 말실수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군이 사실상 ‘집단 항명’ 파동을 일으키고, 공화당 일각도 등을 돌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군의 충돌을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은 인종차별 시위 대응 과정이다.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하겠다는 트럼프의 경고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 1차 항명을 한 데 이어, 11일(현지시간)엔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고개를 숙였다. 거센 질타를 받고 있는 트럼프의 ‘사진찍기용 교회방문 이벤트’에 동행한 데 대해 공개 사과한 것이다. 밀리 의장은 이날 국방대 화상 졸업식 영상 메시지에서 “나는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은 군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앞서 1일 트럼프가 대국민 연설 후 백악관 주변 시위대를 최루탄 등으로 해산시키고 세인트존스 교회를 방문하는 행사에 밀리 의장이 배석하자 전직 장성들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는 달리 보면, 트럼프가 군을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는 함의가 깔린 것이어서 사실상 ‘군 통수권자’를 향한 저격에 가깝다. 주(州)방위군을 점검하는 줄 알고 동행했던 밀리 의장은 이후 대통령에게 “당시 일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했고, 군 동원을 문제를 두고서도 격한 말을 주고 받았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NYT는 “최근 대통령과 국방부의 갈등은 베트남전 이후 군과 민간 사이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분열”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트럼프와 충돌했던 에스퍼 장관은 이날도 주방위군이 인종차별 시위에 적절히 대응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라고 지시해 대규모 방위군 투입으로 전면 진압을 강조한 대통령에게 재차 선을 그었다.

해외주둔 병력 철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취임 후 군과 마찰을 빚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방부의 공개적인 반기는 ‘정치 중립성’을 지키는 군의 오랜 전통을 대통령이 무너뜨리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밀리 의장은 “우리는 공화국 본질에 뿌리 박힌 비정치적인 군의 원칙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면서 트럼프를 겨냥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최근 “대통령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작심 비판에 나선 것도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병풍으로 세운 사진찍기 이벤트에 경악했기 때문이라고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아울러 인종차별 반대 시위 자체도 군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1990년 25%였던 미군 내 유색인종 비중은 43%로 크게 늘어 인종 갈등이 군까지 파고들 경우 전투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리 의장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한 뒤 “흑인을 향한 수백년 동안의 불평등을 말해줬다”며 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는 흑인 군 장성 비율이 7%에 그치는 점 등을 들어 군 지도자들에게 평등향상 방안을 검토할 것도 요구했다. 앞서 국방부는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군 장군의 이름을 딴 기지 명칭 변경에도 열린 입장을 내놔 트럼프에 맞섰다.

트럼프는 이 같은 국방 수뇌부의 반기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장관은 즉각 경질을 검토했으나 참모들이 만류했다고 한다. 그의 성향상 이들을 전부 물갈이 할 수도 있지만 대선이 코 앞이라 국방부와 전면전을 벌일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NYT는 전망했다.

기지 명칭 변경 문제를 두고서는 공화당 상원의원 일부도 반(反) 트럼프 입장으로 돌아섰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이날 기지 명칭을 3년 내에 변경토록 요청하는 내용을 국방수권법에 포함해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명칭 변경에 즉시 제동을 걸었음에도 여당 의원들이 동조한 결과다. 상원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율 추락에 공화당 내에서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는 분명한 신호로 보인다고 미 언론은 해석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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