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국립생태원 특정ㆍ보호지역조사팀장

등록 : 2019.02.09 04:40

[아하! 생태] 내가 사는 똥 하우스, 몸이 커지면 확장공사도 합니다

등록 : 2019.02.09 04:40

팔점박이잎벌레 암컷은 알을 똥으로 감싸 똥껍질 속에 넣은 뒤 땅바닥에 흩뿌려 산란한다. 이 똥껍질은 유충이 살아가는 집 역할을 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냄새 나’ ‘우웩’ 우리가 ‘똥’이란 단어를 들으면 툭 튀어나오는 말들입니다. 어쩌다 ‘똥’은 그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화됐을까요? 똥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럴 겁니다.

요즘은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똥 상태로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고도 하는데요. 우리네 인간사에도 ‘똥’이 주목을 받고 있는 세상인데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이 지구에서 살고 있는 곤충들은 어떨까요? 동물계의 약 5분의 4를 차지하며 대략 100만여종이 있는 곤충들 중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똥’과 함께 살아온 종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똥은 살아가는 집이자,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물이고, 성장을 위한 먹이입니다. 그래서 똥을 선택한 곤충들에게 똥은 바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똥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바르고, 섞고, 늘려가고… ‘똥’ 하우스 건축법

통잎벌레류, 큰가슴잎벌레류는 대부분 동글동글하게 귀엽게 생긴 잎벌레과 곤충인데, 일반인들은 대부분 무당벌레류로 착각하곤 합니다. 통잎벌레류는 성충과 유충의 생태가 다르며 사육도 까다로워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충은 주로 식물 잎을 먹는데 알을 낳을 때 똥을 발라 낳습니다. 마치 씨앗처럼 보이는데, 알 표면 모양은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매끈하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잎벌레 알. 국립생태원 제공

유충이 부화하면 알을 둘러싸고 있는 똥 통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다니며 낙엽 부스러기 같은 부식물을 먹으면서 성장합니다. 주머니나방류(일명 도롱이)나 물속에서 나뭇잎이나 돌로 자신의 집을 짓고 어린 시기를 보내는 날도래류, 또는 바닷가에 사는 소라게를 떠올리면 쉬울 것입니다. 이들 유충은 천적이 가까이 접근하거나 건드리게 되면 얼굴과 다리를 통속에 쏘옥 집어 넣어 한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유충들이 자라며 통이 비좁아지면 자신의 똥과 주변 다른 부스러기들을 붙여 통을 점점 넓혀갑니다. 알이 들어 있는 ‘똥통’의 표면은 종에 따라 다른데, 그건 각 종마다 암컷의 배설기관 표면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황갈색가슴잎벌레의 유충은 똥을 이용해 자신이 살 통을 만들고 넓혀가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표적인 큰가슴잎벌레아과 종류입니다. 황갈색가슴잎벌레는 우리나라에서 참나무류가 있는 숲에서 관찰되며 성충은 붉은색을 나타내는 곤충입니다. 성충은 참나무류를 먹고, 유충은 낙엽 등의 부스러기를 먹는데요. 암컷은 알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전에 똥으로 감싸 똥껍질 속에 넣은 뒤 땅바닥에 흩뿌려 산란합니다. 사육을 하다 보면 그냥 알을 낳은 뒤 똥을 묻혀 감싸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등줄잎벌레 유충. 부화한 유충은 ‘똥’ 통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걸어 다니면서 낙엽 부스러기 같은 부식물을 먹으며 성장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8~10일이 지나 알에서 깨어난 한 살(1령) 유충들은 근처 낙엽이나 부식물질들이 있는 곳에서 생활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숨바꼭질 하듯이 참나무 잎이 말라가는 곳을 관찰하다 보면 갓 깨어난 1령 유충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1령의 크기는 통을 제외하면 1.0㎜ 이하이며, 몸의 형태는 ‘J’ 형태로 배 부분이 굽어 있습니다. 이러한 몸의 형태 역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통에 딱 들어맞는 구조로 진화한 것입니다.

유충이 성장하면 살고 있는 집이 좁게 느껴집니다. 곤충은 성장을 하기 위해 반드시 ‘탈피’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요. 황갈색가슴잎벌레도 두 살(2령)이 되기 위해 탈피를 합니다. 그리고 집의 크기도 늘립니다. 1령 때 이용했던 집에 배설물과 주변 물질들을 붙여 집을 수리하는 것이지요. 새로 지은 집에서 1령 때 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배설물과 주변 물질을 이용해서 지은 곳은 갈색으로 보이고, 통의 머리쪽 반대 끝에 짙은 갈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1령 때 이용한 집의 잔여물입니다. 이처럼 큰가슴잎벌레류, 통잎벌레류 유충들에게 똥은 자신이 살아가는 집이자 집을 짓는 재료입니다.

황갈색가슴잎벌레 유충의 집을 령별로 구분했다. 가장 짙은 갈색 부분이 1령 때 이용한 집이고 최근에 지은 부분일수록 밝은 갈색을 띤다. 국립생태원 제공

◇’똥’을 방어물로 이용하는 곤충들

많은 곤충들 중 긴가슴잎벌레류와 남생이잎벌레류의 유충은 자신의 똥을 뒤집어 쓰고 생활하는 재미있는 생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긴가슴잎벌레류 유충이 자신의 똥을 등에 올려 놓고 다니는 반면, 성충의 모습이 거북이나 남생이 종류와 비슷하다고 하여 남생이잎벌레라고 붙여진 종류의 유충은 조금 다릅니다. 똥을 등에 올려놓고 있긴 하지만 배마디 끝부분에 허물과 똥을 섞은 뒤 쌓아 올려 마치 우산을 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똥을 등 위로 올렸을까요? 왜 똥을 업고 다니기 시작했을까요?

