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

등록 : 2019.12.07 04:40

[이용재의 세심한 맛] 조리의 첫 단추 장보기, 장보기 비법은 최대한 안하는 것

등록 : 2019.12.07 04:40

조리는, 조리의 기본이 되는 식재료를 고르는 ‘장보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음식은 재료가 전부’라면 ‘재료는 장보기가 전부’이니 결국 ‘음식은 장보기가 전부’가 된다. 물론 이 명제는 완전 참이라 볼 수 없다. 식재료 자체만으로는 음식이 되지 않고 조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바쁜 일상에서 조리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경우라면 ‘음식은 장보기가 전부’라는 명제는 참이든 거짓이든 굉장히 무겁게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여유가 없는 삶에서 순수하게 물리적인 시간만으로도 조리보다 장보기의 비중이 식생활에서 더 높아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60화를 맞이하여 효율적인 장보기를 위한 정보와 전략을 살펴보자.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장보기의 초점은 ‘(최대한) 장 안 보기’에 맞춰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1. 목표

목표는 장보기의 빈도를 최대로 줄이는 것이다. 장보기는 귀찮고도 피곤한 일이다. 메뉴를 꼼꼼하게 짜고 냉장고부터 찬장까지 샅샅이 살펴 식재료의 실태와 재고를 파악했더라도, 그래서 구매처에 가서는 단순히 종이에 적은 물건만 집어 온다고 하더라도 장보기는 피로하다. 일단 그렇게 준비해 갔더라도 최종 선택의 과업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늘 가던 마트에서 늘 사왔던 계란이 하필 내가 찾아간 날에 떨어졌다면? 그냥 눈 딱 감고 아무 거나 집어 올 수도 있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최선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차선을 고를 것인가? 무게를 비롯해 제조업체와 포장 등 생각보다 많은 요인을 검토하며 본의 아니게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경험상 목록에서 이런 경우가 두 가지를 넘어가면 즐겁고 효율적일 수 있는 장보기가 다시 지겨운 일상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

요즘의 장보기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편이다. 순수한 식재료 고르기보다 그 주변의 일에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든다는 말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는 장보기의 지평을 큰 폭으로 바꾸었다. 식료품 외에도 의류나 생활 잡화 등, 얼핏 보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할 것 같은 백화점의 역할 지분을 일부 끌어옴으로써 대량 구매를 유도했다. 또 자동차를 끌여 들였다. 결국 운 나쁜 주말이면 진입로부터 주차장, 계산대의 전 단계에 걸친 대기가 장보기 자체보다 더 번거로워졌다. 장보기의 큰 그림을 살펴보면 비단 마트만의 현실도 아니니, 전통 시장 같은 구매처는 자동차의 역할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던 시절의 공간 계획에 부랴부랴 자리를 덧대느라 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장보기 전략은 ‘(최대한) 장 안 보기’에 초점을 맞춰 세워야 먹고 살기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다. 

2. 조리 세계의 기본적인 복잡함

음식은 비밀을 좋아한다. 자장면이든 스테이크든 치킨이든 장르와 종류를 불문하고 적어도 하나쯤은 비밀을 품고 있다. 눈과 입으로 맛보는 것보다 더 많은 가짓수의 재료가 들어간다는 말이다. 사먹을 때에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고 사실 몰라도 상관 없지만, 막상 어떤 이유에서든 자가 조리가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작은 비밀이 쌓여 등이 굽을 정도로 어깨가 무거워질 수 있다. 음식의 종류나 난이도에 상관 없이 거의 필수로 갖춰야 하는 식재료를 범주별로 나눠 살펴보자.

파와 마늘 등 양념류는 많이 쓰지 않아도 유통기한이 짧아 소량씩 자주 구매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양념류: 파, 마늘, 생강, 샬롯(샐러드 양식을 많이 조리할 경우). 양념류는 많이 쓰지 않지만 맛의 흥을 돋워주므로 빠지면 허전한데 신선식품이므로 유통기한이 아주 길지 않다. 따라서 소량 구매를 하더라도 보관 및 재고 관리는 다소 번거로울 수 있다.

