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기자

신지후 기자

등록 : 2020.06.12 21:01

[단독] 입양 정보청구에도… 20%만 친부모 찾는다

등록 : 2020.06.12 21:01

작년 2,175건 청구 중 443건 공개

친부모가 정보 공개 거부하거나 이미 사망한 경우 많아 못 찾아

“출생 비밀 알고 싶은 근원적 권리 보장해야”

미국으로 입양된 강미숙(카라 보스)씨가 12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친생자 인지 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사진은 강씨의 어린 시절 모습. 강미숙씨 제공

“내가 서 있는 곳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의 어딘가.”

해외 입양인 고(故) 줄리아 멘델슨(25ㆍ한국명 구지혜)씨는 백혈병 투병 중에도 블로그에 자신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적어나갔다. 그는 스무 살이 된 해 낳아준 부모를 찾고 싶어 무작정 한국으로 왔지만 입양기관은 “부모가 당신을 보길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

빈손으로 미국에 돌아간 지혜씨는 친부모에게 거절당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2006년 백혈병 판정을 받은 지혜씨는 2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08년 3월 31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지혜씨는 마지막 숨이 끊기는 날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인간의 근원과 뿌리, 입양에 대한 고민을 글로 남겼다.

지혜씨는 끝내 친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카라 보스(38ㆍ한국명 강미숙)씨는 12일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며 그토록 그리던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살렸다. 미숙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해외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를 막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법원에서 송사를 벌여 친부모를 찾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부가 그동안 해외 입양인의 권리 찾기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 출생 이후 입양된 인원은 24만8,728명에 이른다. 이중 67.5%인 16만7,864명이 해외 부모에게 입양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입양이 증가했어도 여전히 전체의 3분의 2는 해외 입양이다.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 중 상당수가 성인이 돼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지만 친부모와의 만남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기적에 가깝다. 입양인들은 입양특례법에 따라 자신의 입양과 관련된 정보를 입양기관에 청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친부모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은 친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가 가능하다. 입양서류조차 사설 입양기관들이 소유한다. 실제로 친부모에게 동의 여부를 물어봤는지도 입양인들은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019년 입양정보 공개청구 처리 현황.

입양인 10명 중 8명은 정보공개 청구를 했어도 부모를 찾지 못한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입양정보공개청구 2,175건 중 정보공개 결정은 20%에 수준인 443건에 그쳤다. 123건은 친부모 등이 공개를 거부했고, 662건은 친부모가 이미 사망하거나 응답하지 않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입양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는 개인의 근원적 권리인 만큼 친부모가 원치 않더라도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예외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입양인 출신으로 정의를위한입양안연대 대표로 활동 중인 한분영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아어과 교수는 “뿌리 찾기의 핵심은 ‘관계맺음’인데, 이를 해치면서 송사로까지 갈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면서 “출생의 비밀에 접근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도현 뿌리의집 목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7조에는 친부모에 대한 개인의 알 권리가 명시돼 있고, 독일은 이를 아예 헌법에 반영했다”며 “우리도 입양인 개인정보에 대한 예외 조항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미숙씨가 처음으로 승소를 했지만 해외 입양인의 친생자 인지 청구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해외 입양인 대부분이 “친부모의 행복이 우리 행복이니, 그들이 원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체념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남은 정보가 부실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미숙씨 사례처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정보공개청구를 거부했을 때 받을 충격을 걱정하기도 한다. 김 목사는 “국가가 해외 입양인들을 초청해 정작 중요한 뿌리 찾기 대신 경복궁, 불국사, 판소리 등 문화를 소개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서 “공적기관이 입양서류를 관리하고 통제해 정확한 정보부터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입양인들의 부모가 고령으로 사망하면 남은 가족들은 만남을 꺼린다”면서 “입양인들이 자연스럽게 근원(origin)을 찾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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