고려긴가슴잎벌레. 국립생태원 제공

이들 유충은 식물의 잎 위에서 생활하는 종입니다. 식물 위에 산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천적들(특히 조류)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잎 위에서 생활하는 곤충의 유충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털을 많이 가진 종(대부분 잎 위에서 생활하는 유충들의 특징)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독성 털을 가진 종(독나방 유충)이나, 천적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방어선을 가진 종(사시나무잎벌레, 버들잎벌레 등 잎벌레 종류들), 새똥의 모습을 흉내 내는 종(호랑나비과 유충의 1~2령 유충), 천적이 싫어하는 냄새와 배설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종(긴가슴잎벌레, 남생이잎벌레류 등 잎벌레 종류들) 등으로 말이죠.

긴가슴잎벌레류와 통잎벌레류 유충들이 똥을 등에 업고 쓰는 것은 바로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똥을 등 위로 올려 보내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바로 유충의 항문 위치에 있습니다. 이들 유충의 항문은 등 쪽을 향해 있어서 똥을 등 위로 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특히 남생이잎벌레류는 다른 잎벌레류 유충과 달리 열 번째 배마디가 등 쪽으로 휠씬 길게 올라와 있어서 똥을 더 잘 쌓을 수 있습니다. 왕벼룩잎벌레 유충처럼 똥을 올리면서 점액성 성분을 섞기도 하고, 어떤 종은 과립물질을 붙여 등 위에 배설물이 잘 부착되도록 하기도 합니다.

점박이큰벼잎벌레 유충들이 자신의 '똥'을 등에 올려 놓고 다니는 모습. 국립생태원 제공

◇‘뿌지직, 동글동글’… “맛있어, 냠냠”

이제 똥을 먹이로 선택한 곤충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곤충이 소똥구리류입니다. 소똥구리류뿐만 아니라 보라금풍뎅이도 있습니다. 보라금풍뎅이는 고라니, 들개 등 야생동물뿐 아니라 사람의 배설물에서도 발견되는 대표적인 곤충입니다. 똥을 먹이로 하는 곤충이지만 보랏빛 금속광택이 나는 매우 예쁜 금풍뎅이류 곤충이지요. 산을 다니다가 방금 누군가가 실례한 곳이 보인다면 잠시만 멈춰서 기다려보세요. 갑자기 어디선가 보랏빛 광택을 띠며 날아와 그 속에 파묻히는 곤충이 있다면 보라금풍뎅이일 확률이 높답니다.

보라금풍뎅이.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 2급이자 비교적 섬이나 목장 주변 우리나라 국지적으로 관찰되는 애기뿔소똥구리도 있습니다. 애기뿔소똥구리는 소똥을 굴리는 종이 아닌, 소똥 속에 들어가 똥을 먹는 종입니다. 산란할 때가 되면 먼저 수컷이 땅을 15~20㎝ 아래로 팝니다. 그 안으로 암컷이 내려가면 수컷이 소시지 모양으로 소똥을 잘라 내려줍니다. 암컷은 소똥 소시지를 잘라 경단을 만들고 한쪽을 우묵하게 만든 뒤 그 속에 알을 낳습니다. 부화한 유충은 경단을 먹으면서 그 속에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뿔소똥구리 역시 애기뿔소똥구리와 유사한 생태적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크기는 애기뿔소똥구리보다 7~10㎜ 더 크지만 애기뿔소똥구리보다 야외에서 관찰하기가 어렵습니다. 뿔소똥구리를 조사하러 다니다 보면 이들이 산란에 선호하는 똥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소가 갓 똥을 싸 초록빛이 도는 상태를 A급, 위가 조금 굳어 있는 상태는 B급,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상태는 C급으로 나눕니다. 뿔소똥구리는 원래 A급을 좋아하지만 산란을 위해선 약간의 수분이 날라가 위가 조금 굳어 있는 B급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땅 속에 있는 암컷 뿔소똥구리와 경단을 관찰하기 위해선 소똥의 지름보다 더 넓게 땅을 조심히 파내려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뿔소똥구리를 관찰하긴 어려워졌습니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사료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방목하며 소를 키우는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똥구리 종류는 크게 똥을 굴리는 종과 애기뿔소똥구리, 뿔소똥구리처럼 똥을 굴리지 않는 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똥을 굴리는 종은 소똥구리,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 3종이 있습니다. 이들 종은 소똥으로 동그랗게 경단을 만든 뒤 뒷다리로 굴려 자신의 은신처로 가져가 이를 먹거나 산란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지만 소똥구리와 왕소똥구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의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긴다리소똥구리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애기뿔소똥구리. 국립생태원 제공

◇곤충에게 배우는 ‘똥’ 철학

오래 전 어른들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이라며 심하게 다친 사람에게 재래식 화장실의 ‘똥물’을 끓여 먹였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효과를 보기 위해 건강한 사람의 똥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 치료하는 ‘대변이식’이 이뤄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똥’은 ‘약’이 되기도 하고 건강 상태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신호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삶을 영위하는 데 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곤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 하루 화장실 변기에 앉아 곤충들이 들려준 ‘똥’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 쓰고 나온 찌꺼기라고 생각되는 똥을 자신의 삶에 다양하게 이용하는 곤충들에게 ‘똥’ 철학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박진영 국립생태원 특정보호지역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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