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실
시대의창 대표

등록 : 2019.12.04 04:40

[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좋은 와인 얻고 기부하고‘오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

등록 : 2019.12.04 04:40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프랑스의 오스피스 드 본(Hospices de Beaune) 또는 오텔-디외 드 본(L’Hotel-Dieu de Beaune). 1443년 건립된 이 건물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고, 근처에 현대식 병원을 지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오스피스 드 본 홈페이지 캡처

‘3D’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3차원 입체 영상?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산업 분야? 와인 애호가들에게 3D는 다른 의미로 읽힌다. 바로 경매에 나오는 와인의 배경이다.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경매에 나오는 와인에도 여러 내력과 사연이 담겼다. 이를 3D로 표현하면 죽음(Death), 빚(Debt), 이혼(Divorce)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본 시에서는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특별한 경매가 열린다. 구시가지에 자리한 오스피스 드 본에서 여는 행사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전통 있는 와인 경매다. ‘3일 동안의 영광(Les Trois Glorieuses)’이라 불리는 축제 기간에 본 시가지는 전 세계 와인업계 종사자와 애호가로 북적인다. 다양한 와인 시음회와 전통 행사가 열리는데, 그 하이라이트는 와인 경매가 장식한다. 올해에는 지난 11월 17일 일요일에 경매가 열렸다.

3일 동안의 영광(Les Trois Glorieuses) 축제. 이 기간 동안 각종 와인시음회와 전통행사가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와인경매이다. 오스피스 드 본 홈페이지 캡처

오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는 여느 와인 경매와는 목적이 다르다. 보통 와인 경매는 서두에 언급한 3D처럼, 소유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내놓은 와인을 낙찰자가 유리한 가격으로 구입하기 위해 열린다. 그런데 오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에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와인을 내놓는 쪽도 경매 낙찰자도 기분 좋게 지갑을 연다. 그러니 행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축제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오스피스 드 본의 역사는 백년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이겼지만 그야말로 상처투성이 승리였다. 이 전쟁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토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부르고뉴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더 극심했다. 부상자는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고 농토는 황폐화되어 마을이 부랑자로 넘쳤다.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다가 이웃을 약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오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 올해로 159회를 맞았다. 오스피스 드 본 홈페이지 캡처

당시, 부르고뉴공국의 재상이었던 니콜라 롤랭과 그의 배우자 기곤 드 살랭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보호하기 위해 ‘신의 저택’이라는 의미를 지닌 오텔 디외(Hôtel-Dieu)를 1443년에 건립했다. 바로 오늘날의 오스피스 드 본이다. 그 뒤로 여러 귀족이 병원을 돕기 위해 포도밭을 기부했는데, 그 면적이 무려 60헥타르(60만㎡)에 이르렀다. 부르고뉴에서는 보르도처럼 샤토(와이너리)가 아닌 밭에 등급을 부여하는데, 기부받은 포도밭 가운데 85%가 그랑크뤼와 프리미에크뤼, 즉 최상급 밭이다. 근래에는 본 시 북쪽의 코트 드 뉘 지역과 남쪽의 마코네 지역의 밭들도 기부받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오스피스 드 본에서는 포도밭 50헥타르(50만㎡)에는 피노누아 품종을 나머지 10헥타르(10만㎡)에는 샤르도네 품종을 재배해 병원 살림에 보탰다. 그럼에도 날로 늘어나는 병원 운영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급기야 1859년부터는 생산한 와인을 경매에 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와인 경매가 올해로 159회를 맞았다.

필자가 이상황 배리와인 대표 등 지인들과 공동구매로 낙찰받은, 도멘 드 오스피스 드 본에서 생산한 와인. 이상황 대표 제공

와인 경매의 모든 수익금은 포도밭 관리, 병원 유지, 불우한 이웃 돕기에 쓰인다. 1978년부터는 올해의 특별와인으로 꼽힌 ‘퀴베 데 프레지덩(Cuvée des Présidents)’의 경매 수익금을 해마다 공익단체나 구제기관을 선정해 특별히 기부하고 있다.

이 경매에는 개인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최소단위가 228ℓ 오크통 단위로 거래되며 경매 과정이 수월하지 않은 탓에 주로 네고시앙(부르고뉴 와인 중개상)과 업체가 참여한다. 오스피스 드 본 와인의 라벨엔 ‘오스피스 드 본’과 ‘기부자 후원자의 이름’이 새겨지는데, 공란도 있어 넣고 싶은 이름을 기입할 수도 있다.

몇 해 전부터 필자도 지인들과 함께 경매에 참여하고 있다. 낙찰받은 와인은 현지 네고시앙의 와인 저장고에서 18~24개월 숙성시킨 뒤 병에 담아 들여온다. 이 과정엔 적지 않은 수수료와 대행료는 물론, 세금까지 붙으니 공동구매라고는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그럼에도 참여하려는 이유는 예의 ‘특별한 목적’, 바로 ‘기부’ 때문이다. 애호가 입장에서는 좋은 와인을 기부라는 방식을 통해 맛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스피스 드 본 와인 경매에는 전혀 다른 ‘D’가 있었다. 바로 Donation(기부). 적어도 와인 경매에 있어선 3D가 아닌 4D라 해야 하지 않을까. 날마다 Drink가 떠오르는 필자가 이렇게 기특할 때도 있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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