-조미료류: 소금, 설탕(과 물엿 등의 기타 당류), 간장, 기름 등. 예외인 기름마저도 유효기간이 짧지 않은데다가 조리에서 맛내기의 첫 단계에 쓰이므로 대량구매가 가능하고 보관 및 재고 관리에도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장류: 발효식품이고 염도가 높으니 부패의 위험이 원래 적은 가운데 냉장 보관까지 하므로 역시 크게 애먹이지 않는다.

-밀가루와 전분류: 의외로 어렵지 않은 요리에도 밀가루나 전분이 쓰인다. 밀가루는 부침개나 튀김류에, 전분은 마파두부 같은 음식에 걸쭉함을 불어 넣는데 쓰인다. 

기본 가운데 기본만을 추려도 적지 않은 가짓수이니 양식을 위한 향신료 등을 포함시킨다면 저변은 점차 넓어진다. 결국 이런 것들을 갖추고 주기적으로 재고 파악 및 관리를 하는 가운데 쌀, 육류나 채소 등의 신선식품을 훨씬 더 짧은 빈도로 사들여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식재료의 여건을 비로소 갖출 수 있다. 

한 곳에서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식재료 구매처별로 장단점을 살펴봐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3. ‘원스톱 쇼핑’의 어려움

대형 마트가 자동차를 끌어들여 대량 구매의 환경을 조성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환경에서마저 ‘원스톱 쇼핑’, 즉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들이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관건은 가격과 품질이다. 이를테면 대형 마트는 육류는 품질이 대체로 괜찮지만 과채류는 썩 맛있지 않다. 전통 시장은 설사 품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가격 경쟁력은 있는데, 내부에 별도의 마트를 갖추지 않는다면 우유, 더 나아가 버터나 치즈 같은 식재료는 찾기 어렵다. 결국 마트든 시장이든 식생활과 장보기의 중심으로 삼더라도 지구를 도는 달과 같은 위성, 즉 보조 구매처로 부족함을 메워줘야 한다. 식재료 구매처를 분류하고 장단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형 마트: 일상의 차원에서 가장 쉽게 식재료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매처였으나 최근 몇 년 동안 변화를 겪고 있다. 반조리 냉동 식품의 유입을 주도하면서 신선식품의 비중과 다양성이 줄어든 것이다. 품질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은, 가격을 감안할 때 간신히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매시장: 소매 고객이 접근 가능한 도매시장이라면 적당히 넓은 선택의 폭을 즐길 수는 있다. 다만 대체로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구입처의 식재료 품질이나 관리 상태 등은 소위 ‘허브(hub)’ 답지 않게 품질이 월등하지는 않다. 말하자면 가격과 품질을 일정 수준 맞교환하는 셈이다. 물론 도매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신용(저울 눈금 속이기 등)의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백화점: 적당히 다양하고 특히 과채류와 해산물의 품질이 좋으나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두부나 우유처럼 다른 구매처에서도 똑같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식재료라면 가격이 좀 더 높을 수 있다. 따라서 예산에 민감하다면 꼭 백화점에서만 살 수 있는 식재료 중심의 보조 구매처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잼이나 치즈, 파스타 등의 수입 식재료는 브랜드를 바꿔가며 상시 할인하니 눈 여겨 보면 의외의 절약도 가능하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후숙에 시간이 걸리는 채소와 과일을 구매하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인터넷이라는 영역 자체가 물리적인 한계를 지니지 않으므로 오픈 마켓이나 포털 사이트가 원하는 식재료를 대부분 찾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핵심은 과채류를 중심으로 한 생산자 직거래 식재료이다. 토마토처럼 소위 후숙에 시간이 걸리는 채소나 겨울의 과일인 귤, 두고 먹을 수 있는 고구마 등은 품질은 좋고 가격은 마트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편 전국 일일 택배 생활권에 추운 날씨가 맞물렸으니 고기나 버터 같은 유제품도 부패의 걱정 없이 살만하다. 버터는 잘 뒤지면 유통기한 임박으로 큰 폭의 할인에 들어간 물건을 찾을 수 있으니 대량으로 사서 냉동실에 두고 쓰면 경제적이다. 

