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 기자

등록 : 2019.07.01 09:49

우편 한 개에 ‘2초’ 배달, 컵라면 식사… 집배원 일과 따라가보니

등록 : 2019.07.01 09:49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동행취재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서울 녹번동 일대에서 정석용씨가 편지를 배달하고 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우편물을 배달하는 동안, 그는 잠시도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박진만 기자

“일부러 불쌍하게 보이려고 밥 안 먹는 건 절대 아닌데,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이게 습관이 됐네요.”

컵라면에 물 부은 지 20분. 면발은 이미 퉁퉁 불었다. 땀에 젖은 셔츠 덕에 등판까지 다 투명하게 드러난 12년차 집배원 정석용(39)씨가 멋쩍게 웃으며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지 8시간 만에 할당된 물량 배달을 다 끝낸 뒤 입에 넣는, 그 날의 첫 한 끼였다. 그래도 편치 않다. “오늘 물량은 오늘 다 털어야 한다”더니 1분 만에 국물까지 싹 비웠다. 그러고선 다시 우편물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올해 들어 과로사로 숨진 집배원만 9명이다. 참다 못한 집배원들이 7월 9일자로 파업을 예고했다. 우편서비스 도입 61년만의 첫 파업이다. 어느 정도일까 싶어 지난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우편물류과 2팀 소속 정씨의 하루 일과를 따라 가봤다.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실. 집배원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는 곳이다. 박진만 기자

공식 업무 시작은 오전 9시. 하지만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야 한다. 그날 배달물을 정리해 이륜차에 실어야 한다. 이날 정씨에게 할당된 물량은 일반우편 900여통, 등기 100여통, 소포 50여통. 이것만이 아니다. ‘겸배(兼配)’ 물량도 있다. 자리를 비운 사람의 물량을 동료들이 나눠진다.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정석용씨가 소포 배달을 하고 있다. 업무 시작 30여분 만에 그의 옷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박진만 기자

정씨 담당은 은평구 녹번동 일대. 가파른 언덕 지대인데다, 50% 이상이 다세대 가구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거의 없다. 정씨는 걸을 수 없었다. 5m 간격으로 늘어선 다세대 주택 계단을 2,3칸씩 쉴 새 없이 뛰어서 오르내렸다. 한번 쭉 돌고 나면 “등산을 여러 번 하는 것” 같을 정도다. 배달 중간엔 고객들과 끊임없이 전화를 주고받았다. 배달 시작 30분만에 온 몸이 땀에 젖었다. 2시간 정도 지나자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머리 속에서 ‘띵’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고 오토바이를 몰면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정씨는 “살기 위해 마셔야 한다”며 오토바이에서 500㎖ 이온음료 3병을 들어 보였다.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정석용씨가 한 손에는 일반우편, 등기, 소포를 잔뜩 쥐고 다른 손으로는 고객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박진만 기자

정씨가 날아 다녀야 하는 건 물량에 비해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와 노조,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집배원의 평균 노동시간은 2017년 기준 2,745시간으로 한국 평균 노동시간인 2,052시간 보다 693시간이나 많다. 우정본부는 “인력을 추가로 채용해 2019년 4월 연 평균 노동시간이 2,403시간이 됐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평균을 훌쩍 상회한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 때문에 배달해야 할 곳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배달 소요시간을 따지면 전년대비 등기는 4.6%, 소포가 19% 증가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정석용씨가 우편을 배달하고 있다. 이렇게 산 길을 뛰어서 배달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박진만 기자

점심을 제 때 못 먹는 것도 그래서다. 낮 12시가 점심 시간이긴 한데, 우정본부가 산출한 우편물 1건당 배달 소요 시간을 ‘우편 2.1초’ ‘등기 28초’ ‘택배 30.7초’다. 집배원에게 이 기준은 압박이다. 정씨는 “저 기준 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점심 먹고 일하는 집배원은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 4월엔 은평우체국 동료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 사경을 헤매고 있다.

체력 못지 않은 스트레스 문제도 있다. 주어진 물량도 소화하기 벅찬데, 고객들에게 질 높은 응대도 해야 한다. 정씨는 “고객 민원이 교통사고보다 100배는 무섭다”고 말했다. 배달물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냥 자기 지갑을 터는 게 마음 편하다. 기획추진단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직무 스트레스는 54.6점이었다. 원전조사자(38.2점), 임상간호사(47.2점), 소방관(48.8점), 공군조종사(49.1점)보다도 높다. 그래서인지 2011년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배원만 28명에 이른다.

[저작권 한국일보] 6월 27일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정석용씨의 이륜차. 제 시간에 식사를 못 챙기는 그는 탈수에 대비해 이온음료를 항상 들고 다닌다. 박진만 기자

“아직 젊어서 쌩쌩하다”며 가슴을 탕탕 쳐 보인다지만, 이런 얘기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정씨도 우편물 분류작업 때문에 하루 2~3시간짝 고개 숙이고 일하느라 지난해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두 달 남짓 쉬었는데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날도 우체국에 복귀한 정씨는 그 목을 구부려 배달물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우정노조의 요구는 집배원 인력 충원, 근무시간 단축이다. 정씨 소원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올해가 결혼 10주년인데, 단 며칠이라도 마음 편히 가족들과 휴가를 떠나보고 싶어요.” 여느 아버지처럼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 아이에게 추억 하나 선물해주고 싶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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