-전통시장: 주차의 어려움이나 편하지는 않은 좁고 긴 복도형의 공간 등이 태생적인 약점인 가운데 전통시장은 다소 복불복이다.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가운데 다양한 판매처를 확보한 곳도 있고, 집 근처에 마땅한 구입처가 없어 내키지 않더라도 가야 하는 어수선하고 선택의 폭도 좁은 곳도 있다. 과채류는 적절하지만 어패류는 냉장 보관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는 가운데 운이 좋으면 갓 만든 두부를 싸고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시장의 즉석 두부집이 그런 건 아니고 품질은 들쭉날쭉하다.

최근에는 편의점에도 콩나물, 두부 등을 판매하고 있어 아주 급할 때 요긴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동네마트: 소규모의 어수선한 전통시장보다 집 앞의 동네 마트가 더 나을 수 있다. 웬만한 규모라면 정육부를 갖추었으니 기본적인 단백질 확보가 가능하고, 과채류는 설사 품질을 기대할 수 없더라도 소포장이 대다수라 구성원 수가 적은 가정에게 부담이 적다. 특히 다듬어 파는 대파나 쪽파 같은 식재료는 시간과 노력을 대폭 줄여줘 의외로 굉장히 요긴하다. 

-편의점: 의미 있는 식재료의 구입처라 보기는 어렵지만 아주 급할 때 의외로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적어도 콩나물과 두부는 갖췄으며 요즘은 대파나 포장육 같은 식재료를 들여 놓는 곳도 있다. 비상 반찬 스팸은 또 어떤가. 물론 무엇을 사더라도 높은 가격대는 감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구입처별로 구매하기 좋은 식재료 정보를 축적하면 효율적으로 장을 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4. 시행착오를 거친 나만의 ‘식재료 네트워크’의 조직

원활한 장보기를 위한 마지막 노력의 단계가 남았다. 시행착오를 통한 식재료 네트워크의 조직이다. 다른 식재료 구입처를 번갈아 다니다 보면 조금씩 정보가 축적된다. ‘A 마트에서는 계란이 싱싱하고, B 시장의 두부는 아주 잘 만들지 않지만 포장 제품보다는 낫고, 가까운 백화점의 홍합은 마트 제품보다 50% 가량 비싸지만 씨알이 굵고 손질이 잘 되어 있다’ 등의, 일종의 장단점 비교 데이터베이스이다.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접근 가능한 식재료 구매처 전체를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조직할 수 있다면 굉장히 유용하지만 일정 수준의 시간과 노력 투입이 반드시 필요하며 장보기의 실패와 좌절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요리에 일정 수준의 관심이 없다면 굳이 권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라면 품질, 가격, 접근성 등의 한 요소를 바탕으로 선택한 구입처에서 웬만하면 모든 식재료를 해결하자. 

육류는 넉넉하게 사다가 냉동고에 쟁여두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5. 냉동고의 활용

대부분의 식품들은 냉동고에서 오래 잘 버틴다. 일단 육류는 전부 통과이니 넉넉하게 사다가 쟁여둬도 좋다(먹기 하루 전날 밤 냉장실로 옮겨 해동한다). 해산물이라면 기본 손질과 간을 끝낸 냉동 제품이 관리가 잘 안 된 생물보다 나을 수 있다. 채소는 브로콜리처럼 데쳐야 먹을 수 있는 종류를 냉동으로 갖춰두면 생채소가 마땅치 않은 시기나 그 무엇도 도저히 사러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좌절의 침투를 막아준다. 

이 모든 정보와 전략을 활용해 ‘아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라고 할 수 있는 대대적인 장보기의 빈도를 줄일 수 있으면 먹고 살기의 무게를 좀 덜어낼 수 있다. 1주일에 한 번 가던 것을 열흘에 한 번으로만 늦출 수 있어도 한 달이면 한 번의 큰 에너지 소비를 막을 수 있다. 모두가 몰리는 주말을 피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대형 마트, 시장, 백화점 등을 신선 식품의 주요 구입처로 삼고 가까운 동네 마트에서 가볍게 양념 등의 식재료를 보충하는 유형이 가장 효율적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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